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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stone님의 서재
  • 식물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 이유리
  • 16,200원 (10%900)
  • 2026-07-08
  • : 1,070
우리와 닮아 있는 식물의 시름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그 모진 계절을 어떻게 견디고 마침내 넘어서는지를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싶었다. 식물이 온몸으로 써나가는 그 치열한 생존의 기록은 사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삶의 숙제들과 맞닿아 있다. 햇빛 한 줌을 더 받기 위한 기다림, 단단한 지표면을 뚫고 뿌리를 내리는 인내 그리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잎을 떨구는 결단까지.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이유리는 현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식물세포 구조와 세포의 운명 간의 관계'를 규명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저자와 식물과의 인연은 학부 시절 식물생리 수업에서 시작되었다. 식물의 삶과 죽음에 대해 논하라는 과제 하나가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총 다섯 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식물의 세계(1장), 세상의 편견에 맞서서(2장),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할 때(3장),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4장), 더불어 살기(5장) 등을 통해 식물이 저자에게 보여준 삶의 지도를 우리들에게 건넨다.
삶과 죽음은 느리게 흘러가는 연속선상에 있다

식물의 죽음은 언제, 어디서 시작되는가? 우리는 그 경계를 명확히 나누고 싶어 하지만, 식물은 그 경계를 조용히 넘나들며 말한다. 삶이란 깨어날 수 있는 가능성일 수 있고, 죽음은 단지 잠시 멈춘 침묵일지도 모른다고. 식물의 삶과 죽음은 뚜렷한 이분법이 아니라, 느리게 흘러가는 연속선 위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커피 한 잔에 담긴 쌉싸래한 유혹
커피의 각성 효과는 단순한 기호를 넘어, 생존을 위해 빚어넨 식물의 화학적 전략이 인간의 일상 속으로 스며든 결과다. 그 중심에 카페인이 있다. 피로를 유발하는 아데노신 수용체를 가로막아 각성 상태를 연장하는 이 알칼로이드는 차, 초콜릿, 콜리 등에도 존재한다. 현재까지 60여 종 이상의 식물이 카페인을 합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우리는 처음부터 식물의 전략 안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식물을 기른다고 믿는 동안, 식물은 오랜 시간 자신이 만든 화학물질로 인간을 길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후추, 설탕, 대마, 담배 그리고 커피까지, 식물이 만들어낸 향과 맛은 인간의 손과 입을 사로잡으며 문명의 방향을 바꾸어왔다. 교역과 중독, 전쟁과 산업을 관통한 이들 식물은 칼이나 총이 아니라 한 방울의 향과 쓴맛으로 역사를 움직여온 것이다.
무심히 들이켜는 커피 한 잔. 그 안에는 식물이 고안한 전략이 배어 있다. 우리의 하루를 여는 이 작은 습관은 식물이 얼마나 정교하고 능동적인 설계자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향기로운 증거다.
아름답지 않아도 꽃이다
벼꽃을 본 적이 있나요? 코앞에 있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볼 품이 별로다. 이렇게 화려하지 않은 이유는 꽃잎이 없어서다. 벼꽃은 여성 개의 수술과 한 개의 암술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곤충의 도움 없이 스스로 수분受粉을 한다. 수술이 영글어 꽃밥을 방출하며 고개를 숙일 즈음, 이삭 껍질은 수술이 아래쪽에 있는 암술에 닿기 쉽도록 살짝 입을 열어준다. 이 덕분에 찰나의 순간 벼는 스스로 수정을 마치고 다시 입을 닫는다. 이렇게 해서 쌀알이 될 생명이 잉태된다.
이처럼 식물은 의외로 영리하다. 우리들이 알고 있던 꽃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즉, 꽃은 꼭 피어 보여야만 하는가? 향기를 내뿜어야만, 색色을 입어야만, 꽃이라고 불릴 수 있는가? 눈에 잘 띄지 않아도, 사람의 눈길을 끌지 않아도, 그들 역시 제 방식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형형색색 화려하지 않아도, 누구의 시선에 들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꽃’이었다.
김춘수 시인은 '꽃'이란 시詩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표현했다. '나에게로 온다는 것'은 바로 존재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다. 누가 불러주지 않는 이름들, 아직 '꽃'이 되지 못한 존재들,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알고 그리고 얼마나 바라보고 있을까? 그저 하찮은 잡초라고만 부른다면 그들은 얼마나 속상할까?
덜어냄의 미학
삶에도 계절이 있다. 풍요로운 시기에는 자원을 다각화하고 가능성을 키우는 선택이 필요하다면, 겨울을 앞둔 시기에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를 결정해야 한다. 식물은 봄에 잎을 틔우면서도 언젠가 그것을 떨궈야 할 순간을 함께 준비한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망설이지 않는다. 덜어낼 것은 과감히 떼어내고 지켜야 할 것은 묵묵히 품은 채 겨울을 맞는다. 


중요한 건, 그들이 겨울을 준비하며 남겨두는 것이 단지 버틸 양식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긴 겨울 끝에 다시 새싹을 틔울 에너지, 다시 피어날 가능성도 함께 간직한다. 찬란한 봄을 피워낼 힘을 마음 깊이 품은 채 식물은 가장 험한 계절을 견뎌낸다.(126쪽)

또 식물에게 노화老化는 단순한 퇴화退化가 아니다. 실은 아주 똑똑한 의도된 행동이다. 즉 생식 성공을 위한 자원을 끝까지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정교하게 실계된 마무리다. 그렇다. 노화는 떠남이 아니라 정리이고, 소멸이 아니라 완성이다. 물러날 시기가 오면 조용히, 그러나 흔들림 없이 퇴장한다. 식물은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퇴장을 아는 존재일지 모른다. 내 옷에 어울리지 않는 감투를 쓴 사람이 스스로 용퇴하는 꼴을 보기 힘들다. 식물보다도 못한 존재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빛이 사라진 후 시작되는 것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은 어디에나 적용된다. 사람에게도 식물에게도 마찬가지다. 더 빨리 자라게 하고픈 조바심은 식물에게 쉼을 허락하지 않고 하루종일 LED 등을 켜놓고 식물을 관리하는 경우도 목격하게 된다. 식물의 경우 빛을 통해 성장하는 능력이 있어도 지나치면 스트레스가 된다. 엽록소가 분해되거나, 광합성 과정에서 생기는 활성산소가 쌓여 세포가 손상되기도 한다. 
또한, 식물의 숨 쉬는 통로인 기공氣孔도 지속적인 빛에 의해 잘 열리지 않게 된다. 기공이 열리지 않으면 이산화탄소를 충분히 들이마실 수 없고, 광합성 효율도 떨어진다. 빛으로 자라는 존재조차 빛만으로는 온전히 자라지 못하는 것이다.
어둠, 즉 밤이 필요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닞 동안의 손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밤은 오히려 성장이 집중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식물은 생체시계를 갖고 있어서 낮과 밤의 주기를 잘 인식하고 있는 존재다. 이를 통해 대사와 호르몬 작용을 정교하게 조절한다. 낮 동안의 광합성으로 축적된 녹말은 밤에 천천히 분해되며 식물의 성장을 돕는다. 어둠과 쉼의 시간을 무시하면 결코 꽃이 피지 않는다.
담쟁이의 삶이 보내는 경고
하루의 일상 중 변함없이 흘러가는 일은 동네 산책이다. 내가 거주하는 곳 주변엔 그리 높지 않은 산이 있다. 산 주위를 산책할 때 늘 거슬리는 게 바로 덩굴이다. 덩굴은 왜 이리 생육이 좋은지 놀랍기만 하다. 벌써 칡 덩굴은 나무를 휘감고 오르고 있다. 햇볕을 더 많이 먹겠다는 욕심이리라. 이들이 타고 오른 수목은 상대적으로 햇볕이 차단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그 정도기 지나치면 그 수목은 고사하기 쉽다.


산책하다 보면 담쟁이 덩굴도 자주 목격한다. 담쟁이의 삶도 몇 가지 경고를 남긴다. 덩굴이 나무를 휘감으며 자라면 그 무게로 인해 나무는 성장이 저하되거나 결국 고사하기도 한다. 관계에서도 지나친 의존은 상대를 지치게 하고, 마침내 관계 자체를 병들게 할 수 있다. 
또 홀로 자라지 않는 담쟁이가 벽을 떠나지 못하듯, 자기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타성에 젖으면 독립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기대는 법을 배우되 언젠가는 다시 스스로 설 수 있어야 한다. 그 균형이야말로 함께 살아가는 삶에서 가장 어렵고도 피할 수 없는 숙제이다.
깊어지려면 넓이가 필요하다
물을 찾아 땅을 깊이 파고드는 일은 인간만의 숙제가 아니다. 식물도 그러하다. 겉으로만 봐서 어디에 물이 있는지를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생존과 직결되는 물을 찾으려는 절박함이야 식물이 분명 더 클지도 모른다. 인간은 땅을 팔 도구라도 있지만 식물에겐 그런 게 없다. 그럼에도 결국 물이 있는 곳에 닿는다. 목적지를 향하는 그들의 비밀은 뭘까?
이들은 싹을 틔우는 순간부터 어디로 뿌리를 내려야 할지를 감지해나간다. 바로 중력이다. 뿌리 끝에 있는 분열조직을 통해 뿌리는 성장한다. 그런데 뿌리공무엔 평형석이라 불리는 작은 입자들이 들어 있다. 이는 사람의 귀 속 이석처럼 중력의 방향을 감지한다. 이를테면 몸 안에 나침반을 지닌 셈이다.

뿌리는 곧게 내려가지 않는다. 나선형으로 휘어 자란다. 중력에서 자꾸 비껴 나가며 헤매는 듯 보일지라도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전체적인 흐름이 아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건, 뿌리가 크게 방향을 틀 때면 어김없이 반대편으로 곁뿌리를 내민다는 점이다. 다른 가능성을 끝내 붙잡고 있는 것이다. 


이 곁뿌리에도 평형석이 있어서 반대 방향으로 자라면서 또 다른 가능성을 탐색한다. 그 모든 곁가지를 품은 끝에야 뿌리는 목적지에 닿는다.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은 단 하나의 방향인 '깊이'만이 아니다. 뿌리는 휘고, 머뭇거리고, 옆으로 새고, 모든 곁가지와 망설임 끝에 물에 도달한다. 그렇다. 깊어지려면 넓이가 필요함을 깨닫게 한다.


31가지의 흥미로운 식물 이야기들


저자의 의도는 식물의 생존이 아닌 이들의 생애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그리하여 그 안에 숨겨진 뜨겁고 유연한 삶의 지혜가 우리 모두의 일상 위에 마치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길 원했던 거다. 흥미로운 식물 이야기들을 통해 배우는 지혜가 예사롭지 않다. 내가 식물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연과 생태에 관해 관심을 가진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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