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소설에서 나타나는 특징이지만 일곱 편의 소설은 모두 우리의 삶과 너무나 맞닿아있다.
그렇기에 읽는 내내 숨이 턱턱 막혀왔다.
뭐랄까, 과거든 현재든 은연중에 안 좋은 감정을 안고 있는 게 싫어서 외면한 나의 진짜 심리를 마주한 불편한 기분이었다.
책 뒤표지에 있는 공선옥 소설가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소설들은 여러 군데"상처 난 곳을 헤집어 화근을 보여주며", 잔상을 텍스트로 정교하게 형태화해 한 편의 이야기들로 보여준 것 같았다.
속으로만 안고 가야 하는 불편한 진실들의 서사다.
일곱 편의 초점 화자들은 모두 연령대와 성별, 상황과 위치 모두 다르다.
나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화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편 한 편 이야기를 넘길 때마다 아픈 곳을 건드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건 왜일까.
나의 내면에서, 사회에서, 개인의 집단에서, 필연적인 인간관계에서 개인의 편의를 위해 애써 고개를 돌렸던 것이 가지고 있는 힘을 소설이 온전히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책을 다 읽고서야 말할 수 있다.
삶이 일면적이지 않음을 인지하고,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삶에 관심을 두어 시야를 넓혀야 할 것을 책은 요구한다.
나는 사회에서, 혹은 개인의 구성원 안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고,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
책에 실린 단편소설들은 조금씩 일그러지는 관계와 개인의 내면을 둘러싸고 있는 세목들을 집요하게 바라봐 현미경을 두었다.
잠시 나를 내려놓고, 각자 다른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 되어보며 알게 모르게 남아있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그들의 개별적인 삶에 온전히 몰입했다.
뚫어지게 바라본 시야 속에서 그들은 내면에 잠재된 진실과 가까워진다.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설들을 보면 비교적 주목받지 않는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시선을 두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기 '어려운' 위치에 놓여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마냥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다.
개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의 입장과 마음을 섬세하게 헤아리는 건 힘든 일이란 걸 알지만, 그럼에도 우린 알아야 할 것이 있고 이들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이들을 위축하게 만드는 건 이들이 못나서, 부지런하지 않아서,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들을 하찮게 만드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란 걸 소설은 확실하게 인식시킨다.
어떤 사람의 위치와 직업이, 혹은 사회적으로 부여받은 역할이 "당연한 것"이라며 은연중에 일반화하지 않았는가.
그저 배경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는가.
남들이 인정하지 않기에 덩달아 특정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지 않았는가.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들면서도, 은연중에 가볍게 여기던 이들의 입장이 되어 보게 만드는 소설이 가진 힘에 감탄했다.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개인의 피치 못할 사정들
일곱 편의 소설이 가진 공통적 특징은 사회 문제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보단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이 가진 결함을 가지고 소설은 결함의 종류도 '보편'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게 많다는 걸 말한다.
나아가 이 결함이 어떻게 표면으로 드러나는지 세세히 그린.
언뜻 보면 평범한 개인이 오랫동안 붙들고 있는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인 문제들을 보며, 나 지신과 나와 가까이 지내는 타인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싶은 개인이 무의식적으로 늙은 부모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모습, 직장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나이 먹은 성인이 열등감 때문에 아버지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 번듯이 사는 청년이 끊어낼 수 없는 가난 속에서도 꿋꿋이 사회생활을 하는 모습.
그녀의 소설들은 한 개인이 갖고 있는 결함의 굴레에 대해 고민의 흔적을 보여주면서, 나름대로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떳떳하게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를 보낸다.
생각의 전환,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때
보면 화자가 결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소설이 마무리되는 작품도 있지만, 몇 개의 작품에선 본인이 생각하는 결함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한 인물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남긴 잔상은 그저 괴롭고 아팠던 상처로 머무르지 않는다.
늘 자신의 곁에서 사랑을 주며 성실히 살아온 작은아들에게 독백을 통해 진심을 고백하고, 오랜 시간 가족을 위해 희생하던 인물이 자신의 이전 삶을 정리한 후 미련 없이 새 삶을 향해 떠나고, 인간관계로부터 오해와 고민을 안고 있던 인물이 다른 관점으로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며 상처를 극복한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흔한 특정 행위를 통해 자신의 억눌린 감정과 진심을 되돌아보고, 이를 표현해낸 그녀의 필력에 감탄했다.
우리 모두가 타인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상처와 내면의 복잡성을 가지고 있을 테다.
이를 극복하고 진정한 삶을 향해 당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소설은 이들을 통해 보여주며 응원한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김려령 『기술자들』이었다.
그중 나는 「세입자」를 가장 인상 깊게 봤다.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도 개인 공간이 없고, 의지해야 할 가족이 나를 위협하는 존재로 있는 상황에서 꿋꿋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가상 인물에 몰입했다.
이토록 잔인하고 지독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나.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렇지만 일곱 편의 소설 속 인물처럼 각자가 가진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과 과정은 모두 다르다.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기술'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섬세하게 그려낸 이야기를 보면 발견하게 될 거다.
조명 받지 못한 삶을 소설을 통해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 작가님께 정말 감사하다.
김려령 작가님의 소설은 언뜻 보면 흔하게 흘러가는 우리의 일상과 삶을 단순 흔하게 두지 않고 풍요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