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책 읽기가 예전 같지 않다. 얼마 전 구입한 소설책은 몇 페이지 넘기지도 못하고 책꽂이에 꽂혀 있고, 읽어야 할 논문은 모니터 속에서 나를 시험하듯 쌓여 있다. 마음은 무겁고 머릿속은 복잡하다. 단순한 취향의 변화일까, 아니면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걸까.
아니, 어쩌면 이 공허함은 만성적인 외로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분주한 도시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오히려 더 깊은 고독을 느낀다. 마치 유배지 같은 이 일상에서, 술 한 잔은 유일한 위안이 되어 주곤 한다. 오늘도 익숙하게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 잔에 따랐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 읽었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가 떠올랐다. 서재 구석에 꽂혀 있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초록색 표지의 낡은 책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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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자 200년 전 유배지에서 고독한 시간을 보냈을 다산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그는 한마디의 거짓말도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으로 여기라고 가르쳤고(p.57), 편지 한 자 한 자까지 사실과 어긋나지 않게 쓰라고 당부했다(p.97). 한 글자 한 글자에 꼿꼿한 선비의 기개가 서려 있는 듯한 그의 문장들은, 술기운을 빌려 휘갈겨 쓰는 나의 가벼운 글쓰기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술은 나에게 일종의 도피처이자 해방구다. 팍팍한 현실과 무거운 책임감, 그리고 지독한 외로움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내 안의 솔직한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동시에, 술기운에 기댄 글이 과연 얼마나 진실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남는다. 이런 나 자신이 가끔은 한없이 초라하고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산은 저 멀리 유배지에서도 저렇게 꼿꼿하게 자신을 바로 세우고 학문에 정진했는데, 나는 고작 팍팍한 일상 속 외로움을 핑계로 술잔 뒤에 숨어 취중방담이나 늘어놓고 있으니 말이다.
만약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과연 다산처럼 살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어쩌면 나 역시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침묵하고 타협하며 그렇게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그의 시대는 지금처럼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말 한마디, 글 한 줄에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시대였다. 그 험난한 시절, 유배지에서도 자신만의 꼿꼿함을 잃지 않았던 다산의 강인함이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이건 내 공간이고, 내 글이다. 다산처럼 신중하고 절제된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꼭 부끄러워할 필요가 있을까. 그 시대와 지금은 다르다. 나는 다산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고, 그는 이 시대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의 시대에 글이 절제와 신중의 산물이었다면, 지금의 글은 때로는 자유와 즉흥적 표현의 영역이기도 하다. 적어도 이 공간에서만큼은, 나 역시 내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권리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나에게 글쓰기란, 이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기 위한 나만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취중방담처럼 술기운을 빌려 끄적이는 글 속에서나마, 나는 세상과 소통하고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책임하게 아무 말이나 내뱉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글이 다산이나 다른 사람들의 것과 다르다고 해서 주눅 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꼿꼿한 문장들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 "천리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 번 넘어졌다고 결코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p.174)라는 구절은, 요즘 들어 잦은 실패로 의기소침해 있던 나에게, 그리고 외로움에 지쳐 있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200년 전 유배지에서 쓰인 한 문장이, 팍팍한 현실에 지쳐 있던 나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준 것이다. 어쩌면 술은 단순한 도피 수단을 넘어, 이런 오래된 지혜와 나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가 되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매개체가 되어준 술 한 잔이 있었기에 망가진 나를 다시 추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다산의 편지를 읽으며 생각에 잠긴다.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그의 시대를 떠올리고, 그가 남긴 문장을 되새기며, 여전히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한다. 그리고 때로는 이런 고민 속에서, 이 외로움 속에서 한 줄기 의미를 발견하고,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비록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취중방담처럼 술기운을 빌려 끄적이는 것뿐일지라도, 이 순간 만큼은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싶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때로는 외로움에 휩싸여도, 술 한 잔과 함께 이런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속에서 작은 의미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지금 나에게는 이 작은 바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