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00년 전, 중국 명나라 시대의 학자 홍자성이 쓴 <채근담>은 20세기 이후에 더 주목받으며 널리 읽힌 수신과 처세의 고전이다. 특히 기업가들과 정치인들이 인생 책으로 곁에 두고 탐독한 것으로 유명하다. 상인 가문 출신이라는 것 외에 행적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옛 저자의 책이 왜 지금까지 무수히 새로 번역되며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을까?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책의 원저자 홍자성은 중국 명나라 말기 문인이자 학자로 상인 가문 출신으로 알려진다. 그는 젊어서 출세와 성공을 추구하며 좌절을 겪고, 나이 들어서는 세상에서 한발 물러나 저술에 몰두했다. '사람이 풀뿌리를 씹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에서 차용해 도서 제목을 정했으며, 험한 세상을 견디고 자신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지혜를 담은 잠언집이다.
총 8부로 구성된 책은 삶의 태도에 대하여(1부), 마음 가짐에 대하여(2부), 자기 통제에 대하여(3부), 인간관계에 대하여(4부), 세상을 보는 관점에 대하여(5부), 일상생활에 대하여(6부), 안간에 대하여(7부), 행복에 대하여(8부) 등에 걸쳐서 모두 220가지의 잠언들을 담고 있다.
부끄럽지 않게 살기
"부끄럽지 않게 정직한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은 일시적으로 출세의 길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불우한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반면,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고 아첨하는 자는 당장은 대접받으며 득의양양한 생활을 할지 몰라도 그것이 결코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한때 불우하고 고독할지언정 영원히 불쌍하고 처량해질 일은 피해야 한다."(전집 1칙)
사실 이런 글을 읽으면 나 자신에 대한 경종보다는 오히려 은근히 화가 난다. 매일 쏟아지는 사건 사고와 정치 뉴스를 접하다 보면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더 떵떵거리며 사는 듯해서 그렇다. 사기를 쳐서 남의 재산을 가로챈 악인惡人은 잘 먹고 잘 살지만 반면 사기를 당해 완전 가산을 빼앗긴 선인善人은 하루하루 어렵게 삶을 이어간다. 은퇴후 사기를 당해 빈곤 노인의 삶을 살아가는 나의 넋두리인지도 모르겠다.
죄를 지은 혐의자임에도 국회의원 뱃지를 달면 그 죄에 대한 재판은 한없이 길어지며 임기가 종료할 즈음에나 진행된다. 그동안 받아먹은 세비는 국민들의 세금이다. 그야말로 세금 빨아먹은 기생충인 셈이다. 재판에서 유죄로 판결나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대법원까지 항소를 이어간다. 이런 부당한 재판 진행도 국가 경제의 막대한 손실인 셈이다.
현명한 사람은 꼼수를 쓰지 않는다
"남을 속이거나 함정에 빠뜨리는 책략 같은 것을 모르는 사람은 분명 현명하다. 그러나 이런 권모술수를 잘 알면서도 쓰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실로 가장 현명하다."(전집 4칙)
살다 보면 우리 주위에 꼼수를 잘 쓰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마치 자신이 가진 뛰어난 순발력인 것처럼 서슴없이 거짓말까지 하면서 맞닥뜨린 위기를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간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권세가나 권력자에 빌붙어 온갖 아양을 떨며 그들의 눈을 속인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될 경우 이런 사람은 결국 그 업보를 피할 길 없어서 어두운 감방에서 상당 기간 인생을 보낼 수밖에 없다.
반면에 권세나 이익, 사치스런 호화 생활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은 청렴하다. 또 이런 것들과 늘 가까이 하면서 결코 물들지 않고 분수를 지키며 참되게 살아가는 사람은 진정한 청렴지사淸廉之士라고 높이 추켜 세워도 무방할 듯하다. 사실 청렴과 비리非理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음을 경계해야 한다.
재능보다 인성이 중요하다
"인덕仁德이 한 집안의 주인이라고 한다면 재능才能은 그 주인을 따르는 시종侍從과 같다. 재능이 풍부해도 인덕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주인 없는 집에서 시종이 제멋대로 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 무너지기 마련이다."(전집139칙)
흔히 '인성人性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맞다, 안 맞다'를 떠나 이미 우리들은 이같은 경험을 한두 번 겪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말하자면 사람 같지 않은 행동을 스스럼없이 벌이는 그런 경우 말이다. 말의 유희遊戱일지 몰라도 '인성'에서 '사람人'이 빠지면 뭐가 되겠는가? 그렇다. 마치 동물과 같은 짓을 벌이는 거다. 특히, 인성은 가정에서 부모들의 교육과 행동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를 대충한다면 결국 마음에 벌레 먹은 자녀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부모의 자녀 교육은 정말 중요하다.
남 탓만 하면 실패자가 된다
"스스로 반성하는 사람은 모든 경험이 자신을 단련하는 약이 된다. 반면,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은 모든 생각이 자신을 해치는 독이 된다. 반성하고 배우는 사람은 성장하지만 남 탓만 하는 사람은 실패자가 되니, 두 사람의 인생에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생긴다."(전집 147칙)
매사에서 발생한 결과를 놓고 잘못된 점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오히려 비겁한 성품 탓이 아닐까? 즉 자기는 잘못이 없고 남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변명하고 상대적으로 자신을 미화하는 것은 심리상 일종의 '책임 회피'이자 즉흥적인 '위기 모면'에 더 가깝다.
내 오래된 직장 생활을 돌이켜 볼 때 이런 부류의 하수들은 정말 많았다. 그래서 하수들은 꼼수를 즐기므로 이런 행동을 내보인다. 딴에는 자신의 순각적 재치를 최고의 기술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나를 거쳐간 여러 상사들도 그랬다. 하지만 그렇게 위기를 모면한 사람들의 끝은 잘 풀린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진품명품이 아님이 결국 드러나기 때문이다. 진정한 반성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사람만이 진품명품 인생을 만든다.
검소함과 인색함의 차이
"검소함이란 본래 재물과 이익에 담담한 것을 가리키는데, 자신의 인색함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인간성을 강조하는 도구가 도리어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방편이 되어 버렸으니 실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전집 166칙)
이 글이 담고 있는 교훈이자 지혜는 '검소함을 추구하고 인색함을 버리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검소함은 장점인 것이고, 인색함은 단점이라는 경계심을 가지라는 주문인 셈이다. 결코 이를 혼동해선 안 된다. 호화롭고 사치스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검소함과는 거리가 멀고 이를 계속 추구하는 사람은 남을 위한 배려이자 베품엔 고약할 정도로 인색해지기 마련이다.
'부지런함'이란 본래 옳은 일을 실천하는 데 힘을 쏟는 것인데, 그저 재산을 늘리려고 열심히 일한다는 뜻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과 일맥상통하는 가르침이다. 그렇다. 본질을 왜곡해선 안된다. '검소함'이란 사치를 추구하는 행동에 제동을 걸라는 것이며, '인색함'이란 지나친 재물 소유욕을 내려놓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가진 것을 내어줄 수 있는 따뜻한 배려심을 가지라고 강조하는 셈이다. 어디 이게 쉬운 일이겠는가.
꾸짖음과 강요
"잘못을 꾸짖을 때는 무턱대고 엄하게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상대가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사람을 가르칠 때도 목표를 높게 설정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그가 따라올 수 있는 수준인지를 고려해야 한다."(전집 23칙)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허물을 이야기할 때는 나쁜 점만 꾸짖는 게 아니라 좋은 점도 함께 평가해야 한다. 그러면 상대가 불쾌해하지 않으면서 내 말을 귀담아 듣게 된다."(전집 221칙)
돌이켜볼 때 나도 자녀 교육에 있어서 반성해야 할 점이 많았다. 젊은 시절 지녔던 '스파르타 식 교육관' 때문이었다. 엄하게 가르치고 무리하게 과제를 부여했었다. 많이 공부하는 게 좋다고만 생각했기에. 그런데, 언젠가 고전 공부를 하던 중 공자님 말씀에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글귀가 내 가슴에 와 닿았다.
내 과거 어린 시절의 모습을 회상해보니 나 역시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밖에서 어울리며 노는 게 더 좋았음이 떠올랐다. 이후부턴 나의 훈육법이 서서히 달라졌었다. 맨 먼저 아침 여섯시에 기상해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동네 뒷산을 산책하는 일부터 개선했더니 환호성이 터져 나왔었다. 이젠 삼십대 성년인 두 딸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같은 과거의 내 변화가 무척 좋았음을 전한다.
원만한 인간관계에 필요한 말
첫째, 남의 사소한 잘못을 나무라지 않는다.
둘째, 남의 숨기고 싶은 비밀을 들추어내지 않는다.
셋째, 남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는다.
- '전집 105칙' 중에서
현명한 사람은 말을 아낀다
"열 마디 말 중에 아홉 마디가 옳아도 반드시 명석하다는 칭찬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단 한 마디만 잘못해도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진다. 열 가지 전략을 세우고 전부 성공해도 반드시 그 공을 인정받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단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헐뜯는 소리가 빗발친다. 따라서 현명한 사람은 침묵할지언정 떠들지 않으며 서툰 척할지언정 재주를 부리지 않는다."(전집 71칙)
"옛사람이 말하길 ‘맹수는 길들일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은 항복시키기 어렵고, 깊은 골짜기는 메울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은 만족시킬 수 없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후집 65칙)
'투머치토크'를 지적받은 경우가 있었다. 제일 먼저 이를 지적한 사람은 아내였다. 전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나를 저격하는 듯한 말을 하길래 무척 당황스러웠다. 상장 기업 임원으로 승진 발령 받아 즐거운 마음에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훌륭한 지적이었다. '많이 아는 것도 병病'임을 거론하면서 굳이 해야 할 말이 아닌 것까지 평소에 길게 늘어놓는 내 버릇을 그동안 관찰한 끝에 이젠 달려져야 할 때라고 판단한 아내가 꺼낸 말이었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남에게 알려주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닐지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말을 하라는 지적이자 가르침이었다. 이후 상대가 굳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 내용에 대해선 함구하는 자세를 견지했다.

필사하면 더욱 좋은 글귀
'초역 채근담' 속엔 좋은 글귀가 넘치고 넘친다. 짧은 지면에 이를 모두 소개할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삶에서 고락苦樂을 두루 경험하며 스스로 갈고닦은 끝에 이룬 행복이야말로 진짜 오래간다. 마찬가지다. 믿기만 하지 않고 때론 의심하고 헤아린 끝에 얻은 지식이야말로 참된 것이다.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인문 #고전 #중국고전 #채근담 #홍자성 #동양철학 #초역채근담 #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