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소설 쓰고 앉아있네

크로넨버그가 마치 80년대에 21세기를 내다본 듯한 이야기로 만든 것 같은 영화다. 아마도 당시 크로넨버그 같은 감독은 약간은 답답했을 것이다. 상상력은 뇌와 피부를 뚫고 나오는데 그걸 표현할 방법이 적었던 시대라 영화로 표현하기에도 힘들었다.

하지만 크로넨버그가 누구인가. 환상과 욕구를 기괴하고 괴괴한 자극으로 표현하는 감독이 아니었던가.

현재 21세기에 인공지능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시기의 영화들을 보라. 모든 영화가 재미있지는 않다. 오히려 80년대보다 상상력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해서 어설픈 영화만 줄창 나오고 있다.

중간계 같은 영화를 영화로 봐야 하나 싶다. 80년대에 나온 비디오드롬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영화 [비디오드롬]은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잔인하고 알 수 없는 욕망을 잘 꼬집었다. 인간은 안 그런 척 하지만, 타인의 싸움을 좋아하며, 타인의 불행을 즐기며, 살인을 할 수 없으니 살인자를 마음으로 응원하며, 성적으로 복종하거나 당하고 싶어 한다.

인간은 어쩌면 전부 성악설에 근거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교육과 훈련, 법규와 도덕적 관점을 통해서 그걸 꾹 누르고 참고 있을 것이다. 영화와 시리즈로 탄생한 [웨스트 월드]를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를 잘 알 수 있다.

수잔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와 [타인의 고통]를 봐도 티브이를 통해 흘러나오는 타국의 가난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저녁 식사를 하면서 보는데, 타인의 고통을 식사를 즐기면서 시청한다. 화면이 지나가면 그걸로 끝이다. 같은 의미의 글들이 있다.

영화는 티브이가 보급되고 비디오가 세계적으로 흘러넘치면서 비디오에 중독이 되면 환각을 일으켜 뇌에 종양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이 비디오드롬에서 빠져나올 수 없고 더 깊게 들어가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게 된다.

이 비디오드롬을 현재까지 죽 끌고 와서 나온 버전(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소년의 시간]이다. 유튜브, 쇼츠, 틱톡이라는 비디오를 대체한 짧고 강력한 영상에 매몰되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나 잘 보여준 시리즈였다. 특히 1화는 모두가 알겠지만, 원테이크다. 미친 연출인 것이다.

83년에 나온 [비디오드롬]을 극장에서 봤다면 영화 속 환각을 관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연출이라고 생각된다. 사람들은 자극을 원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하지만, 실제로는 이 평범하고 고루한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자극을 비디오에서 찾는다.

그래서 맥스 렌은 자극적은 콘텐츠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일상에서 너무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중독으로 신체가 변형되고 극단적인 공포와 흥분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극과 일상은 실은 상당히 밀접하다.

비디오드롬을 크로넨버그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장르가 크로넨버그다.

비디오드롬에는 당시 최고 주가를 달리고 있던 블론디의 보컬 데보라 헤리가 성적 유혹미를 뽐내며 등장한다.

자극이란 익숙해지면 자극을 뛰어넘는 자극을 원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중독이 되고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잊게 된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