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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Tlla님의 서재
  • 칼 같은 글쓰기
  • 아니 에르노.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 11,700원 (10%650)
  • 2005-10-30
  • : 979

아니 에르노의 『칼 같은 글쓰기』는 단순한 인터뷰집을 넘어, 작가의 문학적 여정과 사유의 변천 과정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중요한 텍스트이다. 이 책은 에르노의 삶과 사유를 냉철하게 분석하며, 독자들에게 자기 이해와 사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녀의 글쓰기에 내재된 진정성과 사회 비판 의식은 단순한 예술 작품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그녀의 작품 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특징이다. 에르노는 자신의 글쓰기 과정을 “어느 순간, 어떤 충동이 일어나 몇 페이지를 쓰도록 나 자신을 부추깁니다.”(p. 57)라고 설명하듯, 내면의 강렬한 이끌림에서 글쓰기를 시작한다.


이러한 내면의 이끌림에서 시작되는 에르노의 글쓰기는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그녀는 『칼 같은 글쓰기』에서 자신의 글쓰기 과정을 독특하게 설명한다. 내면의 강렬한 충동에 이끌려 글을 쓰기 시작하지만, 처음부터 명확한 목적을 설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글쓰기의 최종 목적은...내가 타인들 속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입니다.”(p. 67)라고 말하듯, 그녀의 글쓰기는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 타인과의 공감을 지향한다. 또한 그녀는 "내게 하나의 텍스트는 생각과 욕망의 미끄러짐과 겹치기를 통해서 조직되는 무엇입니다..."(p. 20)라고 언급하며, 텍스트가 생각과 욕망의 흐름 속에서 형성됨을 강조한다. 이러한 즉흥적인 글쓰기 방식은 그녀가 의식적인 목적보다는 내면의 진실, 즉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 그리고 그 안에서 마주친 사회적 현실 등을 탐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에르노의 글쓰기가 단순히 지적인 활동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과정임을 시사한다.


에르노의 글쓰기는 전통적인 여성 작가들에게 기대되는 감상적인 로맨스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그녀는 감정적인 과잉이나 꾸며진 이야기 대신, 자신의 경험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방식을 택한다. “내 책에는 아무런 감정적 동요도 여성 작가에게 기대하는 로맨스도 없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 책이 외설로 치부되는 것입니다”라는 그녀의 언급은, 진실을 향한 단호한 의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솔직함은 때로는 비난과 모욕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녀의 글쓰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는 『칼 같은 글쓰기』에서 논의되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명제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에르노는 개인의 경험, 특히 서민 계급 여성의 경험을 통해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을 드러내고자 하며, <남자의 자리>는 이러한 에르노의 문학적 지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와의 대담에서 에르노는 글쓰기와 자신의 신체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녀의 글은 사랑, 고통, 슬픔, 상처 등 신체적인 경험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독자는 이를 통해 글쓰기가 단순한 서술이 아닌 살아있는 감각으로 전달됨을 느낀다. 예를 들어, 에르노는 자신의 작품에서 출산의 고통, 질병의 고통, 성적인 경험 등을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하는데, 이러한 묘사들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신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의 글은 나의 몸과 같습다”는 그녀의 말은, 글쓰기가 단순히 머리로 하는 작업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고 경험한 것을 표현하는 행위임을 보여준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기억을 되살리는 행위이자, 동시에 과거의 감각과 감정을 현재의 신체로 다시 불러오는 행위인 것이다.


에르노는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현실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이는 그녀가 상상이나 허구보다는 진실, 즉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진실을 전달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과 경험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내 책이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가명을 사용할 생각은 하지 않았죠”(p.128) 라는 언급에서 잘 드러난다. 에르노의 솔직함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 사회, 그리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되는 침묵이나 성에 대한 솔직한 논의를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 등 당시 시대의 금기까지 겨냥하며, 독자들에게 강렬한 공감과 동시에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세상과 맞서 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문학적 결단을 넘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자기 폭로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기 폭로는 개인적인 고백을 넘어, 하층 계급 여성의 경험을 통해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을 드러내는 정치적인 행위로 확장된다.


이러한 에르노의 글쓰기는 ‘자기-소설’(auto-fiction), 즉 작가의 실제 경험을 허구와 혼합하여 서술하는 문학 장르라는 문학적 흐름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자기-소설’은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허구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개인의 이야기를 보편적인 인간 경험으로 확장하는 특징을 지닌다. 『칼 같은 글쓰기』에서 에르노는 자신의 글쓰기가 ‘나’라는 개인을 넘어 ‘우리’의 이야기, 즉 집단적인 경험을 담아내고자 한다고 밝히는데, 이는 ‘자기-소설’의 핵심적인 특징과 일맥상통한다. 에르노는 ‘자기-소설’ 형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더욱 강렬한 공감과 몰입을 유도하며, 솔직하고 거침없는 고백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게 하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사회적, 정치적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깨닫게 한다. 『칼 같은 글쓰기』는 이러한 ‘자기-소설’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에르노의 글쓰기 전략을 명확히 보여주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는 이 책에서 단순한 인터뷰어 이상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녀는 마치 탐정처럼 에르노의 글쓰기 여정을 추적하고, 문학 분석가로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자네는 에르노의 글쓰기 원칙과 실제 작품을 꼼꼼하게 분석하며, 에르노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의 생각을 더욱 명료하게 이끌어내고, 때로는 에르노조차 미처 명확히 정의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이러한 자네의 역할 덕분에, 독자는 에르노의 글쓰기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 특히, 자네의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아니 에르노의 문장을 좋아합니다. 그녀의 문장들은 부싯돌 같은 날카로움으로 살아 있는 살점을 도려내고 살갗을 벗겨냅니다”라는 평가는, 에르노의 문체가 가진 날카로운 힘과 진실성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에르노의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는,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가 어떻게 사회적인 의미를 획득하고 확장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생각에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활동입니다...”(p. 97)라고 말하며, 글쓰기가 사회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그녀는 “‘위험한 어떤 것‘을 쓰고 싶은 욕망...내가 손으로 한 번도 노동해보지 않은 만큼 나 자신의 존재 전체로써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p. 68-69) 라 말하며 출신 계급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바르크의 말을 인용하며 ˝글쓰기는 작가가 자기 언어의 본질적 성격을 어느 사회 영역에 위치시킬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 영역을 선택하는 것이다.˝(p.102-103)라 언급하며, 자신의 글쓰기가 지배자의 언어를 빌려 피지배자의 관점을 드러내는 행위임을 명확히 한다. 그녀의 글은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로 나아간다.


결론적으로, 아니 에르노의 『칼 같은 글쓰기』는 독자들에게 단순한 독서 경험 이상의 것을 선사한다. 강렬한 진실성으로 가득 찬 이 책은 독자들을 자기 성찰의 여정으로 초대하고, 삶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곱씹어보게 하며, 글쓰기가 개인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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