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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stone님의 서재
  •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 켄 코프먼
  • 24,750원 (10%1,370)
  • 2026-03-11
  • : 1,345
오듀본은 모든 방면에서 어떻게든 윌슨을 능가하려고 애를 썼다. 그는 윌슨의 <미국 조류학> 같은 딱딱한 어투를 피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작품에 <북미의 새>라는 쉬운 제목을 붙였다. 학술적인 주제를 원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조류학 전기>라는, 윌슨의 책보다 좀 더 학구적인 제목의 책도 준비했다. 실물 크기로 그려진 오듀본의 새 그림은 윌슨의 그림보다 훨씬 크고 극적이었다. - '프롤로그' 중에


1803년 프랑스의 부유한 해군 사령관은 자신의 십대 아들이 나폴레옹의 군대에 징집되는 걸 막고자 사업 목적으로 사두었던 펜실베이니아의 농장에서 잠시 살도록 했다. 그런데, 18세 소년은 이웃집 16세 딸 루시와 사랑에 빠져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았다. 실패한 구멍가게와 제분소 주인을 거쳐 부자 고객들의 초상화 그리기와 미술을 가르치는 일로 어렵사리 생계를 유지했던 힘든 여정 속에서도 루시는 항상 남자의 곁을 지켰다.
켄터키에서 수년 동안 사업 부진을 겪었지만 남자는 끈질기게 새鳥 그림을 그리고 채색하는 실력을 키워나갔다. 루시는 남편의 작품이 우수하다고 확신했다. 1824년, 경비를 마련한 두 사람은 루이지애나에서 필라델피아로 갔다. 이곳은 당시 미국의 과학과 인쇄술의 중심지였기에 새 그림을 출간해줄 출판사를 물색했다.
하지만 일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필라델피아는 북미 조류에 대한 종합 연구서 <미국 조류학>의 저자 알렉산더 윌슨의 고향이었기에 여전히 그를 존경하는 추종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초짜 이방인이 난데 없이 나타나 윌슨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실수를 저지르자 모든 기회의 문이 닫히고 말았다.
절망에 빠진 남자는 새 그림 포트폴리오를 들고 영국으로 향했다.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순식간에 명성을 얻었다. 자연주의자, 학자, 예술인, 귀족 등은 남자의 그림에 찬사를 보냈고, 몇 달 만에 판화가, 인쇄업자, 채색가 등이 팀에 합류해 첫 번째 컬러 판화 세트가 제작되었다.
1827~1838년에 총 435점의 컬러 도판을 제작 출판했고, 1831~1839년에 삽화가 실린 모든 새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담은 5권의 책을 출간했다. 이 두 대작은 <북미의 새>와 <조류학 전기>이며, 비로소 존 제임스 오듀본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 남자는 윌슨보다 더 다양한 새 종을 다루고자 했다. 그는 무모하게도 구독자들에게 400종의 새 그림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스스로 무덤을 팠다. 왜냐하면 그렇게 많은 새를 찾지 못한 상황이었고, 당시 북미 동부에서 알려진 조류가 400여 종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새로운 종을 발견해야만 했다. 1년 전, 그는 플로리다 남부의 야생을 탐험하던 중 미보고된 새 몇 종을 발견했다. 이제 그는 캐나다 북동부의 '래브라도'로 향하려고 스무 살 아들과 또래의 청년 4명으로 탐험대를 꾸렸다. 이후 노련한 선장과 선원을 고용해 돛대가 2개인 범선 리플리호를 빌려서 출항했다.
일행은 해안에 도착한 후 야셍 탐사에 나서 새로운 종을 발견했다. 핀치였다. '톰의 핀치'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탐사 내용의 일부가 허구라는 지적을 받고 있어 안타까움마저 든다. 아무튼 상세 내용은 <조류학 전기> 2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오듀본이 그린 '링컨참새')


이제부터는 책의 저자 켄 코프먼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그는 어린 시절부터 생물들의 이름에 푹 빠져 있었다. 마당에 나가 달팽이나 벌레, 꽃이 핀 잡초들을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할 수 없을 경우엔 동물과 나무에 관한 그림책을 뒤적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선생님의 무심한 한마디가 저자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넌 그걸 발견한 게 아니야. 과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게 아니라면 발견이라고 할 수 없어.” 도대체 이 말이 다 무슨 뜻일까? 호기심이 넘치는 어린 아이에게 마치 초를 치는 소리 같지만, 사실 이는 맞는 말이다. 미기록된 종이 아니어야만 비로소 '발견'이라고 부를 수 있는 셈이다.

새에 열광하는 변방의 한 청년, 배움에 대한 열망은 있었지만 참고 자료가 부족했던 오듀본에게 윌슨의 책은 마치 기적처럼 보였다. 오듀본의 기록에 따르면, 그가 구독 신청서에 서명하려고 하자 파트너 로지에가 프랑스어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듀본, 친구여. 왜 굳이 이걸 구독하려고 하나? 내가 보기엔 자네의 그림이 훨씬 더 훌륭하다네. 또 자네는 이 신사만큼 미국 새들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 주장에서 그림에 관한 부분은 사실이었을지 모르지만, 미국 새를 잘 안다는 부분은 적어도 당시에는 사실이 아니었다. 어쨌든 오듀본은 펜을 내려놓았고 결국 윌슨의 책을 구독하지 않았다. 윌슨은 오듀본의 그림을 살펴본 후 출판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왔는데, 아니라고 답하자 매우 놀라워했다.


백로(위는 켄 코프먼, 아래는 오듀본이 그린 그림)
새를 그리는 화가나 삽화가라면 누구나 존 제임스 오듀본과 비교되기 마련이다. 새를 관챃라고 그림을 그려온 저자에게도 오듀본은 당연히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림을 많이 그려보지 않은 사람들은 예술가에겐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대상을 한번 보면 바로 쓱쓱 스케치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억력엔 한계가 있다. 더구나 살아있는 새는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새를 보면서 스케치하는 건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던 오듀본은 퍼키오멘 크리크(밀 그로브를 지나 흐르던 스퀼킬 江의 지류)로 내려가 처음 마주친 새인 목도리물총새를 사냥해 집으로 가져왔다. 이것은 <북미의 새> 판화를 포함하여 그가 평생 사용하게 될 방법이었다. 나무판과 철사, 핀을 활용해 아직 부드럽고 유연한 갓 죽은 새를 적절한 위치와 자세로 고정하고, 나무판의 격자를 이용해 전체적인 비율을 확인하여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었다. 
오듀본은 새들을 실물 크기로 그렸기 때문에 예술용 나침반과 구분선을 사용하여 날개의 너비, 발톱의 길이 등 새의 디테일을 측정하고 이를 그림에 그대로 반영했다. 이 과정을 통해 오듀본은 정확하면서도 정교한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은 저자가 오듀본에 관한 6권의 전기와 그의 에세이<내가 새를 그리는 법>을 읽고서 알아낸 내용이다. 요즈음 새를 그리기 위해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화가라면 분명히 조류보호협회로부터 고발당했을 것이다.


오듀본, 스스로 명성에 오점을 남기다
책을 읽는 동안 오듀본의 명성 뒤에 가려진 진실을 접하는 순간 왜 인간이란 이렇게 욕심덩어리일까?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의 저자 켄 코프먼의 지적에 따르면 오듀본은 알렉산더 윌슨의 '아메리카참매' 표본을 훔쳤고, 이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독수리 그림을 베껴 새로운 종으로 발표했으며, 그가 발견했다는 새로운 종들 중 다수도 약간 그림만 변형했을 뿐이었고, 심지어 그저 평범한 '작은머리딱새'를 자신이 발견했는데 윌슨이 표절했다고 비난까지 했다. 특히, 후원자나 명망 높은 사람의 이름을 따 새로운 종이라고 발표한 그의 도덕성은 민망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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