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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지 않을 권리
  •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 이수진
  • 11,700원 (10%650)
  • 2013-04-10
  • : 444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끊임없이 내 삶을 점검해 보게 하고, 내 과거를 곱씹어 보게 하고, 내 인생 전체를 관망해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예쁘고 못돼 처먹은 너.

이 소설의 첫 번째 챕터의 제목이다. 그래 나에게도 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만났던 "예쁘고 못돼 처먹은 너"가 있다. 사실 누구에게나 마음 속 예쁘고 못돼 처먹은 너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예쁘고 못돼 처먹은 너는 다짜고짜 내가 보드를 타지 않는다고, 운전을 할 줄 모른다고, 대단한 취미 같은 게 하나도 없다고 나를 떠나갔다.

 

그러니까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에서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나 역시...

"세상 평범한 새끼, 평범한 것 외에는 아무 장점도 없는 새끼"였던 것이다. (나는 어쩌면 그 무시당한 경험 덕분에 나중에 보드도 배우고 운전도 배우고 이것저것 취미라고 할 만한 것도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니 평범하다고 굴욕당한 경험이 있는 나는, 예쁘고 못돼 처먹은 너에게 묵은 한이 있는 나는 순식간에 이 소설에 빠졌고 몰입했고 백 퍼센트 감정이입을 했다. "카타르시스로 샤워를 한 것처럼 속이 뻥 뚫린다"는 중앙장편문학상 심사평이 나에겐 결코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취향은 그동안 소설에서 쉽게 접해볼 수 없었던 테마인데, 그래서 더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작품으로선 생소한 테마이지만, 일상생활에선 매일매일 마주하는 문제이기에 공감도 잘 되었다. 나 역시 주변 사람 몇 명을 벙어리로 만들며 야구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기도 하고, 사람들이 패션 이야기나 춤 이야기를 할 땐 스스로 벙어리가 되기도 했으니깐. 그러니까 취향에 관한 전면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 소설을 읽으면 뜨끔하고 통쾌한 이중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너무나 재미있는데, 서사 구조도 뚜렷하고 캐릭터들의 매력도 대단하다. 애묘인들의 인기를 등에 업은 대선 후보를 저지하기 위한 기괴한 미션도 손에 땀을 쥐며 읽게 될 만큼 긴장감 넘치고, 각각의 인물들의 고양이에 얽힌 사연들도 아주 흥미롭다. 그리고 가장 큰 재미는 문장을 읽는 맛에서 나오는데,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능력자>와 느낌은 다르지만, 그 이상으로 작가의 입심이 대단한 것 같았다. 이를테면 내가 좋았던 문장들은 이런 것인데...

 

"너의 미모는 나를 오징어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버터도 발라져 있지 않은 얄팍한 나는 네 옆에서 타버리거나 바짝 구워져 배배 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 역은 홍대입구, 홍대입구역입니다. 나는 아디다스 저지의 옷깃을 여몄다. 그러니 디스 스테이션 이즈 메이비 유. 나는 이번 역은 너라고 생각했다. 내 사랑의 종착역. 예쁘고 못돼 처먹은 너."

 

"있지, 난 좀 더 간질간질했으면 좋겠어. 내게 필요한 건 좀 더 조용하고 매끈하고 말랑말랑한 거야. 그러니까 우리 이제, 고양이처럼 야옹…… 하자."

 

 

"나는 머뭇머뭇 다가가 승연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켈리 클락슨과 조영남이 입을 맞추는 순간이었다. 아주 조금 뒤, 승연의 팔이 나의 목을 감았다. 이어폰이 빠지면서 승연이 듣고 있던 음악이 조그맣게 들렸다. 조영남의 화개장터였다. 창문 너머 벚꽃이 흩날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것은 없는, 완벽한 봄날이었다. 어제부터 오늘, 어쩌면 내일까지, 날씨가 참 좋았다."

 

한국 장편소설엔 실망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나였기에, 이런 입심 좋은 작가의 등장은 언제나 대환영이다. 산뜻한 봄나물 향기가 나는 이 소설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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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유하기 "있지, 난 좀 더 간질간질했으면 좋겠어. 내게 필요한 건 좀 더 조용하고 매끈하고 말랑말랑한 거야. 그러니까 우리 이제, 고양이처럼 야옹…… 하자."     "나는 머뭇머뭇 다가가 승연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켈리 클락슨과 조영남이 입을 맞추는 순간이었다. 아주 조금 뒤, 승연의 팔이 나의 목을 감았다. 이어폰이 빠지면서 승연이 듣고 있던 음악이 조그맣게 들렸다. 조영남의 화개장터였다. 창문 너머 벚꽃이 흩날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것은 없는, 완벽한 봄날이었다. 어제부터 오늘, 어쩌면 내일까지, 날씨가 참 좋았다."   한국 장편소설엔 실망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나였기에, 이런 입심 좋은 작가의 등장은 언제나 대환영이다. 산뜻한 봄나물 향기가 나는 이 소설을 강력 추천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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