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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고 앉아있네

이 영화는 두 남자를 구원하는 검은 장갑이라 불리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김보연은 서슬이 퍼른 가난의 끝을 달리는 가운데에서도, 춥고 추운 겨울밤 불 꺼진 방바닥에서도 빛이 날 만큼 아름답다.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에 보기 드물게 예쁜, 검은 장갑을 낀 명숙[김보연]은 아들을 데리고 구멍가게를 하는 태섭[김희라]에게 개가하여 살고 있다.

태섭은 명숙이 데리고 온 아들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기에 무시하고 괄시한다. 아들은 동네 아이들과 함께 도둑질을 하다가 걸려 심하게 혼나기를 반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택시운전사 주석[안성기]이 나타나면서 갈등이 일어난다. 이 이야기의 사건은 전부 가난에서 시작되었다. 아무리 발 벗고 노력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이 결국 소매치기를 하고, 감방에 들어간 남편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람을 때리다가 죽이고 만다.

여러 사건들이 겹치면서 이 꼬방동네에서 결국 터지고 만다. 가난한 동네라도 빛을 내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공 목사[송재호]와 그 공 목사를 사랑하지만 미친년이 되어 행패만 부르는 여자[김형자]도 전부 각각의 사정이 있다.

가장 사정이 있는 사람이 태섭이다. 과거를 전부 숨기고 애까지 있는 명숙을 아내로 삼고 이 동네에서 동네 일을 봐주면서 구멍가게를 한다. 과오 같은 것을 반성하려는 듯한 일상을 보내지만 주석이 나타나면서 모든 것이 틀어진다.

이 영화에서 김보연의 연기는 정말 빛을 발한다. 명숙은 고래심줄 같은 몸으로 악착같은 생활을 하지만, 그저 예쁘고 여린 여자였을 뿐이다. 한 번도 벗지 못한 검은 장갑은 왜 끼고 있는지, 태섭은 어떤 과거를 숨기고 있는지, 주석이 왜 나타났는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배우들 중 놀랐던 건 명숙의 어린 아들로 나오는 어린 배우다. 내내 반항을 해야 하는데 그걸 아주 잘 해낸다. 친아버지가 아닌 태섭에게 맞으면서도 대들고, 어린 생활이 싫어서 계속 도둑질을 하며 반항을 한다.

처절하게 가난이 이어지지만 동네잔치가 열릴 때에는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모여서 음식을 해서 나눠 먹는다. 돼지머리를 삶고, 편육을 만들고, 시루떡을 찌는 풍경은 정말 정겹다.

이 영화를 비롯해서 영화 [개그맨]까지 봤는데 주인공으로 안성기가 나온다. 이 영화는 배창호 감독의 작품이다. 배창호 감독은 열 살 정도 많은 이장호 감독의 조감독을 하다가 감독이 되었고, 배창호 감독의 조감독은 이명세 감독이었다.

이 세 감독의 공통점이 전부 안성기 배우를 주연으로 하는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에 안성기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배창호 감독의 영화에도 주연을 맡았다.

배창호 감독은 18편 정도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13편 영화에 안성기 배우가 주연이다. 그리고 이명세의 명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주연이었다. 감독들에게 이렇게 사랑을 받은 배우가 또 있을까 싶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명숙의 다정함이 두 남자를 구원한다. 마지막은 행복하게 끝난다. 김형자도 정신 차리고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던 행색에서 제대로 옷을 입고 마을 아이들을 돌보며 공 목사를 돕는다.

이 시기부터 정부의 압력으로 얄개 시대처럼 밝기만 한 영화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시대 아픔을 담는 감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석과 명숙과 아들이 함께 택시를 타고 가는 모습으로 행복하게 끝나지만, 이들의 그 뒤 이야기가 행복하게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우리는 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아름답다. 아름다움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명숙의 인간애, 다정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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