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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고 앉아있네

인터넷그림을 보고 마우스로 그려봄



학창 시절에 살던 집은 마당이 있었다. 앞마당이 꽤 커서 마당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마당에 이불을 빨아서 널어놓고 이불의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건 어항 속 물고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계속 보게 된다.

겨울 이불은 흠뻑 젖어서 무거웠고, 그 몸을 지탱하는 빨랫줄은 아슬아슬하지만 용케도 이불을 받치고 있었다. 우리는 신뢰하고 있었다. 빨랫줄은 얇지만 튼튼했다. 긴 시간 온갖 빨래의 무게를 잘 견뎌왔던 것이다. 나는 마당에 앉아 물이 뚝뚝 떨어져 만들어내는 무늬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마당에는 화단이 있었다. 무화과나무도 있고, 내가 심어 놓은 포도나무가 올곧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자라서 거짓말처럼 철이면 몇 송이 열리기도 했다. 생긴 건 포도라는 걸 알겠지만, 맛에서는 멀어진 포도였다. 어쩌면 포도라는 게 원래 그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르지. 화단의 여러 나무들 틈바구니 속에서 적은 양의 영양분을 빨아먹고 작고 보잘것없는 모습이지만 신기하게도 포도가 열렸다. 그런 포도나무도 겨울을 나고 있었다.

강아지도 한 마리 있었다. 내 옆에 앉아서 따뜻한 볕을 받고 잠들어 있다. 잠든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는 일은 무엇보다 행복하다. 이불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게 지겨울 때 [지하인간]을 읽었다. 처와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가서 행방불명이 된 아버지를 찾는 스탠리 브로더스트와 친아버지를 찾아 나선 여대생 수전. 이들과 함께 산장으로 간 아들 로니를 찾아달라는 진의 의뢰를 받은 사립탐정 루 아처의 이야기다.

이불빨래를 너는 따뜻한 겨울의 일요일이면 마당에 앉아서 고민 없이 한두 시간씩 소설을 읽었다. 그런 일요일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불안도 없고 생각도 많이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럴 시간에 소설을 읽었으니까. 공포와 두려움도 크지 않았다. 지금은 마당으로 걸어오시던 아버지도, 마당에서 잠을 자던 강아지도, 마당도 전부 소멸해 버렸다. 그때의 마당은 오로지 차가운 공기의 냄새와 입자, 그걸 덮어줄 따뜻한 햇살의 기운이 가득할 때 눈앞에 나타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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