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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고 앉아있네

이 장면이야말로 백 룸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백 룸 영화를 보고 명확한 해답을 찾으려는 건 어쩌면 애초에 잘못된 접근인지도 모른다. 백 룸이 무엇인지 정의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더 모호해진다. 백 룸은 달력의 뒷면이나 장롱 밑바닥 같은 곳이다. 평소에는 존재조차 의식하지 않는 공간. 그런데 그 뒤편에는 현실보다 훨씬 넓고, 훨씬 기괴한 세계가 이어져 있을 것만 같은 감각이 있다. 예전의 상상 속 세계는 동화 같았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숲이나 비밀의 나라를 떠올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상상은 어둡고 축축해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 방향을 잃는 계단, 이유 없이 불안한 방. 지금 우리가 품고 사는 불안의 모양도 어쩌면 그렇게 생겼다. 이 장면에는 백 룸의 핵심이 거의 다 들어 있다. 문을 열면 또 다른 문이 나오고, 길은 계속 반복된다.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알 수 없는 복도. 그리고 발을 헛디디면 끝없이 추락할 것 같은 높은 공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데 이상하게 꿈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현실의 공간은 완벽할 수 없다. 사람이 드나드는 순간부터 조금씩 낡고 어긋난다. 하지만 백 룸은 다르다. 지나치게 깨끗하고, 지나치게 정확하다. 그 완벽함이 오히려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인간이 머물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인간을 삼키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처럼 보인다. 그 안에도 가족은 있다. 하지만 불안과 우울, 혐오가 뒤엉켜 만들어 낸 가족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서로를 지켜주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가두는 형태에 가깝다. 피해의식과 분노가 커질수록 사람은 현실보다 머릿속에서 더 오래 산다. 그때 마음속에는 이런 백 룸이 하나 생긴다.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찾기 어려운 공간.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잘 나와 있다. 현실과 내면이 겹쳐지는 순간, 사람은 가장 깊은 미궁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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