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간체라는 형식적 낯섦과 낭만주의적 과잉에 대한 선입견을 안고 펼쳐 든 텍스트는 첫 장부터 내 방어기제를 무너뜨렸다. 괴테의 시선이 닿으면 특별해지는 순간들. 평범한 전원의 목가적 풍경과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파편들은 생동하는 활자의 보석으로 탈바꿈한다. 괴테의 과잉된 감수성은 현실의 범속한 삶을 영위하는 데는 치명적인 결함일지 모른다. 하지만 세계의 숨결을 포착해 내는 문학의 영역에서는 가장 눈부신 천재성으로 군림한다.
이 작품이 지닌 파괴력의 본질은 베르테르라는 인물이 체화한 '통제 불가능한 열정의 순수성'에 있다. 로테를 향해 맹렬하게 타오르는 그의 감정은 사회적 규범이나 이성의 통제를 비웃으며 자아를 집어삼킨다. 성장기의 맹목적인 열병. 온 신경과 사고가 마비된 채 세상의 유일한 중심이자 구원으로 타자를 갈망해 본 경험은 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다. 우리는 베르테르의 광기를 결코 조소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파멸을 미숙함이나 나약함으로 단순 재단하는 태도는, 한때 자신 역시 통과해 왔을 그 뜨겁고 비합리적인 시절의 기억을 표백한 자들의 위선에 불과하다.
괴테는 편지라는 지극히 내밀한 형식을 빌려 한 영혼이 사랑에 도취되고, 서서히 붕괴하며, 끝내 사멸로 치닫는 심연의 과정을 냉혹할 정도로 유려하게 기록한다. 베르테르의 파멸은 타협과 환멸로 가득 찬 차가운 현실의 질서에서 자신의 가장 찬란한 감정을 굴복시키지 않겠다는 서늘한 거부처럼 느껴진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단순한 비극의 잔상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감각하고 건조해진 일상에서 타성의 껍질에 갇혀 있던 우리 내면의 가장 원초적이고 위험했던 불꽃. 그 잊힌 계절에 대한 묵직한 환기를 담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