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소설 쓰고 앉아있네


공포영화가 지속적으로 쏟아지고 있지만 현재 흡족해하는 공포영화는 잘 나오지 않는다. 너무 잔인한 장면에 쏠려 있다거나, 보여주기식 호러에만 몰려 있고 공포영화로 할 수 있는 서사가 바닥이 났기 때문이다.

진짜 공포는 어제까지 사랑하던 옆의 사람이 돌변하는 건데 말이야.

모방, 반복, 클리셰일 수밖에 없는 공포영화에서 이 3요소를 적절하게만 배치하고 구성을 잡는다면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공포물이지만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스승의 은혜]는 한국 공포영화의 새로운 서막을 열었다. 아바타가 3D영화의 문을 연 것처럼 말이다. [스승의 은혜] 이전의 한국 공포영화는 민담이나 설화로 이어지는 원혼의 이야기가 위주였다면 스승의 은혜에서는 처음으로 신체 훼손이라는 신선한 공포가 등장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눈꺼풀의 깜빡임을 하지 못하게 호치키스로 눈을 받아버리고, 입을 다물지 못하게 잘게 부순 면도날을 입에 넣고 펄펄 끓는 물을 붓는다.

이런 장면에서 보는 이들은 굉장한 공포를 느낌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쾌락까지 느낀다. 펄펄 끓는 물의 무서움은 바보라도 알 수 있다. 칼에 찔리는 공포보다 뜨거운 물의 공포를 더 잘 안다.

뜨거운 물에 덴 적이 있는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쾌락을 느끼는 건 어릴 때 가끔 살아 있는 게나 장어 같은 생물에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팔딱이는 그것들을 보며 도파민이 터짐을 느꼈다.

잘게 부순 면도날을 입안에 가득 집어넣는 것 역시 그렇다. 한 번쯤 칼에 베인 적이 있어서 그 날카로움, 선단 공포에 버금가는 무서움에 대해서 짐작한다.

부서진 면도날이 입 안으로 들어가 몸속에서 난도질할 것을 알기에 보는 사람은 영화 속 당하는 사람의 공포에 이입한다.

스승의 은혜는 2006년에 나왔는데 아무래도 2004년에 나와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쏘우]의 영향을 받았다. 공포영화에는 주인공은 모르지만, 관객만 알고 있는 사실이 있어서 [그곳으로 가면 안 돼, 가지 마]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주인공과 함께 관객이 같이 흐름에 의식이 따라가는 경우도 있다.

주인공과 같이 공포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관객은 개개인의 삶을 통해서 면도날이라든가 펄펄 끓는 물에 대한 공포는 어느 정도 학습되어 있다. 요즘 나오는 놀람주의 영화는 [맵기]와 비슷하다.

매운 정도가 사람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학습을 통해 터득한 공포는 대체로 일정한 공포를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스승의 은혜]는 이 죽일 놈의 클리셰를 어쩌지 못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