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 초 화창한 5월 27일 신주쿠역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다. 각각 다른 교복을 입은 여고생 54명이 선로 앞에 일렬로 서서 손을 잡고 맑고 깨끗한 얼굴로 하나, 둘, 셋을 외친다.
그리고 열차가 진입함과 동시에 54명은 선로로 뛰어내려 열차에 갈리고 피부가 터지고 피가 낭자하면서 지옥이 된다. 영화는 이렇게 충격으로 시작한다.
여고생들의 해맑은 얼굴과 도저히 그런 얼굴로 할 수 없는 극단적 선택을 54명이나 되는 수의 여고생이 뛰어내려 버린다. 이후 날짜 별로 자살이 이어진다.
병원의 야간 근무를 하던 간호사가 [디저트]라는 아이돌의 노래를 듣고 있던 두 명의 간호사 중 한 명이 빵을 사러 간 사이 창문을 열고 사이렌이 울리는 쪽을 보다가 그대로 뛰어내린다. 빵을 사 온 간호사는 경비원과 이야기하다가 빵이라는 말을 듣고 또 뛰어내린다.
자살은 유행처럼 번지고 경찰은 오리무중이다. 해커에게 걸려 온 전화로 경찰은 집단 관련 사이트를 알게 된다. 현장에서 발견된 하얀 가방 안에는 피부를 이어 붙여 두루마리로 만든 것이 들어있다.
이후 학교에서 학생들이 집단 자살을 하고, 애인과 함께 죽고 싶어서 애인이 길을 걸어가는 시간에 맞춰 뛰어내려 자살을 하는 사람도 생긴다. 영화는 거의 25년 전이라 화면이 엉성해서 그렇지 몹시 충격이다.
자살 클럽 사이트에는 실시간으로 사망자가 늘어가는 숫자가 체크되고 있다. 일본 전역에서 개인이나 작은 규모로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경찰은 범죄라 단정 짓고 수사에 임하는데. 감독인 소노 시온을 좋아한다면 충격에 충격이 난무하는 이 영화를 좋아할 것이다. 소노 시온은 17세인가 시인으로 등단했던 인물이다.
일본의 이런 사이코패스적 영상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한 영화는 당시 사회성을 짙게 반영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흥기였던 바블시대에도 젊은 층은 구석으로 내몰려 극단적 선택을 많이 했다. 기성세대는 돈을 버는 것에 눈이 멀어 전혀 청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예술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게 하루키와 오자키 유타카 같은 사람이었다. 그들의 글과 노래는 구석으로 내몰린 청춘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하지만 오자키 유타카의 죽음과 일본에서 글을 쓸 수 없었던 하루키.
거품이 무너지고 격동의 밀레니엄 시대에 유행처럼 번진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것이다. 영화는 상상력을 극도로 자극한다. 이 영화 속에도 형사 구로다에게 자신의 일만 생각하느라 다른 사람, 즉 가족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나누지 못하는 범죄자라고 해커가 말한다.
우리는 대체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멀쩡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내가 남에게 준 상처보다 내가 남에게 받은 상처가 더 많고 더 크다고 착각해서 그렇다. 이 영화는 뇌와 시각을 자극하는 영화 같지만 인간을 안아줘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