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춤이다>를 읽고..
revolmy 2008/08/2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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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내내 여자, 최승희와 김선우.. 김선우와 최승희를 만나 같이 놀았다.
간혹 목이 메어 소설의 일부를 낭독하기도 했는데..
아직도 소설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 같아 의식의 명징함을 자신할 수 없다.
소설은 김선우의 그간의 작품들의 연장선에서 읽혀진다.
시 같은 소설.
김선우만의 매력적인 문체가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뭣보다 장황하지 않으니 얼마나 큰 미덕을 갖고 있는 소설인지.
어떤 평에서 영화의 장면이 떠올려진다고 하였는데,
시나리오 작업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 더욱 그런 듯하였다.
음..
소설을 3분의 2쯤 읽다가 갑자기 흰죽이 먹고싶어 흰죽을 끓여 오뎅볶음과 김, 열무김치와 함께 먹었다.
소설속에서 최승희는 흰죽과 새우젓을 먹는다. 정성스럽게.
소박한 흰죽.. 바로 그 자리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등장한 것은 축복이었다. ㅎㅎ
216페이지 몽양 여운형 선생이 등장한 장면.. 목이 극도로 메었다.
손기정과 최승희를 초청하여 격려했던 역사의 한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하였다.
아.. 20대 내내 그분, 몽양 선생님의 그림자를 쫓아다녔다.
서른을 넘기면서 나의 길을 가느라 많이 소홀해졌지만,
식민지 조선, 그 한가운데에서 가장 솔직하고 담백하며 대담한 행보를 보였던 이는 바로 몽양 선생님이 아닐까.
일제 강점기, 해방국면에서 뚜렷한 혜안과 민주적인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최승희처럼 21세기의 감각으로 20세기를 살았던 우리의 영원한 지도자, 몽양 여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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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29페이지..
조선에서 먹고살 만하던 사람들은 미국에서도 먹고살 만했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한답시고 선전하며 독립자금을 대고 있다고 떠벌리는 그들..
최승희는 말한다.
지금 이 시간 조선과 일본에선 정말로 목숨 바쳐 싸우다 죽어가는 운동가들이 있다고.
당신들 백 명이 일본 물건을 배척하자는 '일화배척'의 배지를 만들어 팔며 조선 독립을 운운하는 것보다 나, 최승희 한 사람이 미국 예술계에 우뚝 서는 게 낫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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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위 대목에서 '이승만'같은 이들을 떠올렸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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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여자에겐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자신이 이루는 것이 혼자만의 성취가 아니라는 느낌,
어떤 간절한 기원 같은 것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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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 모두는 연결된 존재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설 수 없는 존재들.
하여 불변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닌, 연기적으로 존재하는 무상한 존재들.
바로.. 무상하여 고통스럽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운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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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살춤 장면..
전쟁터의 사지에서 최승희의 보살춤을 본 후, 숨죽이고 있다가 말없이 기립박수를 치며 눈물을 훔치던 병사들.
세상에 고통이 있는 한 현자들은 계속 보살의 몸으로 세상에 온다고..
일신의 해탈로 열반에 드는 것이 끝이 아니라 하였다고..
해탈한 마음이 해탈하지 못한 중생들을 아파하여 함께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보살도..
보살춤을 보는 일은 황홀하고 고통스럽다.. 어머니를 보는 일처럼 힘들고 아프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듣는다는 관음보살의 얼굴.. 관음의 자비, 관음의 슬픔.
아름답고 아프고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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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그리고 남편과 이별하던 장면..
"이 몸, 이 몸이 내조국이라고, 내 춤이 내 조국"이라고 절규하던 여자, 최승희.
그리고..
"개인적인 고통이 실은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보편적인 고통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면 조금 위로가 되었다."
마지막..
"몸을 버리는 순간 몸이 얻어지는 거야. 고치에서 춤을 꺼내듯, 이 순간의 몸과 다음 순간의 몸이 그렇게 연결되는 거야."
이 대목에서 찰나, 아찰나의 순간이 이어져있는, 오온의 찰라생멸로 가합상태에 놓여있는 우리의 몸을 생각했다.
이제, 작가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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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8월 8일,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다는 최승희.
그 이듬해에 태어난 김선우.
너무도 일찍 코스모폴리탄이 되었던 여자, 최승희.
쿨하기엔 너무 뜨거운 심장을 가진 그녀.
불우와 찬란함의 공존,
화려한 외양 속의 극한의 고독,
결국, 자유에의 갈망.
자유인 춤, 자유인 예술, 자유인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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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초, 토지문화관에서 지금은 대지로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님과 봄을 함께 맞고 보내며 이 소설의 본격적인 구상을 하였다는 사실과 소설의 초고를 해인사에서 썼다는 사실은,
부모님이 원주에 계시고, 스물아홉의 강을 해인사 근처에서 건넜던 나의 상황과 연결되어 묘한 인연의 끈을 감지하게 된다.^^
해인사는 법보종찰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왔고, 내겐 늘 그리운 고향같은 곳이며,
가야산의 기운은 작가의 말씀처럼 머리를 깨우고 가슴을 맑게하는 지혜로운 여신의 품 같다.
최승희의 고향이 강원도인 것으로 보아 작가와 최승희의 연결됨 역시 예사롭지 않은 듯하다.
물론.. 결국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음을, 하여 독존(지독한 에고이스트, 최승희..)의 극점에서 오히려 무아를 사유하고 구현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는 아무것도 구원할 수 없어요".. 소설속에 여러번 등장하는 최승희의 말...
촛불들을 보며 아름다움의 정치를 떠올렸던 작가가 생각난다.
정치가 아름다워진다면... 아.. 상상만해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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