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행에 별로 관심이 없던 필자도 이 책을 통해 스스로 얼마나 부지불식간에 빠르게 돌아가는 한국사회의 트렌드에 물들어있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150페이지 남짓한 얇은 책 안에 담긴 정보가 어마어마하다. 제목 그대로 3개월치의 주도적인 문화현상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1년마다 만나는 트렌드는 너무 늦다!’ 라는 모토를 달고 출판된 이 책에 어떨지 궁금한가. 코로나 19가 불러온 언택트 소비와 펭수, 유산슬이 말하는 ‘선’을 넘는 페르소나, 그리고 슈가맨, 곰표패딩, 드립맛집 SNS라는 표현들에 관심이 간다면 페이지가 술술 넘어갈 것이다. 그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긴 최신 트렌드가 감각적인 관련 자료와 함께 담겨있어 시각적인 재확인도 확실하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한 주제를 다른 챕터에서 몇 개월 전 바로 내가 겪은 내용이 그대로 적혀있었다. 필기구계의 품격을 이어나가고 있는 몽블랑 제품에는 시간이 흘러도 변치않는 클래식한 디자인을 추구하면서, 20년 후에도 고객들이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담겨있다. 필자는 아버지가 25년 이상 사용한 몽블랑 제품을 얼마 전에 받고 아주 소중히 사용하고 있다. 여기엔 새것이 줄 수 없는 과거로부터의 전통이 담겨 그 자체가 품격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듯 레트로 컨셈 안에도 스토리텔링이 잘된 기업, 브랜드가 승승장구한다.
또 하나,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던 학창시절엔 관심도 없던 ‘다꾸문화’에 심취해서 기성세대가 된 지금 온갖 다꾸 제품을 수집하고 활용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그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있다. 휴대폰에 일정관리 및 캘린더 앱이 설치되어 있음에도 실물 다이어리 수요가 여전한 것은 기능성과 편의성 못지않게 정체성과 가치성을 따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 아날로그격의 새로운 놀이문화가 어필하는게 참 재미있다.
마지막으로 흥미를 끈 것은 현재에 과거를 접목시킨 ‘디지로그’의 일례로 소개된 모바일 카메라 앱 ‘구닥’이다. 옛날 방식으로 사진을 찍는 모바일 카메라 앱 ‘구닥’은, 필름 카메라 모양을 본떠 만든 작은 뷰파인더를 통해 피사체를 확인해야 하고, 필름 한 통처럼 한 번에 찍을 수 있는 분량이 24장으로 한정돼 마음대로 찍을 수도 없으며, 오랫동안 기다려야 인화가 가능했던 예전 방식 그대로 3일이 지나서야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으며, 겨우 획득한 사진의 색감 역시 빛바랜 느낌을 준다. 이 앱은 출시되자마마 국내 앱스토어 유료부분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 설명을 듣고 당장이라도 사용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2020년을 함께 살고 있는 한 문화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