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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lcineta님의 서재

TV 채널을 무심코 이리저리 돌리다 문득 멈췄다.

한 케이블 채널에서 막 영화가 시작되면서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나도 모르게 그 노래에 맞춰 밑에 흐르고 있는

자막에 눈길이 갔다. 원래 영화에 나오는 노래 가사 번역은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상하지. 그렇게 번역을 보다 그만 실소가 나왔다.

 

 

번역자가 모르고 그랬는지 실수로 그랬는지 문장을 거꾸로 번역해서

슬픈 노래가 그만 우스꽝스러워지고 말았다.

영화나 소설 번역에서 노래 가사 번역이란 계륵 같은 존재다.

작품에 나오니 뺄 수도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하지만 또 그만큼 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 나가던 작품 분위기가 삼천포로 빠질 수도 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굳이 가사까지 번역을 해야 하나, 싶지만 뭐 할 수 없지.

 

 

어쨌든 노래 가사 번역을 보며 혼자 킬킬거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그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요즘 판타지 시리즈 2편을 시작했는데. 1편 작업을 몇 년 전에 해서 등장인물들이나 배경이 되는 곳의

지명이 잘 기억나지 않아 통일하기 위해 1권을 다시 읽어봤다.

1편을 번역한 게 횟수로 3년 전쯤인 것 같은데. 다시 읽어보니 맙소사!

하루키는 자신이 번역한 작품을 다시 읽어보는 건 그날 신었던 양말짝을 들어

냄새를 맡아보는 것 같다고 했는데. 정말이지 절묘한 묘사다.

지금 남의 번역 보고 킬킬거릴 때가 아니란 말이지-.-

 

 

모든 일이 다 그러겠지만 번역 역시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타인의 번역은 읽지 않고 한국 소설만 읽는다는 번역가도 봤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번역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기만의 스타일과 문체를

갖게 되는데 그렇게 그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남의 번역을 읽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리고 장르의 경계를 넘어 살펴보는 것도 좋다.

출판 번역가는 영상 번역가의 번역을 보면서 소설 속 대사를 자연스럽게 번역할 수 있는 테크닉을 배울 수 있다.

영상 번역가 역시 책 번역을 읽으면서 단문뿐 아니라 장문 번역에도 능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문서 번역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사실 조금만 넓혀보면 통역 역시 그렇다.

통역은 통역 대상자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그 내용을 금방 잊는다.

흔히 메모리 스팬이라고 부르는, 기억력이 짧아서 기억이 안 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전달해야 할 내용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그건 결국 외국어 실력이지만 그렇게 파악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선 또 다시 명쾌한

국어 구사력이 필요한데 그걸 기를 수 있는 힘 역시 타인의 번역물을 참고하는데서 나온다.

 

 

어찌 됐든 번역은 쉽지 않다.

외국어 실력만 갖췄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에 더해 외국어보다 더 현란한 국어 실력이

있어야 한다. 거기다 백과사전적 지식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방면에 상식을

쌓아야 하는 일. 그래도 매번 사람들의 욕을 먹는 것이 번역가의 숙명이다.

욕을 먹을 때 먹더라도 기왕에 냄새 맡은 양말짝에서 고린내가 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게 번역 일의 한계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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