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 행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적성이란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적성에도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장래희망에 종교인은 단 한 번도 고려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제가 과학자가 아닌 종교인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번민과 갈등이 있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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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적성은 과학에 맞으니까 나는 반드시 과학에 관련된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은 고정관념일 뿐입니다.
내 적성이 어떤 직업에만 딱 맞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며 살든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최선을 다하다보면 그 일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적성을 발휘하게 됩니다.- P31
부모를 원망하는 것이 수행이 아니듯이 이미 지나간 나의 어리석음을 움켜쥐고 ‘나는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하고 끊임없이 자책하는 것도 수행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P39
불교에서는 보통 ‘욕심을 내려놓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잘못 이해해서 현실의 괴로움을 회피하는 것을 내려놓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려놓는 것과 현실회피는 어떻게 다를까요? 가장 큰 차이점은 결과가 다르다는 겁니다. 내려놓으면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지만, 현실회피는 재발합니다.- P51
배고플 때 밥 먹는 걸 욕심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피곤할 때 잠자는 걸 욕심이라고 하지 않지요. 추울 때 옷 입고 따뜻한 곳을 찾는 것을 욕심이라고 하지 않아요. 배가 부른데도 식탐 때문에 꾸역꾸역 먹는 것, 다른 사람이 굶어 죽는데도 나누어 먹지 않는 것, 이런 것을 욕심이라 합니다.
‘대통령이 되겠다‘ ‘부자가 되겠다‘ 하는 마음 자체가 욕심은 아닙니다. 욕심이라는 것은 원하는 것이 크냐 작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하나의 사실을 두고 모순된 태도를 보일 때 그걸 욕심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돈을 빌려놓고 갚기는 싫고, 저축은 안 해놓고 목돈은 찾고 싶고, 공부는 안 하고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 게 바로 욕심입니다. 이치로는 맞지 않는데 내가 바라면 바라는 대로 이루고 싶은 헛된 생각을 욕심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기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괴로워합니다. 그 괴로움의 밑바닥에는 욕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욕심을 내려놓고 대신에 원을 세우라고 합니다.- P54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공덕을 쌓겠다‘고 생각하기보다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살다가 온갖 어려움이 닥쳐도 ‘내가 빚을 많이 졌구나‘ ‘내가 지금 빚을 열심히 갚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어려움을 쉽게 넘어갈 수 있어요.- P61
된장찌개는 구수하고, 카레 냄새는 역겹다는 느낌은 나의 업식의 반응일 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뒤집어서 바깥에 있는 대상에 좋고 나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된장찌개는 좋고, 카레 냄새는 싫다고 규정하는 것이지요.
결국 똑같은 빛깔인데 내가 어떤 색안경을 끼고 보느냐에 따라서 내 눈에 다른 색깔로 보이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좋고 싫음이 나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 느낌이 나로부터 온 것임을 정확히 안다면 좋다 싫다 시비할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 감정에 빠지지는 않게 됩니다.- P70
지나간 잘못을 후회하며 자책하는 것은 어리석은 겁니다. 후회한다는 건 실수를 저지른 자기를 미워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이에오. 후회는 자기에 대한 또다른 학대입니다. ‘나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야 할 훌륭한 인간인데, 내가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렇게 ‘잘난 나‘라는 게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후회를 하는 겁니다.- P96
열등의식이 허상임을 알아야 열등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 존재는 다만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아서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열등감과 우월감을 넘어 행복으로 가는 첫걸음이에요.- P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