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적으로 찾아오는 부모의 죽음 앞에서 과연 후회 하나 없을 수 있을까.
부모의 상을 치른 이들이 가장 크게 괴로워하는 이유 또한 후회다.
후회는 되돌릴 수 없는 장면들을 계속해서 복기한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들어서면 부모와의 시간은 결국 작별을 준비하는 마지막 과정이 되고,
우리는 본능적으로 밀어내고 싶은 거대한 감정 앞에 서게 된다.
저자의 사적인 기록은 이처럼 누구나 겪어야 할, 혹은 이미 지나온 시간을 어루만져 준다.
존재의 위력을 감각하기
무탈하게 지금의 내가 될 때까지 지탱해 준 부모의 위력을 육체로 감각하게 될 때는 언제일까.
성인이 되고 마냥 듬직해 보이던 부모님이 귀여워 보일 때,
문득 부모님이 안쓰러워 보일 때,
두려움을 기반한 울컥함은 불쑥 찾아온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나를 키워준 시간들이 너무나 숭고하고 귀해서일까.
부모보다 할 수 있는 것과 앞으로 보내야 할 시간이 많아진 성인은 현재 부모의 시간에 선뜻 개입하지 못한다.
전화 좀 자주 하라는 말에 괜스레 짜증을 내게 되고, 주름진 눈가 사이로 따뜻하게 나를 바라볼 때면 눈을 피하게 된다.
나를 향한 부모의 사랑이 너무나 크고 귀하기에, 그 무게를 감당하기엔 아직 벅찬 거다.
저자의 기록을 한 자 한 자 따라가면서 이를 확신하게 됐다.
애도를 대비하는 것은, 애도를 준비하는 것은, 그리고 죽음 이후의 시간을 감당해 내는 것은 정말 오랜 시간과 마음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외면하고 싶지만 절대 그럴 수 없다.
받은 사랑을 온전히 보답하는 건 벅찬 일임을 알아도, 불쑥 찾아온 무게감은 오로지 내 몫인 것이다.
갑작스럽게 엄마의 죽음을 마주한 저자의 기록은 우리가 앞으로 부모와 보내야 할, 보내왔던 시간을 간직하는 방법을 각자가 마련할 수 있게 도와준다.
내 부모와 비슷한 또래의 어르신을 볼 때 불현듯 자기 부모님을 떠올리게 되듯, 저자의 기록은 일반적인 마음을 대변한다.
불편한 마음으로만 남아있던 부모의 위력을 문장화함으로써, 모두의 마음 한편을 짓누르던 응어리를 부드럽게 펴준다.
잊히지 않는 기억을 온전히 보존하는 방법
부모의 희생을 아는 자는 예술로 재탄생 시킬 줄 아는 자.
탄생된 작품은 보편적인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것과 동시에 모든 사람은 사랑받을 자격이 흘러넘친다는 사실을 감각시켜준다.
먼저 떠난 부모를 마냥 그리워하며 슬픔에 잠식되기보단, 귀한 기억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보존하는 건 어떨까.
저자의 어머니는 저자의 손길에서 탄생한 활자로 아름답게 보존된다.
이 책을 거쳐감으로써 돌보지 못한 내 마음과 부모를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수 있을 거다.
평생 떼 놓으려도 떼놓을 수 없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
다양한 고유성을 갖고 있는 관계의 형태들이 궁금하다.
숭고한 순환
마음을 건넬 당시 바로 전해지진 않았어도, 바로 흡수하지 못했어도 혈육으로 이어져있기에 스며들기 마련이다.
알아차리냐의 문제다.
모든 사람이 귀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방식은 다르지만, 사랑과 정성을 모두 흡수하고 자라 세상을 가꿔가는 사람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베풀며 순환된다.
이런 세상을 만드는 데 온 시간과 몸 받쳐 희생한 모든 부모들에게 존경의 말을 전하고 싶다.
술술 읽히는 문장들로 익숙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서 더 울림 있게 다가온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친숙하게 집어들 수 있는 책일 거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