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 ‘이’가 하는 이런 여행은 정말 판타지에 가깝다. 눈 덮인 공간의 작은 민박촌에서 주인과 함께 한 방에서 잠을 자며 자연을 느끼는 여행. 자연은 인간이 싫어 추위를 자꾸 불어넣지만, 이상하게 따뜻함이 드는 여행.
끝없는 잔잔함과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일본 영화에서 심은경의 내레이션이 조금 어울리지 않지만 이질감은 없다.
주인공 [이]는 말이라는 틀에 갇혀 있다가 도망을 치듯 말이 없는 자연 속으로 여행을 간다.
가끔 생활하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의 말을 따라가기 힘들다. 사람들이 말할 때마다 그 말에 쫓기는 기분이다. 그래서 가끔 너는 왜 그러냐는 말을 듣는다. 세상에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과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많다. 나 역시 제대로 말을 하고 싶다. 말을 잘하기 위해 조금 생각의 시간을 가지면 사람들은 금세 가버리고 만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고 싶다. 눈물이 흐를 때 왜 눈물이 나오는지 제대로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영화의 주인공 [이]는 설산의 어둠과 고요 속에서 보낸 시간을 몹시 즐거웠다고 한다. 이런 즐거움은 오래만이에요. 그 덕에 [이]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의 말을 듣고 글을 쓸 것이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소음'만 기생한다. 그러나 [이]가 무작정 떠난 여행 속 설산에는 '소리'가 가득하다. 여백을 느끼는 여행은 이제 판타지가 되었다.
무작정 가방 메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없다. 계획을 짜지 않고, 미리 짐꾸러미를 챙기지 않는 여행은 없다.
여름의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느끼며, 몹시 우울한 물고기의 이미지는 겨울에서 하얀 설원의 동화 같은 모습이 된다. 이런 모습은 심은경이 일본어로 대사를 하고 한국어로 내레이션을 하는 모습과 같다.
감독은 심은경이 일본어로 말할 때와 한국어로 말할 때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면을 보는 느낌”라고 말했다. 내 삶이 판타지가 되면 악마와 천사는 서로 오고 가는 사이가 된다.
이 영화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영화가 우리나라 집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집이란 무엇인가. 오래된 맨션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딱 이런 느낌이 들게 했다.
심은경은 이런 스타일과 이런 헤어스타일로 꾸준하게 영화와 드라마에 나온다. 이제 심은경이 이런 스타일에서 언제 벗어날까 궁금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