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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도서관
  • 너무 시끄러운 고독
  • 보후밀 흐라발
  • 10,800원 (10%600)
  • 2016-07-08
  • : 36,709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과 활자가 파멸되는 무덤 속에서 피어난 숭고하고, 지적인 예찬 같다. 35년 동안 폐지 압축공으로 일하며 세계의 위대한 사상들을 육체로 체화시킨 한 지식인의 초상을 그린다. 소설이 지닌 본질은 단순히 시대적 억압에 대한 고발이나 비극적인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거친 지하실 바닥에서 피어나는 철학의 향기다. 파괴되는 책 꾸러미 틈새로 스며드는 실존적 고독의 질감이 일품이다.


작품을 지배하는 공기는 끝없이 고독하다. 고독의 심연은 역설적으로 활자가 주는 황홀경으로 가득 차 있다. 한탸는 책과의 철학을 위해 고의로 자신을 고독 속에 가둔다. 압축기 속에서 괴테와 실러, 니체와 공자의 문장들이 쥐어짜지고 뭉개지는 잔혹한 순간들조차, 한탸에게는 온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공감각적 축제와 같다. 잉크 냄새와 눅눅한 종이 더미는 그의 폐부에서 신성한 향유로 변모한다. 파쇄되는 책 한 권 한 권은 우주의 비밀을 속삭이는 계시가 된다.


예수, 쇼펜하우어가 등장하는 한탸의 밀실 같은 내면에서 거대한 사유의 울림으로 치환되는 이 정신적 도취는, 세상 그 어떤 거부보다 풍요로운 지적 성채를 구축한다. 작가는 피비린내 나는 압축기의 소음과 책더미 위로 번지는 지저분한 파리 떼, 쥐들의 전쟁터 같은 가혹한 현실을 과장 없이 받아 적는다. 이토록 비루한 노동의 현장과 숭고한 정신의 도취를 이중성 없이 유려한 문장으로 묶어냈다는 사실 자체가 소설이 지닌 미학적 성취다.


한탸의 삶은 현실에서 흔히 보이는 알코올 중독자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맥주 거품 속에 환영을 띄워 보내는 그의 찌질하고 나약한 일상은, 근대적 효율성과 거대한 톱니바퀴라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 앞에서 처절하게 균열을 일으킨다. 거대한 사회주의적 집단 노동과 거대 압축기라는 대량 생산의 시스템 앞에서,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술품으로 정성스레 대하며 자신만의 고결함을 유지하려 했던 한탸의 아날로그적 노동은 순식간에 낙후된 폐기물로 전락한다. 흐라발은 이 종말의 서사를 섣불리 감상적으로 슬퍼하거나 연민하지 않는다. 그저 타인이라는 지옥 속에서 끝내 자신의 신념을 유폐한 채 살아가는 인간의 나약함과 시대의 파도에 휩쓸려가는 지식인의 몰락을 차갑고 투명한 산문으로 관조할 뿐이다.


지식의 구조를 탐측하고 효율성을 숭배하는 이 차가운 세계를 향해 던지는 예리하고 서늘한 비수. 활자의 숲과 영원히 하나가 되기를 갈구하는 숭고한 찬가다. 그의 정신 분열적인 행동들에는 지식을 향한 인간의 가장 위대한 존엄과 숭고함이 깃들어 있다. 독자는 한탸의 현실 속 고독을 뼈아프게 목도하는 동시에, 종이와 보후밀 흐라발의 문장이 지닌 중력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게 된다. 짧지만 강하게 불타오르는 작품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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