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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은 이제 개를 키우지 ...
- 마스다 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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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 2017-08-17
: 1,305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 누구나 한 번쯤은 스쳐 고민해보았을 이야기들을 다루는 작가, 마스다 미리. 나도 따라해볼 법한 간결하지만 생김새의 특징을 콕 찍어 누군지 알겠다- 절로 감이 오는 그림체. 무심하게 툭 던지는 말 한 마디, 보통 4컷에서 8컷.
평범하지만 그러기에 공감이 가는 순간이 있다.
차의 시간'이 나온 지 채 얼마 안 되어 새로운 작품이라니... 여전히 이야깃거리가 넘치고 그녀는 부지런하다. 그렇게 그녀의 신간이 2017년 8월 다시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은 이제 개를 키우지 않는다
그녀가 쓰는 이야기들은 짧디짤막한 내용들로 어느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가기 쉽다. 이번에는 사와무라씨 댁 가족의 두 번째 이야기를 만난다. 네 번째 가족이었던 시바견 치비가 떠난 그 이후 다시 셋이 된 사와무라씨네. 70세 아버지 시로, 69세 어머니 노리에, 40세 딸 히토미.
이번에도 페이지를 넘기면서 여러 이야기를 만나다 마음에 드는, 공감이 가는 에피소드들을 수집한다.
/ 이런 식으로라도
"이런 식으로라도 인생을 끝내도 괜찮지 않을까." 폐를 끼쳐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예쁘게 피어주어서 고맙다.
/ 날마다 같은 일의 반복. 밥 하고 청소하고, 개 산책하고 장보고. 눈 깜박할 사이에 밤이 되어 하루가 끝나지. 늘 반복되는
일상이 허무한 날이 있는가 하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날도 있지.
/ 언제까지나 곁에
사랑이라 부르는 것들. 소소하지만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하는 마음.
/ 선물
15년이 지나도, 소중했던 관계의 끈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사랑했던 존재는 잊혀지지 않고 마음에 함께 머물고 있다.
/ 가족 그리고 우리 집
그림을 그리기로 시작한 마음만큼 가족때문에 나의 마음에 동요가 많은 요즘이었다. 마치 그림을 다시 그리기로 마음먹기 전 느꼈던 감정처럼 갈증으로 남았다. 애증의 대상처럼 느껴졌달까. 참고 속 썩이다 끝내 가족에게 폭발해버리고 울어버렸다. 말다툼이 오가고 서로의 감정보다 나의 감정이 우선시 되고 이내 상처를 준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지만, 여전히 사랑하지만 가깝고도 먼 사이. 가족이라는 이름.
Fine family.
건강한 가족.
히토미가 강아지 치비를 처음 만났던 때처럼 내가 꼬마였던 시절. 우리 가족은 캠핑과 여행을 좋아해 단합성도 좋고 화목하고 그래도 가족 간에 붙임성 좋은 사이라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보통의 다른 가정처럼 표면상으로는 행복해보이지만 속사정도 있는 가족.
건강한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과 나의 관계는?
가족의 의미는?
끊임없이 가족에 대하여 고민이 많았던 요 몇 달.
/ 우리는 함께 살고 있습니다
자녀의 취직 시기가 늦어지고, 비혼 자녀가 늘어나고, 그에 따라 은퇴 시기도 늦어지는 부모. 타지역에 비해 일자리나 회사가 많은 서울이지만 급여는 오르지 않고, 집값은 턱없이 높다. 일본도 한국도 비슷한 사회현실. 그저 평범한 나는 그 벽을 온전히 내 힘으로서 뚫을 힘이 지금으로선 부족하다. 그렇게 사회가 만들어놓은 장벽 속에 나, 가족이 살고 있다. 주어진 상황은 사와무라씨 댁과 우리 가족은 닮았다. 지금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 저마다의 방식 그리고 속사정
마스다 미리의 사와무라씨 댁은 말한다. 어른도 즐거울 줄 알고, 독립할 줄 알았던 딸은 여전히 함께 살고 있고, 딸이나 엄마, 식구가 아프면 미안한 감정이 들다가 나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밥을 흘리는 아버지가 아이처럼 느껴지고 짜증이 나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비슷한 삶의 태도를 지녔으나 구체적인 방식이 다른 부부는 그래도 최종 지향점은 같고, 노후부터 사후까지 생각하는 부모님, 그런 부모님이 속상한 딸. 결혼 생각은 없고, 그러기에 손주 몫까지 하는 딸. 가족이었던 반려견 치비가 죽은 후에 가족들에게 남겨진 감정.
다들 비슷할 것이다. 나도 비슷하다. 특히나 나의 경우 내 관심사에 가족이라는 의미가 크기에 마스다 미리 시리즈에서 유독 오랜만에 공감이 컸다. 맞벌이 부부였던 부모님 슬하에, 의도치 않았지만 오빠와의 비교에 열등감 느꼈던 유년시절.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컸기에 가족들과 집에서 따스히 보내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엄마를 꿈꿨다. 부모님 때와 다르게 앞으로 내가 살아갈 세계는 한 곳에서 정착하며 살아가기가 힘들기에 더욱 신중히 나를 생각하고 내가 살아갈 삶의 방식을 공부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립은 먼 얘기고 같이 살고 있다. 부모님의 슬하에 여전히. 그래서 부모님 입장에서 내가 나를 보았을 때, 마치 스스로가 짐처럼 느껴지고 부담이 되었다. 실제로는 그러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런 식으로라도
인생을 끝내도 괜찮지 않을까.
폐를 끼쳐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예쁘게 피어주어서 고맙다.
/ 그래, 같이 살아보자
부모님 집에서 부모님의 집밥 아래 사는 자녀 둘.
얼른 서울에서 허덕이는 삶은 정리하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부모님과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가족이라는 이유와 동거인의 이유가 맞물러 사소한 것에서 갈등이 생긴다. 사와무라씨댁처럼 우리도 아직 부모님에게는 한 없이 어리다. 성인 나이가 되어서도 말이다. 그러나 어른이 된 딸과 아들은 본인만의 가치관 생각이 앞서 각자의 생각이 반영되어 서로의 라이프스타일과 대화방식이 맞지 않다. 딱 독립해야하는 시기다. 그렇지만 부모님도 딸도 아들도 알고 있다. 경제적으로 아직 그러지 못하는 자녀라는 것을.
가족이지만 같은 사람이 아니며 다른 가치관을 지녔기에 어느 정도 맞추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식습관, 청소 방식, 대화주제와 방식 등 사소해보여도 그 안에 한 사람의 사고방식이 들어있어 이해와 존중으로 서로 간에 노력해야한다. 공동체 안에 '나'들이 어울러 살아가는 걸 잊지 말아야한다. 가족(공동체) 아래 나는 각자 반짝반짝 살아 있어야 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 서로의 사랑 방식이 달라 오해가 생기고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지만 동거인 이전에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애정한다. 곧 사라질 우리의 존재가 주는 상실감이 큰 사람들이 모여 부대껴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아무리 달라도 다투고 미안하지만 사랑하는 우리의 공통된 바램은 서로가 행복한 나날들을 살아가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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