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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학 입문하기
  • 오쿠노 카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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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7-03
  • : 3,050

인류학이 탄생한 이래 이 학문이 계속 질문해온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류학자들은 이 근원적인 문제를 계속 좇으며 고민하고 악전고투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해낸 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관점과 살아가는 법을 바꾸고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기'도 될 수 있습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책의 저자 오쿠노 가쓰미는 문화인류학자이자 릿쿄대학 교수이다. 대학생이던 스무 살 때 멕시코로 떠나 시에라마드레 산맥의 선주민 테레우아노인 마을에 머물렀다. 이후 방글라데시에선 잠시 불교 승려로서 생활했고, 터키의 쿠르디스탄과 인도네시아를 여행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에 2년간 보르네오섬에서 화전민 카리스인을 연구했고, 2006년엔 보르네오섬의 수렵채취인 푸난인과 함께 생활해 현재까지 계속 그들의 삶을 탐구해왔다.


총 여섯 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근대 인류학이 탄생하기까지(1장), 말리노프스키 - 삶의 전체(2장), 레비스트로스 - 삶의 구조(3장), 보아스 - 삶의 방식(4장), 잉골드 - 삶의 변화(5장), 앞으로의 인류학(종장) 등을 통해 인류학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말리노프스키


1884년 폴란드 남부의 옛 수도 크라쿠프에서 출생한 그는 저명한 슬라브어 학자였던 아버지가 일찍 사망함으로써 홀어머니의 손 아래에서 성장했다. 19세기 말 유럽의 문예사상을 가까이하는 소년 시절을 보냈다. 이후 크라쿠프에 있는 야기엘론스키대학에 입학해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한 뒤 서서히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독일 라이프치히대학에 다니며 민족학자 카를 뷔허와 민족심리학자 빌헬름 분트 아래에서 사사받기도 했다. 1910년 영국으로 건너가서 런던정치경제대학 대학원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말리노프스키가 사망한 직후(1942년)에 한 친구가 연구실에서 장서와 원고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일기를 발견했다. 영어로 번역되어 1967년에 출간되었는데, <말의 엄격한 의미에서의 일기>(A Diary in the Strict Sense of the Term)에는 현지인들에 대한 혐오감과 적의 등이 노골적으로 쓰여 있었다. 이에 '20세기의 인류학을 개척한 위대한 말리노프스키'라는 영웅적인 우상은 파괴되었고 다방면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어젯밤도, 오늘 아침도, 노를 저어줄 사람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백인으로서의 분노와 구릿빛 피부의 현지인들에 대한 혐오가 강해지고 우울도 덮치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으며, ‘이런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다’고 절망했다.”
인류학자가 현지 조사에서 겪는 어려움은 어느 정도였을까? 2006년 저자는 1년간 말레이시아 사라왁주(보르네오섬)의 브라가강 상류에 살고있는 수렵민 푸난을 연구하기 위해 필드에 나선 적이 있었다. 처음엔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푸난어는 잡음으로만 들려서 도무지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화장실이 없어서 숲속에서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해야 했다. 사람들은 여러 이유를 대며 염치없이 현금을 요구하는데, 빌려줘도 갚는 일이 없었다. 이들이 숲에서 사냥해온 것들 가운데 검은잎원숭이, 긴꼬리마카크원숭이 고기는 너무 맛이 없어서 삼킬 수조차 없었다. 왜 일부러 이런 오지까지 왔는지 뼈저리게 후회했다.
트로브리안드제도의 쿨라kula 교역
쿨라 교역交易이란 트로브리안드제도, 우드라크섬, 미시마섬,노먼비섬, 퍼거슨섬 등, 뉴기니 동쪽의 섬들을 잇는 교환交換 제도를 가리킨다. 시계 방향으로 섬들을 따라 교환되는 '빨간 조개 목걸이(소울라바)'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섬들을 따라 교환되는 '흰 조개 팔찌(음왈리)'이다. 


쿨라는 현대적인 경제 현상의 ‘외부’에 존재하는 제도이지만 매우 합리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섬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쿨라 교역에 따라 바이구아(귀중품)가 오감으로써 재화를 교환하는 상대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천천히 교환을 하기에 관계를 오랜 기간 이어갈 수 있다. 즉 쿨라 교역은 떨어져 살아가는 여러 공동체를 연결하고 충돌을 피하기 위한 ‘구조’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쿨라 교역은 화폐를 통해 타자와의 관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는 없는, 매우 흥미로운 행동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말리노프스키가 묘사한 쿨라는 서양 근대의 ‘외부’에 존재하는 하나의 증여 교환 모델이다.

쿨라에 대한 이러한 착안은 불교의 ‘화엄사상’의 근본 원리와 비슷하다. 대승불교의 경전인 화엄경은 4세기경 중앙아시아에서 정리된 불경인데, 그 속의 한 장章인 '보살십주품'에서는 ‘일즉다, 다즉일(一即多, 多即一)’이라는 개념이 시사된다. 한 알의 모래 속에 무한대의 우주가 있고, 또 그 무한대의 우주는 티끌 하나와 같다는 이야기이다. 화엄사상에서는 ‘인드라망’이라는 비유로 이를 설명한다. 인드라는 '제석천帝釋天'을 말한다.
레비스트로스
우리들은 통상 멀리 떨어진 변방에 사는 사람들을 '야만인' 또는 '미개인'으로 여겼다. 이는 일방적인 편견을 갖고 그들을 아래로 내려보며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했던 사고였다. 반면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연구를 통해 '미개인'의 세련된 사고를 인류학적으로 밝혀냈다. 이들의 사고방식을 우리들이 몰랐을 뿐, 사실 그들은 매우 세련되고 이성적이었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그의 책 <슬픈 열대>(1955년)에 잘 드러난다. 그는 1930년대 말에 브라질 오지 여행에서 체험한 내용들을 이 여행기에 소개했다. 그는 화가였던 아버지가 머물던 벨기에에서 탄생(1908년), 이듬해에 가족들은 프랑스로 귀국했다.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외할아버지는 랍비였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피카소 그림에 감동을 받고, 바그너와 스트라빈스키 등의 음악을 사랑했다. 예술가적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1차, 2차 세계대전을 청년 시절에 겪으며 막 창설된 프랑스 사회주의학생연맹 사무총장에 취임, 정치에 열중했다. 이 무렵 그는 전쟁, 식민주의, 자본주의, 브루주아지로 인해 타락한 유럽을 버리고 아라비아 아덴으로 여행을 떠난 폴 니잔의 <아덴 아라비아>을 읽고 니잔의 모험 정신을 칭찬하는 서평을 썼다.
1935년 배를 타고 브라질로 향한 레비스트로스는 상파울루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카이강 사람들을 방문했다. 1938년대 후반에 자연 속에 살아가는 인간들과 만난 일과 브라질 체류 경험을 책으로 출간한 <슬픈 열대>(1955년)를 통해 2차세계대전 후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예감하도록 만들었다.   

1939년 파리로 귀국한 레비스트로스는 프랑스군에 소집되어 국경에 구축된 마지노선에 배치됐다. 어느 날 마지노선을 따라 산책하던 그는 민들레 홀씨를 멍하니 바라보던 순간 민들레의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식물과 민들레를 대비함으로써만 처음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형태, 색, 식생 등, 민들레와 다른 식물의 어디가 다른지, 그 ‘차이’를 앎으로써만 민들레의 독자성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때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이 전 세계 이곳저곳에 있는 ‘차이’를 통해 이 세계를 이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사고법이야말로 구조주의의 원점이다.

레비스트로스는 ‘토테미즘’과 ‘히스테리’가 19세기 말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두 주제가 탐구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의 시각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자신 안에 있는 껄끄러운 부분을 ‘미개인’과 정신병 환자에 투영하여 자신들의 정상성을 확인하려 했다. ‘미개인’과 정신병 환자라는 주제에는 연구자의 바람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그는 서양을 ‘미개’와는 다른 합리적인 세계로 보기 위해 탄생된 ‘환상’이 토테미즘이라고 생각했다. 토테미즘은 연구자들이 창조한 산물이었다. 토테미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토템 환상’만 있을 뿐이었다.

보아스
미국 인류학은 남북전쟁(1861~1865년) 이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형성되었는데, 바로 가까이에 선주민이 있었다는 사실이 큰 영향을 미쳤다. 즉 멀리 떨어진 땅이 아니라 자신들이 거주하는 곳에 오래전부터 살아왔던 선주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것이다.
20세기 미국에선 급속한 공업화가 진행됐다. 이에 도시 환경이 악화되었고 빈부 격차와 흑인의 시민권 문제 등이 분출해 미국 사회는 사회 개선과 제도 조정에 착수해야 했다. 미국 인류학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힘입어 발전했던 거다. 문화라는 개념에 근거해 발전했기에 이를 '문화인류학'이라고 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삶의 방식'이다.
미국의 선주민 연구를 크게 발전시킨 인물이 독일 태생 이민자인 보아스였다. 그는 독일 베스트팔렌 지역 민덴의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1858년), 독일 북부의 킬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물의 색채 인식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1881년)를 취득했다. 1886년 북아메리카 서해안을 조사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후 뉴욕에서 시민권(1887년)을 얻고 클라크대학에서 인류학 강의(1889~1892년)를 했다. 이후 후진 양성에 힘쓰다가 1936년 컬럼비아대학을 퇴임했다.
안류학에서 문화상대주의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보아스의 제자인 멜빌 허스코비츠라고 여겨진다. 그는 보아스의 '문명'상대주의를 이어받으면서도 미개와 문명을 불문하고 모든 문화가 대등하다고 주장했다. 내 나라 문화와 남의 나라 문화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에 우열優劣은 없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전에 이러한 개념은 ‘상식에 어긋난’ 것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문화상대주의라는 말은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 문화상대주의라는 사고방식은 미국 인류학의 근저에 흐르는 이념으로서 계승되어 인류학뿐만 아니라 세계화하는 현대에서도 공유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와 더불어 문화상대주의는 인류학이 탄생시킨 개념들 가운데서도 세상에 특히 큰 영향을 미쳤다.

같은 미국 선주민이지만 더 거칠고 투쟁적인 콰키우틀인의 문화는 도취를 상징하는 신 디오니소스에 빗대어 ‘디오니소스형’이라고 정의한다. 의례에서 춤추는 자는 깊은 황홀경에 빠지며 입에서 침을 흘리고 심하게 경련한다. 과거에 콰키우틀 사회에는 식인 습관이 존재해서 노예의 사체를 먹는 동안 성스러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파푸아뉴기니의 도부섬에서는 많은 이가 부정不貞을 저지르는데, 발각되면 격렬한 말다툼이 벌어지고, 요리 솥을 부수거나, 자살을 시도하거나, 주술을 걸기도 한다. 끝나지 않는 의심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지만 도부인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잉골드
잉골드 인류학의 주제는 '살아 있다'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삶'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변화하는 것이다. 고정되고 명사적인 '삶'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동사인 '살아 있는' 삶의 변화에 눈을 돌리는 것이 잉골드의 인류학이다.
잉골드는 영국 버크셔주 레딩에서 출생(1948년)했다. 아버자는 유명한 균류학자인 세실 테런스 잉골드로 영국 균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그는 인간을 그물망 모양의 선으로서 파악해야 한다고 보고 '균류 인간'이라는 신조어를 만든다.  
‘도보여행’ 같은 ‘선’이야말로 살아가는 길과 다름 없다고 이야기하는 잉골드는 우리 모두에게 ‘도보여행’을 하는 여행자가 되어 지식을 쌓으며 “따라 나아가기”를 권한다. 말하자면 살아 있다는 것은 만사가 예정조화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이 아니다. 우발적으로 ‘무언가’와 만나고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선’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우리는 지금 앞이 보이지 않는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공동체에서 공유될 만한 ‘이렇게 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가치관은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스스로 꿈꾸는 삶이 있는 미래를 찾아내야 한다.



이 대목에 책의 목적만이 아니라 잉골드 인류학의 정수가 담겨 있다. 잉골드는 그동안 먼저 이론이 존재했고 그 결과의 파생물로서 사람의 ‘살아 있다’가 다루어져왔다고 이야기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사람의 ‘살아 있다’를 인류학의 주제로 다루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선언한다. 과거의 인류학에 결별을 고하고 새로운 인류학을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류학 100년을 다시 독해하고 인류학이 인간의 ‘살아 있는’ 모습을 탐구해왔음을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이다.
그리고 점들이 연결된 네트워크가 아니라 선들이 서로 얽힌 그물망, 주체와 객체의 고정적인 이원론이 아니라 생성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일어나는 ‘살아 있음’, 현실에서 격리된 학지學知가 아니라 신체 경험을 수반하는 실천의 지知야말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인류학의 목적은 인간의 삶 그 자체에 대해 대화하는 것이다.”- <팀 잉골드의 인류학 강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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