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 후 남은 것, 기록할 필요
heezak 2025/05/14 18:44
heezak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바움가트너
- 폴 오스터
- 16,020원 (10%↓
890) - 2025-04-30
: 25,087
안타깝게도 작년에 작고한 폴 오스터.
<바움가트너>는 1주기에 맞춰 출간된 그의 유작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겐 처음 읽는 그의 작품이다.
폴 오스터를 처음 안 건 #작가란무엇인가 라는 작가 인터뷰집에서였다. 열네 살 때 바로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번개에 맞아 죽는 것을 본 후 이렇게 기이한 일을 자신만 경험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을 홀로 탐구하며 외로움을 이겨냈다던 그의 작품 세계가 궁금해져
대표작 4종 리커버도 장만했더랬는데 여태 모셔두더니
결국 유작으로 그 세계에 첫 발을 들였네.
이것도 활활 타고 있는 소장욕에 기름을 부어버린 만듦새 덕분이다. 한 폭의 명화 아니냐구~
#약스포주의
주인공의 이름인 바움가트너는 ‘정원사’란 뜻을 갖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 애나를 잃은 지 10년.
애도하다 미쳐버린 남자,
살아있지만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은 죽어버린 그가
아내와의 추억이 가득한 정원을 홀로 가꾸면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모습을 그렸을까.
지독한 외로움과 상실감을 이겨내는 노인,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 그런 순애보에 미치는 경향이 있는 나로서는 3장에서 그가 사랑하는 여자로 주디스가 등장했을 때 당황했다. 심지어 열 몇 살 어리단다. 외형은 애나와 완전히 상반되지만 그가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 준 여자는 애나 이후로 주디스뿐이라 다시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며 청혼도 하던데 왠지 모르게 핑계같이 느껴져 가자미 눈으로 읽게 됐다.
상대 이성을 상스럽게도 x 친구라 표현하거나
주디스가 하는 말이지만 갑자기 ‘아가리 닥치고 키스나 해줘.’ 라고 할 때는 이 작가님이 마초를 남성미로 착각하시진 않았나 싶기도. 열한 살, 열 두살짜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을 ‘고루한 선생’이라 표현한 점도 아쉬웠고.
바움가트너의 기억 속 십대 시절, 평생 가장 많이 웃었던 일이라는 엄마와의 에피소드는 너무나도 좋았지만 내겐
내용보단 만듦새가 더 압도적 감동을 준 책으로 남을 것 같다.
‘옮긴이의 말’을 읽으면서는 다시금 기록할 필요를 느꼈다.
요즘 아주 안 쓰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읽기만 하는데
하다못해 키워드만이라도 다시 기록해 봐야겠다.
내가 우주를 구성하는 다른 수많은 작은 것들과 연결되고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서로를 기억하며 머물 수 있도록.
덧없이 사라지지 않게,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게,
그런 욕심이 생겨버렸다.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