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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고 앉아있네


모텔 벽에 해변을 바라보고 앉은 여자의 뒷모습 그림이 걸려 있었다. [바톤 핑크]에 나오는 그 그림과 비슷했다. 모텔 주인이 이런 취향을 가진 사람인가. 싸구려 모텔 방에 이런 그림이 걸려 있으니 묘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그림 옆의 벽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원래부터 그랬는지, 내가 샤워하는 동안 그렇게 된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림은 멀쩡하게 벽에 붙어 있었다. 나는 그림을 한참 바라봤다. 바톤 핑크도 그랬다. 싸구려 호텔 방에 틀어박혀 시나리오를 써야 했지만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작가라는 자부심은 있었고,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 했다. 그런데 정작 청탁받은 건 B급 영화 시나리오였다. 그것조차 쓰지 못했다. 그러자 불안과 망상이 방 안으로 기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런 바톤 핑크가 어느 순간 미친 듯이 글을 쓰게 된다. 왜 그랬을까.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방이 좀 덥다는 느낌이 들었다. 에어컨을 보니 바람은 나오고 있는데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카운터에 전화를 걸었다. “에어컨이 안 됩니다.” 곧 올라오겠다고 했다. 텔레비전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그림을 봤다. 그런데 여자가 조금 몸을 튼 것 같았다. 처음부터 저렇게 앉아 있었나? 한참 들여다봤다. 이상하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몸이 끈적거렸다. 땀이 나기 시작했다. 방금 샤워를 했는데 피부에 남아 있던 물기가 땀으로 바뀌었다. 제기랄. 얼굴에서 땀이 흘렀다. 목도 축축했다. 다시 카운터에 전화를 걸어 화를 냈다. 그런데 카운터에서는 지금 복도에 불이 났다고 했다. 직원이 바로 올라갈 수 없으니 방 안에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귀에서도 땀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너무 더웠다. 그런데 그림 속 해변은 시원해 보였다. 여자는 바다를 등지고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양손을 뒤로 뻗고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 처음에는 한 손을 들어 차광막처럼 햇빛을 가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뭐가 진짜였을까. 그림이 변한 걸까. 아니면 내가 잘못 본 걸까. 예술이라는 게 별것 아닌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특별한 사람만 특별한 것을 보는 게 예술이라면, 그것은 결국 특별한 사람들의 장난에 불과할 것이다. 평범한 사람. 평범한 방. 평범한 벽. 손을 뻗으면 닿는 그런 곳에서 이상한 것이 나온다. 인간의 내면도 그런 것 아닐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금 전과 다른 모습이 되어 있는 모텔 방처럼. 현실과 환상 사이에 문 하나가 있다면 예술은 그 문을 없애버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작가는 고독해야 한다. 철저하게. 고독하지 않으면 한 줄도 쓰지 못한다. 복도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불길이 보였다. 사이렌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나는 문 쪽을 바라봤다. 복도의 화마가 방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바톤 핑크가 되지 못하고 이렇게 죽는구나. 너무 덥다. 너무 뜨겁다. 타오른다. 그때 해변을 걷던 여자가 말했다. “날씨가 참 좋죠?”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나는 여자를 바라봤다. “당신은 배우인가요?” 그녀가 웃었다. “그런 소리 말아요.” 여자는 다시 해변에 앉았다. 그녀는 해변에 앉아서 차광막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를 보지 않은 채 바다를 바라봤다. 언젠가 나도 바톤 핑크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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