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희귀종 ‘읽는 사람‘의 일원인 제가 또 다른 ‘읽는 사람‘인 당신을 생각하며 이 책을 씁니다.- P4
책이라는 미디어를 사람들이 좀더 빈번하게 접할 수 있다면, 그러기 위해 서점이 책 속에서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면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헛헛함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P30
아뿔싸.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둘러싸고 있는 이 시간 차이! (...) 저의 세점은 대학과 사회를 잇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는 공간, 사회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생활인이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P33
니은서점을 설계할 때 누군가의 서재에 놀러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서점을 만들고 싶었어요.- P66
책을 꽤 많이 읽은 편이라고 생각했기에 입고할 도서 선정은 식은 죽 먹기일 줄 알았어요. 하지만 독자로서 필요한 책을 그때그때 주문하는 것과 서점의 판매용 책장을 채우는 일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P73
니은서점의 서가에는 판매용 책 사이에 ‘공유서재‘라는 스티커가 붙은 책이 꽂혀 있는데요, 제가 읽은 책들입니다. 공유서재는 큐레이션 서점 니은서점 속에 숨겨진 또 다른 큐레이션인 셈이에요. 공유서재의 책을 펼쳐보면 밑줄 그어져 있고, 메모도 쓰여 있고 포스트잇도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공유서재의 책에는 출판사에서 홍보용으로 만든 띠지에 적힌 문안이나 유명인의 추천사와는 다른 마스터 북텐더의 솔직한 감상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 마스터 북텐더의 메모는 책방이라는 소우주를 여행하는 또 다른 여행자가 참고할 수 있는 발굴기인 셈입니다.- P81
독립 서점은 카페를 겸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서점이 카페를 겸하다보면 가끔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도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른 서점들이 어떻게 운영되나 살펴보려고 여기저기 다녔는데, 카페를 겸하는 서점은 손님이 스무디라도 주문하면 믹서기가 마치 폭격기라도 된 듯 왱왱거리는 소음을 내며 책을 폭파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카페라테를 만들기 위해 우유 거품을 만드는 소리도 몰입을 방해하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습니다. 우리가 서점에서 기대하는 고요함이 사라지는 순간이죠.
그래서! 책만 팔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P86
결국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진짜 이유는 핑곗거리로 내세우는 시간 부족이 아니라 독서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아요.
독서 자체를 아예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책책책을 읽읍시다"라고 캠페인을 하든, 노동 시간을 줄여서 좀더 많은 자유시간이 생기든 책 읽는 사람은 결코 늘어나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은 이렇게 바꿔볼 수 있을 겁니다. 왜 어떤 사람은 독서를 그렇게 싫어할까요? 독서라는 행위가 어떤 사람에게는 왜 그리 낯설기만 할까요?- P103
제 인생의 서점들이 없었다면 사회학자가 된 저도 없었을 것이고, 니은서점도 없었을 것이니 세상은 이렇게 이어져 서로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만들어내나봅니다. 어떻게 하면 ‘서점 없음‘이 디폴트인 이들에게 서점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과제가 하나 더 추가되었습니다.- P125
책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책을 읽으면서 내 뇌가 역동적으로 움직였던 그 흔적을 기록하기 위한 출발점은 책 구입입니다. 책 구입은 대량생산품인 책을 오롯이 나만의 것, 세계에서 오직 한 권만 존재하는 책으로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지요. 책을 구입해서 책의 소유권이 내게 있다면, 그 책에는 나만의 능동적 독서의 흔적을 마음껏 남겨도 됩니다.- P143
망겔이 전자책과 종이책을 비교하면서 전자책에 대한 사랑이 플라토닉하다면 종이책에 대한 사랑은 에로틱하다는 비유를 사용했는데, 그 문구를 읽으면서 ‘와, 절묘한 표현이다‘라고 생각했어요.- P155
책의 물성이 이렇게 유혹적이라면 그 매력이 철철 넘쳐 흐르는 종이책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게 서점입니다.- P161
책 원고는 교정 교열이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책은 뚝딱하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면 편집자들이 그 원고를 꼼꼼하게 검토하죠.
내용적 검토뿐만 아니라 문법적 검토도 이뤄져요. 이 과정에서 한국어는 다듬어지고 자랍니다. 즉 한국어로 쓰인 책이 많이 출간되면 될수록 한국어라는 언어는 어린 언어에서 성숙한 언어로 발전하는 것이지요.- P169
출판 산업이 없다면, 출판산업을 구성하는 각 행위자들의 헌신이 없다면 한국어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실용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한국어가 사라져도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요.
일부 극단적인 주장처럼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면 경제적 편이성에서는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지요. 그럼에도 우리가 영어 공용어 주장에 찬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잖아요. 그렇게 되면 윤동주 시의 아름다움, 박완서 소설의 조근조근한 말투, 김서령 산문의 맛깔스러움도 사라질 테니까요. 여러분이 한국어로 된 한국 작가가 쓴 책을 구입하신다면, 아직은 어린 언어인 한국어가 성장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P171
실패 없이 성공에 바로 도달하려 하기에 사람들은 이른바 필독서 리스트에 영향을 받기도 하는데요. 자신을 믿지 못하는 거죠 이건 ‘읽는 사람의 자세가 아닙니다. ‘읽는 사람‘은 자신을 믿습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다소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지만, 제 경험에 기반해서 좋은 ‘읽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단호하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절대 ‘○○대학교 추천도서 100‘ 따위의 추천 리스트를 참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정말 많은 대학이 추천 리스트를 제시하고 있어요. ‘서울대학교 추천 도서 100‘ 리스트를 보겠습니다. 일단 제가 그 리스트 중에서 몇 권이나 읽었는지를 체크해봤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제가 사회학자이고 대학교수이고 책도 꽤 쓴 사람이라 저는 그래도 평균 이상의 독서가일 테니까요. 그런데 그중 제가 읽은 책은 겨우 10여 권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그 리스트에 있는 책을 마저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P185
우리는 온종일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기에 정말 많은 텍스트를 접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텍스트를 읽지 않아요. 대신 스캔하죠. 우리는 이렇게 읽기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 채로 디지털 스캐닝의 태도를 갖고 책상에 앉아 있으니 독서가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P203
두 시간을 다 함께 읽으면 각자의 손에 쥔 책은 마치 승리의 트로피처럼 느껴집니다. 낭독회가 시작되었을 때 약간 서로 어색해했던 사람들도 공동체에 대한 경의를 서로 눈빛으로 표현하며 미소 짓지요. 우리 모두는 낭독회를 통해 승리한 다비드가 된 거니까요.- P206
고수들은 읽으려고 책을 사기도 하지만, 사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책을 사기도 합니다. 저 역시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을 "모두 다 읽었냐"는 질문을 꽤 자주 듣습니다. 대답하기에 살짝 까다로운 이 질문을 받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먼저 "설마요!"라고 한 뒤에 "책은 읽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서 읽는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합니다. 누가 제일 먼저 이 근사한 답을 생각해냈는지 모르지만 책을 수집하는 사람을 위한 정말 환상적인 자기방어 논리 아닌가요?- P228
니은사잠의 북텐더는 단순 노동만 하지 않습니다. 서점에서 가장 까다롭고 또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이 입고하는 책을 고르는 것인데요. 그 일을 저 혼자 해내는 것보다는 북텐더가 함께하면 니은서점에 입고되는 책의 스펙트럼이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더 넓어질 수 있거든요.- P228
서로 출신도 다르고 졸업한 학교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기에 니은서점이 없었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사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니은서점을 통해서 ‘읽는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확인했습니다. 그 공통점에 더 좋은 책이 세상에 많이 알려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담아 작지만 언제나 북적이는 니은서점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P233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출세지상주의로부터의 독립, 시장만능주의로부터의 독립을 지향하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독립 서점의 정신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P254
니은서점은 이렇게 책이 되었으니 니은서점이 언젠가 사라져도 책이 된 니은서점은 사라지지 않겠지요. 책이란 게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책을 사랑하는 거 아니겠어요?- P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