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영화로 점점 몸이 작아지는 주인공이 가장 안전한 공간인 집이 가장 위험한 공간으로 바뀐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몇 번 영화가 되었다. 슈링킹 맨은 프랑스 동명 원작이 있다.
57년 작으로 시각적인 효과를 걷어내고 보면 흑백 버전인 원작이 훨씬 재미있다. 대사나 내용이 거의 같은데 2026 영화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집 안, 지하실의 거미, 개미, 붕어, 같은 모든 것들이 위험천만한 것들이라 생존에 중점을 두었다면, 원작은 홀로 작아진 주인공의 고독과 두려움을 보여주는 것 같다.
2026 버전은 아무래도 그래픽이 좋아서 정말 작아진 주인공이 별거 아닌 곤충과 벌레를 피하는 장면이 리얼하게 보이는 반면에 원작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50년대 영화라고는 믿지 못할 만큼 잘 만들었다.
그리고 원작의 주인공은 점점 작아지는 몸으로 유명해져 길거리를 나가서 배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후 몸은 점점 더 작아진다. 몸이 작아지는 계기의 설정도 두 영화가 좀 다르다.
주인공 폴은 수영을 하다 구름이 소용돌이치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그 뒤로 몸이 점점 작아진다. 정확히는 줄어든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작아져 딸의 인형집에서 생활하는 폴을 두고 외출했던 아내가 들어왔을 때 폴은 보이지 않고 옷에 묻은 피를 보며 죽었다고 확신하며 생계를 책임지던 폴이 없어져 이사한다.
폴은 고양이에게 쫓겨 지하실에 갇혀 있지만, 너무 작아진 폴을 알아채진 못한다. 폴은 편안했던 집이 공포의 공간으로 바뀌면서 절망과 좌절이 든다. 이 집은 아내와 딸을 위해 행복하게 설계했지만, 개미만큼 작아진 폴에게는 벗어나지 못하는 지옥과 다를 바 없는 공간이 된다.
영화는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형태가 변하면(사고로 다리를 잃거나, 치매로, 또는 어떤 무엇인가로) 원래 사랑하는 존재에서 점점 멀어진다. 폴보다 더 두려움에 갇혀 있던 캐릭터는 앤트맨의 재닛이다. 앤트맨 여자 친구의 엄마 말이다.
폴은 그래도 지하실이라는 인간사회에 속한 공간이지만 재닛은 분자 원자 그런 세계에 갇히게 된다. 난생처음 보는 풍경과 생물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만 둥둥 떠다녀야 하는 무서움과 두려움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슈링킹 맨은 사이언스 픽션 소설계의 전설 중 리처드 메드슨의 소설이다. 57년에 사이언스 픽션 영화가 또 한 편 같이 공개되는데 슈링킹 맨과 반대로 [어메이징 콜러설 맨]이다.
놀랍도록 거대한 남자라는 영화와 슈링킹 맨은 원래 당시의 제작환경을 고려해 B급 코미디영화로 만들어지려고 했지만, 특수효과를 맡았던 감독이 투입되면서 코미디를 버리고 진지하게 연출이 되었다.
거대한 남자의 이야기 역시 후세에 많은 영화로 리메이크되었다. 슈링킹 맨이 인간이 가지는 근원적인 공포, 버려지는 슬픔과 외로움, 이데올로기적 두려움을 말한다면, 거대한 남자는 방사능 공포에 대한 이야기다. 50년대 세계는 그런 격동기였다.
거대한 남자도 의미적으로 바뀐 형태 때문에 인간들의 공격을 받는다. 존 가드너의 [그렌델]을 읽어보면 그렌델 역시 흉측하게 생겼다. 그렌델은 인간들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인간은 그렌덴의 외모만 보고 공격을 해버렸다.
그랬을 때 그렌델과 콜러설 거인이 공격을 피하기 위해 조금만 반격해도 실로 엄청난 힘이 가해져 인간들은 죽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슈링킹 맨이 70년 만에 리메이크가 되었다면 거대한 남자도 아마 리메이크가 되지 않을까.
현재는 시각적 재미는 대체로 충족이 되니 이 전체의 이야기처럼 인간에 대해서 좀 더 다가가는 연출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