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연휴 때 박혜윤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연달아서 읽었다. 그리고 몹시 부러워졌다...
현 상황 이상으로 직장에 시간을 더 쓰고 싶지는 않은 나와(이미 애가 닳도록 회사 걱정만 하고 업무 스트레스에 자다가도 눈이 떠지는걸..), 멍청한 실수는 하고 싶지 않은 나 사이의 갈등으로 괴로워하고 있던 요즘. 작가님의 책들을 읽고는 임금노동에서 해방된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대가를 지불받는 노동을 최소화하여 부와 물건의 축적에 현재의 시간을 저당 잡히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식량 이상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장점을 적절히 활용하는 이 가족의 생활에 매혹되었다. 소로우의 <월든>,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의 21세기적 버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도시인의 월든>은 제목 자체에 월든이 인용되어 있다.
그렇지만 책을 읽어갈 수록 작가님과 배우자 분은 미국 내 정규 직장이 없는데 미국 체류에 필요한 비자와 의료보험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누가 뭐래도 외국인 노동자의 가장 큰 근심은 비자 연장과 영주권 취득이 아니겠는지? 그런데 책에서는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그리고 아프기라도 하면 보험 없이 미국 병원에서 천문학적인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걸까..
하여간 저런 생활을 한국에서 시도해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게 나의 상상력 또는 용기 부족인지, 아니면 한국에서는 좁은 땅에서 남들을 신경 쓰며 복작복작 사느라고 사회 통념과 달리 살아가는 것이 더 이상하게 여겨져서 그런 것인지, 생각해봐야겠다. 아마도 둘다 조금씩 해당되겠지만. 왠지 미국이라면, 그리고 인구밀도 낮은 시골이라면, 걱정할 가족이 멀리 있다는 것을 핑계로, 통상적인 방식의 임금 노동을 하지 않고 마음대로 살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일단 비자 문제부터 해결이 되어야 도모해 볼 수 있는 탈출구라는 것. 월든적 생활도 비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한편, 이런 탈출은 비행기를 이용한 떠남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그 비행기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전제가 없다면 한 번의 떠남이 곧 이별이 되는 것인데... 어제와 같은 비극은 안전에 대한 감각을 깨부순다. 어제 이후로 비행기와 공항을 떠올릴 때의 감정이 이전과는 도저히 같을 수 없을 것 같다. 돈이 있어 표를 구할 수만 있다면 언제라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 순진한 생각들.. 언제라도 예기치 않게 생이 끝날 수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괴롭게도 너무나 자주 목도하게 된다. 애통한 마음을 담아,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