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일으키는 사건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해로운 것은 그 사람의 취약한 부분을 정확히 건드리는 경우다. 열쇠가 짝이 맞는 자물쇠를 찾아가듯, 그 사람의 취약점과 딱 맞아떨어지는 사건이 꼭 일어나는 걸 보면 신기할 정도다.- P91
간저 증후군 Ganser syndrome이란 실성한 사람처럼보이기 위해 질문에 대해 ‘비껴간‘ 답이나 터무니없는 답을 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독일 정신과 의사 지그베르트 간저Sigbert Ganser가 처음 기술한 증후군으로, 교도소에서 남성 수감자 세 명이 범죄 책임을 면하려고 정신질환자인 척하는 행동을 관찰한 것이 근거가 되었다. 질문을 이해하고도 이해하지 못한 척 대답하는 것이 전형적인 특징이다.- P93
불안이 무언가가 일어나리라는 두려움의 징후라면, 우울증은 두려움이 현실이 될 때 나타난다.- P100
세상이 내게 압박과 부담을 가할 때 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나 일에 몰두하는 버릇을 들였고, 그게 내가 대처하는 방식이었다.- P104
하지만 내게 정말 필요했던 약은, 운명이라 생각했던 길에서 완전히 탈선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후에 깨달았지만, 삶이라는 열차가 탈선하여 내달리는 그 혼돈의 순간에는 때로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앞으로 무엇을 바꾸면서 살아야할지, 그리고 자신을 옥죄는 자신과 남들의 기대는 온당한 것인지, 너무 늦기 전에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다. 그런 의문에 답할 수 있다면,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이 스스로 정한목표는 이룰 가능성도 더 높은 법이다.- P109
인간은 본래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사랑은 종류도 다양하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무조건적 사랑이 있는가 하면, 연애 감정이 막 불붙기 시작한 커플의 성적 욕망도 있고, 오랜 세월을 함께한 동반자 간에 느끼는 원숙한 책임감도 있다. 사랑은 양방향일 수도, 외방향일 수도, 폭력적일 수도, 치유적일 수도 있다. 가족에게 사랑받으며 성장한 경험은 어른이 되었을 때 우울을 이길 힘이 되어줄 수 있다. 또 어른이 되었을때 힘이 되고 사랑해주는 사람의 존재는 힘든 어린 시절에 받았던 상처의 해독제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실연이나 파경은 우울증을 일으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전에 겪었던 상실의 아픔을 다시 들쑤실 수도 있다.- P110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나는 깨닫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모든 결점과 허물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심리치료사들은 자기애에 대해 이야기한다. 간혹 자기애를 이기심과 같은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둘은 다르다.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진정으로 남을 아껴줄 수 있으려면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백 번 틀리지 않다. 자신만의 장점을 인정하고, 단점을 시인하고 받아들이며, 그 모든 것을 평온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미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온 선택들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차츰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선택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건 물론 아니었다. 특히 연애에 성급히 빠져드는 문제는 고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듯했다.- P125
반대되는 증거를 아무리 많이 접해도 어떤 믿음을 놓지 않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게 인간이 실망과 상실에 대처하는 한 방법이고, 생존을 위해 때로는 그래야만 하니까.- P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