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이문세가 예전처럼 오전에 라디오 디제이를 한다. 날이 너무 좋았던 날에 이문세가 오늘 같은 날은 모든 걸 잠시 내려놓고 김밥 싸들고 소풍을 가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일 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이고, 그 속에 서 있다. 역사 속에 서 있으면 사실 알아채기가 힘들다. 어릴 때 소풍을 가면 김밥과 사이다였다. 소풍은 당일이 다가오기 일주일 전부터 두근거리다가, 소풍 전 날에 도파민이 터진다.
도형이는 우리 반은 아니었지만 같은 동네였다. 동네에서 같이 자란 도형이는 여자애로 소풍날에도 김밥을 못 싸 올 때가 있었다. 도형이는 아빠만 있었는데, 아빠는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갔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셨기 때문이었다.
도형이는 털팔이 같은 성격이라 그런 거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김밥을 뺏어먹으면 되니까. 김밥을 먹으려고 도시락을 열었을 때 김밥은 여기저기 부딪쳐 모양이 찌그러졌다. 하지만 도형이는 두 개씩 집어 입에 넣었다. 나도 질세라 한가득 김밥을 입에 욱여넣었다.
그러다 목이 막히면 사이다를 마셨다. 사이다 쟁탈전 역시 치열했다. 김밥과 사이다는 잘 어울린다. 김밥을 입에 가득 넣고 사이다를 마시면 입 안이 소풍이었다. 둘이 서로 놀려가며 김밥을 먹고 사이다를 마셨다. 도형이는 묘한 아이로, 나와 동생이 집에서 아직 자고 있을 아침에도 가끔 우리 집에서 엄마와 함께 초파일에 김밥을 말았다.
부스스 일어났을 때 도형이가 접시에 김밥을 잔뜩 올려서 들고 왔다. 발로 나를 차면서 티브이를 보자고 했다.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도형이와 함께 김밥을 먹으며 티브이를 봤다. 김밥을 먹고 냉장고에서 사이다를 꺼내 마셨다. 당시에는 그게 행복인지 몰랐다. 도형이는 가족처럼 스며들었다.
우리 집에서 뭘 하든 이상하지 않았고 같이 어울려 저녁도 먹고 그렇게 지냈다. 도형이는 늘 씩씩했고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든든했다. 그런 도형이가 우는 모습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때 도형이에게 괜찮으냐고 물어보지 못했다. 그날이 지나고 도형이는 여전히 씩씩했지만, 나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도형이는 나를 위해 옆 동네 남자애들에게 대들기도 했었다. 그때 도형이가 아니었으며 나는 그 애들에게 해코지를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도형이가 울고 있을 때 위로 한 번 못해줬다. 말해야지 말해야지 했지만 도형이는 어느 날 이사를 가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