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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고 앉아있네


원작의 색채에서 채도가 빠져나갔다. 원작의 주인공 수지 역의 제시카 하퍼가 리메이크에서는 앙케 역으로 나온다. 마담 블링의 아카데미의 춤은 안무가 아니라 피의 의식이다. 악마의 의식, 마녀의 의식. 인간의 의식, 곧 너와 나의 의식이다.

70년대 베를린의 서늘하고 싸늘한 날씨를 기가 막히게 표현했다. 영화 내내 흐르는 음악이 미치도록 좋은데, 다 알겠지만 라디오 헤드의 톰요크가 음악을 맡았다.

오케이 컴퓨터 앨범 이후 인간의 내면을 음악으로 표현했던 것 같은 엄청난 앨범 키드 에이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몹시 좋고, 몹시 아름다우며, 몹시 슬프고, 몹시 화나고, 몹시 아프다. 아주 좋다는 말이다. 톰 요크의 장편 영화 음악 데뷔작이다.

이 영화는 영화 사이사이의 이음새를 은유로 메꿨는데 몽환보다는 환각에 가깝다. 마치 해서는 안 될 약을 한 다음에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을 보는 것만 같다. 특히 후반의 고어적 의식의 장면은 눈을 돌리고 싶지만, 눈물을 줄줄 흘리며 눈을 뗄 수 없다.

그때 흐르는 틈 요크의 음악은 그야말로 마음속 아픈 곳을 하염없이 건드린다. 이야기 자체는 서늘하고 무서운데 미장센과 음악으로 인해 공포에 분위기가 입힌 것 같은 느낌이라 압도되기에 충분하다.

사실 70년대 독일을 생각하면 이런 일들이 안 일어나는 게 이상할지도 모른다. 나치, 동서독의 분리가 가져온 엄청난 빈부격차와 몰이해 등으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게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영화를 겉으로 봐도 공포와 아름다움은 함께 한다는 걸 보여준다. 공포가 이토록 아름답다면 그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져도 좋지 않을까? 더러운 현실이 공포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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