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여는 당신, 그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지금 당신 앞에 한 권의 이야기가 열한 개의 멜로디가 놓여 습니다. 음악과 함께 기억되지 않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이야기를 듣고, 음악을 듣다'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김용욱(필통밴드)는 단순한 노래를 넘어, 이야기를 품은 음악을 만들어간다. 'B.S.T'(Book Sound Track)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한 권의 책에 담긴 세를 음악으로 확장하고, 그 감정의 결을 독자이자 청자에게 입체적으로 전하고 자 한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 삽입되는 음악을 OST(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라고 말한다. 흔히 주제곡이라고도 부르는데, 대체로 해당 작품의 배경이 되는 연주곡이나 또는 보컬곡曲을 일컫는 말이다. 이 소설은 이와 유사한 개념의 BST(북 사운드 트랙)라는 독특한 구조를 우리들에게 내보인다.
영혼들의 쉼터
"나는 배가성이란 별에 있다가 왔어요"
이 작품 속엔 나, 수호천사(여고), 타냐, 로타, 히바로드, 영혼(나오스) 등이 등장한다. 마치 공상소설 속으로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흔히 우리 인간들은 머나 먼 우주의 별에서 푸른 행성인 지구라는 이곳에 와서 살다가 죽으면 고향인 그 별로 돌아간다고 말하지 않던가. 그렇다. 배가성은 작품 속의 별이름이다.
영혼들의 쉼터는 이번 생을 마감하고 다음 생을 준비하는 곳이다. 대략 700번이 넘는 환생을 해 왔던 나, 전에 노르웨이 로보텐에서 어부로 살았을 때 만났던 로타가 지나가다 나를 알아보더니 눈을 찡긋댔다. 이 단편엔 환생還生이란 요소를 가미하고 있다.
“어! 벌써 다시 돌아왔어요?” 이번엔 이집트에서 피라미드 돌을 쌓을 때 만났던 히바로드였다. 이에 멋쩍은 미소로 답했다. 시야에 초록색 가득한 쉼터가 들어왔다. 길 양 편의 이팝나무, 벤치나 잔디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영혼들의 모습과 왁자지껄한 소리 가득했다.
배가성에서 시간은 의미가 없다. 이곳의 존재들은 지구 나이로 425년을 살지만, 아무도 오늘이 며칠인지 몇 년이 지났는지 같은 걸 세지 않는다. 오직 기억으로 삶을 쌓아간다. 지구인들처럼 시간에 쫓기거나 늙어간다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는 곳이다. 또 이곳에선 어느 누구도 다투질 않는다.
BST 배가성
머나먼 저 별에 그곳에는신비한 또 누군가들이살고 있을까?숨결처럼 부서지는 기억들이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끝없는 별이 춤을 추네(중략)
노란 캡슐을 타고 미지의 별로 향했다. 이 별은 생과 생生 사이를 이어주는 또 하나의 미지의 별이었다. 순식간에 캡슐은 그 별의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별의 내부 공간은 마치 지하철 터널을 연상케 했다. 공간은 거대한 둥근 원형의 통로였다. 드디어 도착했다. 캡슐과 문이 동시에 열렸다.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 BST 목록)
얼마전 재미있게 시청했던 JTBC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내(김혜자)는 아픈 남편(손석구)의 뒷바라지에 정성을 다하지만 결국 사별한다. 이후 아내(김혜자)도 죽어서 이승을 떠나는데,이때 지하철 같은 이동 수단에 승차한다. 승차한 영혼들은 내려야 할 곳에 이르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밖으로 빨려나간다. 이를테면 천국과 지옥으로 향할 영혼들의 행선지가 이렇게 구분되는 셈이다.
신비로운 색감을 지닌 공간의 천장엔 무수히 많은 별과 별자리들이 가득했다. 유리 카펫을 따라 걸어가자 커다란 원형 모양의 서가書架가 한 공간 전체를 감싸고 있고 마치 살아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 안엔 꽤많은 책이 놓여 있었다. 이는 바로 나의 인생이었다. 책을 들춰보고 싶었다. 수호천사 여고는 말했다. "책이 허한다면 열릴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열리지 않을 거예요. 한번 시도해 봐요"
처음, 그리고 선물
그림을 그리는 소영과 버려진 애완견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진국은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하루는 진국이 별관 옥상으로 끌려갔다. 소위 '일진'으로 보이는 동급 여학생 세희가 벌인 짓이었다. 세희는 도서관보다 헬스장에 가는 덩치 큰 여학생이다. 담배를 사오라는 요청에 돈이 없다고 버티다가 진국은 세희 무리들에게 폭행을 당한다. 때마침 3학년 퀸카인 소영이 이 광경을 목격하곤 이를 제지한다.
어느 금요일 오후,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소영을 찾아간 진국은 개를 좋아하면 주말에 유기견 보호센터에 같이 가자고 제안한다. 이에 소영도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진국은 미술실을 나오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일요일 오전, 약속시간보다 좀 일찍 도착한 진국은 자신의 애완견 곤이와 함께 교문 앞에서 기다리던 중 거울을 꺼내 얼굴을 살폈다. 그는 아토피를 앓고 있는데 어제부터 좀 가라앉은 상태였다. 사실 이런 피부염증엔 개와 고양이를 멀리해야 한다. 아무튼 일행은 택시를 타고 유기견 센터로 향했다. 견사犬舍에서 진국은 배설물에 아랑곳않고 청소와 소독을 했다. 이런 하루를 함보내며 소영과 진국은 자신들의 마음 속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끈적하고, 재즈한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가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햇살은 가득했다. 향긋한 꽃냄새가 바람을 타고 물결을 이루는 듯 진국의 코를 자극했다. 소영이 옆에서 눈을 감고, 고요하게 하늘을 바라봤다. 진국은 한쪽 이어폰을 빼 소영의 귀에 가져다 댔다. 눈을 뜬 소영이 진국을 바라보며 입가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침대 위. 진국은 눈을 떴다. 옆엔 소영이 조용한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소영에게 입 맞추려 다가갔다. 소영은 '똥 냄새. 큭 큭'이라고 장난을 치며 이불 속으로 몸을 돌돌 말았다. 진국은 꿈 얘기를 했다. '푸른 눈을 가진, 바닷속 존재, 빛 구슬' 얘기를 듣던 소영은 미소를 지으며 아기 태몽이란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은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복도에서 대기하다가 소영은 침대에 누웠다. 의사는 초음파 기계를 조정하면서 화면으로 아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쿵.쿵.쿵.쿵.쿵.쿵.쿵, 작지만 분명한 소리는 아기의 심장 소리였다. 진국은 소영의 배 위에 손을 얹고 아기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예쁜 딸 별이가 선물처럼 찾아왔다. 북 사운드 트랙에 노래가 흘러나온다.

(사진, 그대라서 참 좋은걸요)

(사진, 선물)
애가哀歌
소영은 복지센터에서 힘든 주민들을 돕고 있었고, 진국은 택배기사로 일했다. 횡단보도 신호들이 녹색으로 바뀌자 소영은 딸을 안고 건너기 시작했다. 굉음과 함께 차 한 대가 질주해 오고 있었다. 위험을 직감하고 소영은 몸을 돌렸지만 공중으로 튕겨 올라 차량 앞 유리창에 강하게 충돌했다. 음주운전이었다.
내 세계는 다시 멈춰가고 있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는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우주 속에서 내가 존재했던 시간은 늘 찰나였다. 그렇게 짧은 순간만큼 존재하다 그렇게 사라졌다. 북 사운드 트랙에 음악이 흐른다.

(사진, 'We’re all crying')
새벽 공기가 차갑게 얼굴을 스쳤다. 물류센터엔 택배 상자들이 가득했다. 진국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구역의 박스들을 챙겨 목적지로 향했다. 내동 617-1, 그린빌 4층. 손수레를 끌고 익숙한 건물 앞에 섰다. 지난 8년 동안 수없이 찾아왔던 곳이다. 숨을 고르며 택배 상자를 문 앞에 내려놓았다. 문 옆에 음료수, 소보로빵, 그리고 작은 쪽지가 놓여 있다.
"추우신데 감기 조심하시고, 명절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작은 쪽지가 진국에겐 하루를 버틸 큰 힘이 되었다. 한번도 대면한 적 없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동 중간에 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빌라 단지의 좁은 골목을 따라가며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이젠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백년 아파트', 오래된 글자가 바랜 페인트 위로 드러났다.
두 다리를 살짝 벌리고 엉거주춤 걸어가는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형이다. 6살에 멈춰 더 늙지 않고 있는 형은 동생인 진국에게 오히려 형이라 부른다. 간질이 시작되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고 마는 사람이다. 돌봐 줄 사람이 없을 때 이런 아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요양원이리라.
마지막 아파트를 돌면 오늘 일이 끝난다. 주머니 속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건양대 병원 응급실입니다. 이소영 씨 보호자 되시죠?" 순간적으로 진국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교통사고를 당한 상황이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이미 소영과 별이는 하늘 나라로 떠난 후였다. 작은 쪽지의 기분좋은 하루가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처럼 이렇게 허망할 줄이야.
B.S.T. 고백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랑주며살 수 잇을까? 내가...아픔주고 상처받고 쓰러지는우리 인생이눈물이 나요이젠 버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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