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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고 앉아있네


이 영화는 좋은 영화다. 재미는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야기할 거리가 아주 많은 영화로,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너무 재미있게 봤다. 8번 출구는 게임이 원작이고, 소설도 있다. 소설을 읽으면 주인공에 대해서 조금은 더 알 수 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유념하길 바람. 영화에서 주인공의 이름과 직업은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의 직업은 프로그래머로, 정규직은 아니고 파견직으로 여러 군데를 옮겨 다니며 일을 한다. 영화에서도 그런 부분이 나온다. 이번에 파견직으로 정해진 직장에 출근한다고 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들어간 지하철은 매일 다니는 그런 지하철이 아니다. 그리하여 8번 출구로 나가야만 하는 백 룸 공간에 갇혔다는 것도 늦게 알게 된다. 주인공은 볼레로를 듣는다. 출근 시간에 볼레로를 듣는 일반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볼레로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곡이기도 하다.

처음 가는 출근길은 지옥철이다.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이 비슷한 표정으로 가득 타서 출근을 한다. 매일 이런 지옥을 겪어야 한다. 그때 소란스러워 이어폰을 빼니 아이엄마에게 안긴 아기가 심하게 울고 앞의 남성이 큰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외면한다.

이 영화가 말하는 지옥이라는 건 사람들의 외면을 말한다. 중반부에 주인공이 여자 친구와 통화가 되었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한다. 아기가 운다고 남자가 소리 지르고 욕을 하는 아기엄마를 외면했다고.

그런 부분은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8번 출구를 찾는 지하도를 단테의 연옥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주인공은 8번 출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같은 공간의 비슷한 모습을 세세하게 머리에 새긴다. 평소에 외면했던 것들에 대해서 외면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상현상과 이상하지 않은 현상을 잘 찾아서 7번 출구까지 갔다가 다시 실패하여 0번 출구부터 시작을 한다면, 이런 반복이 계속되면 나중에는 타일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쓰게 된다. 몇 번이나 다시 0번 출구로 돌아와 시작을 하다가 6번이나 7번 출구를 맞이하면 마지막 8번 출구를 위해 형광등의 모양, 길이, 타일의 크기 같은 것들도 외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아이와 함께 가다가 샤이닝의 오마주 바닷물이 흘러넘치는 장면은, 주인공은 원래 동일본 대지진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소설에 주인공의 고향이 대지진으로 쓰나미가 몰려왔지만, 주인공의 가족이 위험하니 오지 말라고 해서 외면해 버린다. 모두가 고향으로 가서 실종자를 찾는데 도움을 주고 했지만 주인공은 외면했기에 그 트라우마가 이상현상처럼 나타났다. 천식으로 기구로 호흡을 하는 건 코로나 때 호흡기의 문제가 있었다.

게임이 재미있지만 너무 간단하기에 영화로 90분가량 영화 이야기를 끌고 가려면 게임 그 이상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배회자의 버전과 어린이까지 등장시켜 이상현상에 대해서 보여준다. 배회자는 왜 주인공의 눈에 무표정의 몹이 되었는가 하는 건, 배회자는 8번 출구를 다 깨지 못했는데도 출입구로 나가버린다. 아이가 말렸지만 그냥 나가버려 영원히 몹으로 남아서 지하도를 배회한다.

아이의 존재와 또 다른 여고생 배회자의 이야기. 아이와 주인공이 고마츠 나나를 같이 보는데 뒤틀어진 시간의 공간 같은 이야기가 풍부하다. 뒤틀린 시간 속에서 만난 자신의 아이를 알아채지 못한 것은 영화 후에 여자친구였던 고마츠 나나를 만나서 어떤 결말이 되었는지 예시하는 부분이다.

임신한 여자친구를 외면 한 채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지옥인 것이다. 하지만 쓰나미에 휩쓸렸을 때 주인공은 아이를 외면하지 않는다. 쓰나미가 지나간 후에는 뒤틀렸던 시간은 아이와 주인공 각자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아이가(이상현상이 아니다) 출구로 나간 시간대에서는 아빠가 있을 것이다. 8번 출구에서 처럼 아빠와 아이가 서로 몰라보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돌아간 시간대에서는.

그리고 주인공 시간대에서 주인공은 여자 친구를 외면하지 않고 가겠다고 한다. 마지막 아기에게 소리를 지르는 남자에게 고개를 돌리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게임을 하는 듯한 체험을 하면서 영화를 본다는 기분을 얻는 아주 좋은 영화다. 보고 나면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영화 [8번 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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