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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지 않을 권리
  •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 제프 다이어
  • 12,420원 (10%690)
  • 2014-11-07
  • : 479

 

여행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자기만의 분명한 답을 갖고 있는 사람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여행의 목적은 그저 사진 찍고 자랑하기 수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여행 작가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내가 그것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이를 통해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뽐내기에 바쁘다. 한껏 들떠 있거나 센티해진 여행자의 감정에 내 감정이 따라갈 수는 없다. 그러니 나는 여행 에세이를 읽는 건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이런 단정적인 생각은 나의 빈약한 독서편력만 드러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금 바로 이런 고집을 꺾고 싶지는 않다. 대신 나는 이 지점에서 여행 에세이가 빛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다. 분야는 에세이에 묶여 있더라도 소설이나 철학의 지위를 꿈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설처럼 몰입할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확보되어야 하고, 철학처럼 깊이 있는 사고가 담보되어야 한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소설처럼 여행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해야 하고, 진실을 꿰뚫어보는 철학처럼 그 여행을 통해 몰랐던 걸 발견하고 통찰할 줄 알아야 한다. 다행히 최근 그런 여행 에세이가 출간됐다. “철학보다 깊고 소설보다 흥미진진한 여행기!”라는 카피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알랭 드 보통의 한 인터뷰에서 제프 다이어란 이름을 처음 알았다. 그 인터뷰에서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에세이로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를 꼽았다. “He is not an older gentleman just travelling around – he is a hipster. (그는 점잖게 세계를 여행하는 나이 든 신사가 아니라 자유로운 힙스터이다.)”라고 제프 다이어를 평가했다. 소설처럼 몰입할 수 있는 흥미로운 캐릭터가 이 책의 화자가 되는 셈이다. 또 제프 다이어는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의 프롤로그에서 “이 책에 적은 일들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그중 몇몇은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났다”고 고백하며 이 여행 에세이가 허구의 이야기가 포함된 것임을 밝힌다. 분명 이 여행 에세이는 소설의 지위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매력적인 주인공 제프 다이어는 어느 순간 자신이 아무런 목적과 방향도 없이 살아가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걸 발견한다. 그는 그 상태를 “폐허”라고 부른다. 꼼짝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다 소진되어버린 상태인 것이다. 그의 여행은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폐허가 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기 위해 그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진짜 폐허를 찾아 나선다. 고대 유적으로 가득한 로마와 렙티스 마그나나, 몰락한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 등 그가 마주하는 것은 모두 낡고 쇠락한 것들이다. 그는 이 여행에서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제프 다이어 자신이 이미 그런 호기심을 강하게 품고 있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시종일관 그 호기심을 따라가게 된다.

 

야망이 큰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소설의 지위만 엿보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적극적으로 품는다. 제프 다이어는 “구역”이라는 개념을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그에 따르면 “구역”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제프 다이어는 렙티스 마그나에서 자신이 “구역” 안에 있음을 느낀다. 이곳에서 그는 제법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는다.

 

“어쩌면 고대 유적에서 배우는 가장 간단한 교훈은, 뭐든 수직으로 세운 것은 훗날 경외의 대상이 된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수평적인 것들이 주는 매혹에 저항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바로 그 때문에 하늘이나 바다의 수평선을 배경으로 선 고대 수직 기둥들에 더 큰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 배경의 관점, 그러니까 바다나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렙티스는 폐허의 초기 단계에 불과할지 모른다. 언젠가는 남은 유적들이 모두 사라져 사막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수평선을 방해하는 수직 기둥들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것이 시간에 대한 공간의 최후의 승리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을 쓰기도 한 알랭 드 보통이 왜 그렇게 이 여행 에세이를 강력 추천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인터뷰 원문을 발췌한다. 알랭 드 보통 역시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가 단순한 여행 에세이의 틀 안에 가둬지지 않음에 주목했다.

 

 

Why would you recommend this book in particular, when there are so many travel books around?

 

I guess because it’s not a travel book in that sense. It’s a book about his mind, which I think is both interesting and funny. And he is charming as a writer. He is constantly flitting with ideas about all sorts of stuff – not big ideas, but things such as how easy it is to lose your hotel room key and why grass is green (literally). There is lots of stuff in it, hung together by the force of his personality. You would have a hard time describing it to a publisher. In this age where books are supposed to be about one thing.

 

세상에 여행에 관련된 책이 얼마나 많은데, 왜 특별히 이 책을 추천하시는 건가요?

 

제 생각에 어떤 맥락에서 이 책은 여행 에세이가 아닙니다. 이건 그의 마음에 관한 책이죠. 흥미롭고 웃긴 그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작가로서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확인할 수 있죠. 그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생각으로 끊임없이 돌아다닙니다. 그게 대단한 생각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호텔방 열쇠를 잃어버리는 게 얼마나 쉬운지, 잔디는 왜 초록색인지 생각하는 겁니다. 이 책에는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모두 작가가 지닌 개성의 힘을 잘 보여주는 것들이죠. 출판사에 이 책을 설명하는 게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책은 어떤 한 가지에 대해서만 말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니까요.

(출처 : fiveboo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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