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초강대국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되는 것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를 향한 관심, 즉 호기심을 갖는 것이다. 두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극명한 차이점이야말로 21세기를 정의하는 경쟁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책의 저자 댄 왕은 중국 윈난성 태생으로 일곱 살에 캐나다로 이민, 로체스터대학교를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서 경력을 쌓았다. 2017년부터 홍콩, 베이징, 상하이 등에 거주하며 중국의 기술 야망과 산업 전략을 심층적으로 연구해왔다. 여기서 비롯된 인사이트를 담은 'China Annual Letters'를 매년 발표해왔으며 이는 오늘날 중국의 행보를 설명하는 매우 의미 있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총 일곱 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공학자가 만드는 나라 vs 법률가가 이끄는 나라(1장), 숫자에 집착하는 베이징의 설계자들(2장), 중국은 왜 제조업에 목숨을 거는가(3장),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자녀정책(4장), 제로 코로나(5장), 벽을 쌓아가는 중국(6장),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7장) 등의 고발성 글을 통해 금융과 소트프웨어의 환상에서 깨어나 다시 공장을 돌리고 인프라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이 책은 단순히 미국과 중국의 비교를 넘어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서구 문명에 대한 통렬한 반성문이자 강력한 경고장이다. 그래서 다시 공장을 돌리고 인프라를 세워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패권 경쟁의 본질이 제조업과 하드웨어 역량이 국가 안보의 핵심이자 미래란 사실을 일깨운다.
공학자가 만드는 나라 vs 법률가가 이끄는 나라
우리는 법률가 중심 국가와 공학자 중심 국가의 차이를 그저 기분만으로만 느끼지 않는다. 법률가 중심의 국가가 되어버린 미국에서는 더 이상 제대로 된 제조 업체를 찾아볼 수 없으며, 꼭 필요한 공공사업 역시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이렇게 미국의 사회 기반 시설은 초라한 상태로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퇴보하는 반면, 중국은 지하철과 교량, 고속도로 등 새로운 기반 시설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 제조 업체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미국의 자동차 회사나 반도체 생산 기업은 그만큼의 성취를 이뤄내지 못했다. 중국의 정치체제는 언제라도 대규모 건설이나 생산 계획을 추진할 준비가 되어 있어서, 경제 분야에서 아주 작은 변동만 일어나도 베이징에서는 우선 새로운 공공사업과 관련된 거창한 계획부터 발표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주택 위기’라는 말이 흘러나올 때마다 중국에서는 주택 가격 폭락을, 그리고 반대로 미국에서는 주택 가격 급등을 떠올리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은 공학工學에 대한 열정을 잃었고, 중국은 사회 모든 분야에 공학을 적용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사실상 단순한 토목이나 전기 기술 관련 전문가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회공학자다. 고대 중국 황제들은 새로 획득한 영토로 대규모 이주를 명령하거나 만리장성 혹은 대운하 건설을 위해 백성을 강제로 동원하는 등 개인의 사회적 관계를 철저히, 그리고 마음대로 재구성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지금 중국 통치자들은 과거 황제들보다 야심이 훨씬 더 크다. 과거 소비에트연방은 베이징의 공산당 지도부에 중공업에 대한 열정은 물론, 인간과 사회를 다루는 새로운 공학자가 되겠다는 새로운 열정을 불어넣었다. 인간과 사회를 다루는 새로운 공학자란 과거 소비에트연방의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했던 말로 시진핑 주석도 이 말을 인용했는데, 여기에는 결국 중국 전체를 현대적인 국가 그 이상으로 뒤바꾸겠다는 야심이 깔려 있다.
숫자에 집착하는 베이징의 설계자들
넓은 중국 땅을 여행하다 보면 궁금한 점이 시야에 들어온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를 떠나 멀리 떨어진 지방을 찾아가노라면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조차 미국의 가장 부유한 지역보다 더 우수한 사회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음을 목격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임에도 중국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대규모 공공사업을 펼치는 수 있는 사회주의 공학자 중심 국가의 특징이다.
이렇게 고립된 지역이면서 중국에서 네 번째로 가난한 성, 그러니까 가구 소득이 미국 뉴욕주의 1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구이저우성이지만 고속도로 길이는 뉴욕주의 3배에 달하며, 고속철도망 역시 잘 운영될 정도로 사회 기반 시설은 대단히 우수하다. 그런데 구이저우성의 사례가 중국에서는 그다지 특별한 게 아니다. 공학자 중심의 국가인 중국은 전국에서 쉴 새 없이 비슷한 공공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구이저우성은 중국 성장 전략의 결과물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라 할 것이다.
중국은 왜 제조업에 목숨을 거는가
<뉴욕 타임스>에 실린 한 기사(2012년)에 따르면 애플은 아이폰 생산 초기에 약 9,000명의 산업공학 전문가를 채용해야 했다. 분석가들은 미국에서 그렇게 많은 전문가를 한꺼번에 찾으려면 9개월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2주 만에 모든 채용이 끝났다. 우수한 인력이 충분할수록 설계와 생산 기간이 단축된다. 팀 쿡도 이런 말을 했다. “미국에서 금형 전문가를 모은다 해도 당장 회의실 하나를 채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국에서라면 축구장 여러 곳을 채우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다."
애플과 폭스콘은 품질 기준을 유지할 수 있는 노동자 확보말고도 광둥성 남부에 위한 '중국의 실리콘밸리'인 선전의 또 다른 장점을 발견했다. 선전에서라면 전자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부품들을 찾아낼 수 있으므로 이런 접근성이 곧 효율성과 이어진다는 점이다. 즉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발생하더라도 관련 공급 업체 대표를 한자리에 모을 수 있기 때문다.
선전의 노동자들은 그렇게 음악 재생 장치며 스마트폰, 그리고 여러 전자 제품을 조립하며 기술을 배워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 관리자와 일부 전문가는 화창베이의 폐기장을 돌아다니며 남는 부품으로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러한 부품들은 매년 성능이 향상되었는데, 월간지 <와이어드>의 전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은 이를 두고 ‘스마트폰 전쟁을 통해 얻은 부수적 이득’이라 불렀다. 스마트폰 부품 공급망에 수천억 달러가 투자되면서 카메라, 센서, 배터리, 모뎀 등 전자 부품의 가격이 급락했고, 우리는 한때 소수의 부유한 강대국이 특별한 용도로만 사용하던 첨단 장비를 주머니에 넣고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1993년 부시 대통령의 수석 경제 고문이었던 마이클 보스킨Michael Boskin은 이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컴퓨터 칩? 그게 무슨 감자칩 같은 건지?” 이는 미국에서 제조업이 사라져도 큰 문제가 아니라는 지도층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예인데, 그 때문인지 공장의 해외 이전을 반대하는 노조 지도부와 소수의 비주류 경제학자를 감상주의자로 몰아가기도 했다. 클린턴 행정부와 뒤를 이은 부시 행정부 모두 미국 기업의 공장이 중국으로 옮겨 가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조업 이탈로 미국이 경제적, 정치적 파멸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불과 20년 전, 외국 기업들이 선전 같은 지역에서 성장을 위한 씨앗을 뿌렸다. 이제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향후 선전 같은 공동체의 홝가 줄어들 것이다. 다만 그런 날이 그렇게 빨리 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애플의 2023년 최신 공급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200개 공급 업체 중 156곳의 생산 공장이 중국에 있다. 그리고 그중 72곳이 광둥성 선전시에 있는데 미국, 베트남, 인도의 생산 공장을 합친 것과 거의 맞ㅁ먹는 수준이다.
지금까지 중국 지도자들은 산업 고도화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는데, 다시 말해 중국에 더 이상 필요 없는 노동 집약적 산업이나 환경오염이 문제가 되는 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중국이 완벽주의를 목표로 한다고 선언했는데, 이는 ‘저사양 산업’조차 중국에서 퇴출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환경오염 때문에 선진국이 회피하는 희토류 채취를 거낌없이 채굴해 이를 지원 무기로 활용한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들이 어느 정도 인정한 논리, 즉 인건비가 낮은 국가로 제조업이 몰리는 경제 논리를 따르는 것과는 별개로 시진핑 주석은 각각의 산업 분야가 계속해서 국가 경제 규모를 따라 옮겨 가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
한 자녀 정책은 갑작스럽게 시작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행정의 복마전처럼 변해갔다. 이 정책이 시행된 후 약 35년 동안 여기에 영향받지 않은 중국 가정은 거의 없었다. 1990년까지도 첫아이를 가지려면 여성은 직장을 비롯해 당 간부들에게 최대 12가지의 서류를 확인받고 피임에 동의하는 동의서도 제출해야 했다.
베이징 중앙정부는 인민해방군 장성 출신 첸신중을 국가가족계획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마치 군사작전처럼 치밀하게 정책 시행을 위한 초기 단계를 계획했다. 우선 가족계획 담당 공무원을 중심으로 구성한 순회 부서를 이른바 ‘충격 부대’로 임명하고 이 대규모 ‘전투’를 위해 ‘일대일 전술’을 실행하도록 지시했다.
작전 계획의 핵심은 ‘충격 공격’이었는데, 원래는 결정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 정치적 동원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운동에서 유래한 용어였다. 이 부대는 공무원 및 당 간부, 지역 집행관, 그리고 마을을 순회하는 의료진으로 구성되었다. 각 지역 병원은 자궁 내 장치 삽입, 나팔관 결찰술, 정관수술, 그리고 임신 중절이라는 ‘네 가지 수술’을 언제든 시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국가 안보의 핵심은 제조업이다
이밖에도 저자는 중국의 '제로 코로나'라는 공산당식 통제를 통해 시진핑 정부가 벌인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인민 전쟁을 비판하고, 벽을 쌓아가는 중국 이야기를 통해 미국산 반도체 없이도 버티는 방법을 찾은 중국 기술 기업과 미국과 중국간에 벌어질지도 모를 전쟁 발발시 양국의 군수물자 양적 격차를 폭로한다. 특히 보유 선박이 취약한 미국이 MASGA 프로젝트를 발동해 한국 조선업에 기대려는 의도를 느끼게 한다.
#정치외교 #브레이크넥 #댄왕 #웅진지식하우스 #미중패권대결 #미국제조업민낯 #변호사의나라미국 #엔지니어의나라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