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지 모르겠거든, 어디서 오는지를 기억하라."
- 아프리카 속담

누구나 가슴 속에 품고 있을 망가진 여행에 대한 기억(과 추억 사이)
오은 시인의 [여행을 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 꼭지를 보며 생각이 난 것이 있다. 오은 시인의 여행은 그야말로 '싫은 것'으로부터 시작 된 '싫음'을 탈피하고자 했던 여행. 나는 그와는 반대로 '좋음'으로 시작했던 친구들과의 여행이 있었다. 때는 날이 좋았고, 출발 전의 설렘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친구들, 그리고 친구의 남자친구와 차를 타고 강원도 밤바다를 보러 떠났었다. 차 안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리듬 타며 몸을 둥가둥가하고 세상 그렇게 신났던 적이 있었을까. '망가진 여행'의 시작은 강원도 삼척에 도착해서부터 시작 되었다. 삼척에서 친구 남자친구의 그 친구들과도 합류를 했다. 삼척 해수욕장 카페에 앉아 무엇을 할지 고민을 했다. 어디를 갈지, 어떤 바다를 보러 갈지.(해변 앞에 있었으면서) 그러다 한 친구가 삼척 해변 옆에 인적이 드문 산책로가 있다. 거긴 현지인들만 알 수 있는 최고의 코스다. 라고 하여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그 길은 지금의 삼척 대명리조트가 들어설 자리라 진작부터 통행로가 차단 된 곳이었다. 그러려니 했었다. 강릉 카페 거리를 가자고 했다. 24시 카페가 많을거라고. 강릉에 갔지만 카페는 커녕 깜깜한 해안가에 비만 추적추적 내렸다. 머리는 서서히 떡이 지기 시작했다. 정동진을 가서 해 뜨는 걸 보러 가자고 했다. 몇 년만에 간 정동진, 그곳은 내 기억에 남아 있던 정동진의 모습이 아니었다. 결국엔 강릉 시내로 목적지를 옮겼다. 피곤함을 좀 풀기 위해서. 남자인 친구들은 외딴 곳에 차를 주차 해놓고 차안에서 잠이 들었고 여자인 우리들은 그 새벽에 강릉 시내의 모텔들을 사방팔방 찾아 다녔다. "빈 방 있어요?"하며 겨우 찾아낸 여관 같은 모텔. 쾌적하지 못한 그곳에서 우린 바다 코끼리 떼처럼 바닥에 붙어 누워 웃음을 터뜨렸다. 최악의 여행이었는데, 그런데도 자꾸 웃음이 나고 즐거운 건 뭘까 하고.

오은 시인은 글의 말미에서 말한다. '여행에 대한 두려움은 여행이 가져다주는 설렘과 한 끗 차이다.' 라고.
설렘이냐, 두려움이냐. 이 둘 중 하나인 것이다.
어쨌든 망가진 여행도 추억(과 기억 사이)으로 남기려면 떠나야 한다. 일단,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가슴에 품고 있는 '망가진 여행'이라는 사진첩을 꺼내 볼 수 없겠지.
<어떤 날>시리즈는 늘 생각하고 늘 이야기 하지만 혼자 여행을 유발하는 책이다.
내 기준에서 건강에 좋은 책이라고 해야 하나.
특히나 이번 8편, <망가진 여행>은 더욱. '망가뜨리고 싶은' 주체를 맞닥들이기 위해 짐을 싸게 만든다.
그리고 떠남으로써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다.
<어떤 날8>을 읽고 나는 다시 여행 자극을 받았다.
여행을 일부러 망가뜨리기 위함이 아닌, 떠남으로써 마주할 망가질 수도 있는 시간들을 기대하며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