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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고 앉아있네


최인호의 [겨울나그네]는 구조가 너무 선명하다. 네 명의 남녀가 있고, 이 사람이 저 사람을 좋아하고, 저 사람은 또 다른 사람과 엇갈린다. 처음부터 대충 어떻게 흘러갈지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 재미가 있다. 이런 소설은 구조가 뻔하면 재미가 없어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다. 반듯한 의대생 강석우는 반듯한 음대생 이미숙을 좋아한다. 둘을 이어주려고 나서는 사람이 경영학과 선배 안성기다. 그런데 안성기는 강석우와는 정반대다. 막 사는 인간이다. 인생을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강석우의 집안에서 터진다.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있고, 배다른 형인 양택조는 집안의 재산을 전부 차지하려 한다. 그러면서 강석우에게 친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흘린다. 강석우는 결국 한 나이트클럽의 큰손인 김영애를 찾아간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신의 친어머니 동생이라는 걸 알게 된다. 여기서부터 강석우의 인생이 이상하게 틀어지기 시작한다. 자기가 누구의 아들인지, 왜 이런 환경에서 살아왔는지. 지금까지 반듯하게 살아온 것이 과연 자신의 삶이었는지. 그런 생각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나이트클럽 댄서 이혜영은 그런 강석우에게 관심을 보인다. 강석우가 나이트 세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라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강석우는 이혜영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강석우의 마음은 전부 이미숙에게 가 있다. 그러다 아버지가 죽고 강석우는 김영애 밑에서 생활하면서 점점 나쁜 짓을 배우게 된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나 싶을 정도다. 그 사이 안성기는 반대로 간다. 막 살던 인간이 어느 순간부터 깔끔하고 반듯해진다. 회사에 취직하고, 강석우 대신 이미숙을 자주 만난다. 결국 둘은 결혼한다. 이렇게 보면 참 잔인하다. 처음에는 강석우가 이미숙을 좋아했고, 안성기는 둘을 이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가 바뀐다. 반듯했던 강석우는 이혜영과 살림을 차리고, 이미숙은 안성기와 결혼한다. 그런데도 강석우는 이미숙을 잊지 못한다. 결국 이미숙을 찾아간다. 잠깐이지만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이 장면이 더 지독하다. 서로 좋아하면서도 같이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잠깐 서로에게 돌아가는 것. 그 짧은 시간이 오히려 이후의 불행을 더 크게 만든다. 강석우는 다시 나쁜 짓을 하러 나가고 결국 죽는다. 이혜영은 해외로 떠나면서 아들을 안성기와 이미숙에게 맡긴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렇게 끝난다. 이미숙은 자신이 끝내 잊지 못했던 강석우를 아들을 통해 다시 만나는 셈이다. 사람은 사라졌는데 흔적은 남아 있다. 그 흔적이 하필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도 참 지독하고. 나중에 손창민, 김희애가 나온 버전으로 한 번 더 만들어졌는데 그것도 재미있다. 최인호 원작 영화는 대체로 재미가 있다. 이야기가 어렵지 않다. 구조가 확실하고 남녀 사이의 갈등이 개인적인 사랑에만 머물지 않고 가족이나 계급, 돈 같은 문제하고 붙는다. 그래서 그냥 멜로만 보고 끝나는 영화가 아니다. 다만 이미숙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전형적인 인물이다. 반듯하고 착하고 사랑받는 여자. 말하자면 스테레오타입에 가깝다. 내가 오히려 재미있게 본 건 이혜영이다. 나이트클럽 댄서로 나올 때는 상당히 강한 여자다. 그런데 강석우를 사랑하면서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다. 사랑 아니면 죽음, 거의 그 정도까지 간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는 악착같이 살아가는 여자가 된다. 사랑에 빠진 여자와 살아남아야 하는 여자가 한 사람 안에 같이 있다. 특히 강석우가 나이트클럽에서 먹고 자면서 생활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나이트 문을 닫은 뒤 이혜영이 들어온다. 코트를 벗어버리면 속옷 차림의 몸이 드러나는데, 당시 기준으로도 상당히 인상적인 장면이다. 지금 운동을 열심히 한 사람처럼 복근이 잡힌 몸도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단순히 몸을 보여주는 장면으로만 기억되지는 않는다. 이혜영이라는 여자가 어떤 세계에서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처럼 남는다. [겨울나그네]에서 제일 지독한 건 사랑이다. 바라고 원하는 사랑이 바로 앞에 있다. 손만 뻗으면 될 것 같은데 막상 손을 뻗으면 달아난다. 겨우 여기까지 왔다 싶으면 또 저만큼 멀어진다. 그러다 지쳐서 옆에 있는 사람과 결혼한다. 그런데 꼭 그때 다시 나타난다. 사랑은 왜 늘 타이밍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드는지. 조금만 빨랐거나 조금만 늦었으면 달라졌을 사람들의 인생이 계속 엇갈린다. 불행과 행복이 손바닥과 손등처럼 붙어 있다가 뒤집힐 때마다 서로의 자리를 바꾼다. [겨울나그네]는 결국 그 뒤집히는 순간들을 오래 보여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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