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타임 기준으로 한화만 16 시즌을 지켜봤다. 워낙 긴 세월, 많은 경기가 있었고 모든 일을 일일이 다 기억할 순 없다. 그래도 그 시점에 일어난 일들을 중심으로 과정 속에서 느꼈던 것, 당시에는 미처 몰랐지만 지나고 나서 깨달았던 것도 있었다. 개인의 감상문으로 보여질 수도 있고, 한화의 고난 극복 관찰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암흑기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희노애락을 경험하고, 인생을 배웠다. - '들어가며' 중에서

책의 저자 이상학은 어릴 적부터 야구를 좋아했고, 야구 기자가 되어 야구장을 지겹도록 드나들고 있다. 2010년 9월부터 <OSEN>에서 한화 이글스 담당 기자를 맡아 기나긴 암흑기를 지켜보았다. 20~30대 청춘을 한화 야구와 함께하면서 인내의 시간을 함께 보낸 수많은 이글스 팬들에게 추억과 희망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필했다.
총 다섯 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기나긴 암흑기의 시작(1장), 감독들의 무덤이라는 악연(2장), 너무 짧았던 가을 축제(3장), 지긋지긋한 그 단어, 리빌딩(4장), 마침내 한화의 시대가 오는가(5장) 등 야구 전문 기자의 눈으로 바라본 한화 이글스의 기나긴 성장사를 다루고 있다.
사실 난 국민학교 때 짧은 야구 선수 생활을 한 바 있다. 피지컬이 워낙 뛰어나고 힘이 좋아 동네 야구판을 호령하던 시합을 몇 차례 지켜보던 한 국민학교 감독님의 눈에 들어 본격적으로 야구에 입문했었다. 하지만 잦은 부상과 공부완 담을 쌓는 그런 삶이 못마땅한 아버님은 장래가 밝지 않다며 기어코 나를 책상에 앉힘에 따라 내 진로는 일찌감치 공부로 정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야구는 내 취미로 줄곧 이어졌다.
대구에서 성장한 탓에 삼성 라이온스 골수팬이 되었는데, 선수들 중엔 내가 아는 이가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회사의 파산으로 경북고 대신에 강제 입학당한 대구상고(현, 상원고)는 야구팀을 운영하고 있어서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당시 전국적으로 강호 반열에 올라 있는 팀이었다. 이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이만수, 김시진 등 동교 출신 선수들이 삼성 라이온스 멤버로 활동했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2025 시즌 한국시리즈 진출을 다투는 상대는 한화 이글스였기 때문이다. 야구매니아인 탓에 한화 이글스 성장사도 나름 꿰고 있었지만 올해는 대학후배인 김경문 감독과 양상문 코치가 합류한 후 갈수록 짜임새있는 팀으로 변모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띌 정도였다. 그래서 손자병법의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심정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뜻대로 되진 않았다. 삼성 라이온스는 아쉽게 문턱에서 무릎을 꿇었다.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 삼성이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제 이글스 담당 야구 전문 기자인 저자가 바라본 한화 이글스 속으로 들어가보자. 인상적인 부분을 발췌해서 소개해 보려한다. 이글스의 지나간 리빌딩 이야기들은 뒤로 하고 2025 시즌의 강점이 무엇인지 파악하려는 게 나의 독서 목적이었기에 이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더구나 개인적으로 김인식 감독, 유지훤 코치 등과 술자리를 함께할 정도라서 속사정을 좀 알기에 리빌딩 부분은 더욱 그렇다. 김인식 감독 퇴진 이후 한화 이글스는 기나긴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나의 야구 철학관은 '야구는 선수들이 한다'였다. 선수가 없으면 감독은 헛 힘만 쓰고 만다. 명장이라던 김응용, 김성근 감독과 잠깐 반짝했던 한용덕 감독 등도 모두 그러했다.
류현진의 귀환이 과연 암흑기를 마감할 한수였을까? 기량이 뛰어난 투수인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해외에서 너무 오래 활동한 탓에 노쇠화 기미를 보인다는 단점 또한 보였다. 더구나 KBO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꿰뚫어보지 못하는 아쉬운 점도 있었다.
“한화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팀이다. 한화 가 아닌 다른 팀에 갔다면 이런 자리에 감히 있지도 못할 것이다. 많은 걸 준 구단이고, 앞으로 계속 보답해야 할 팀이다. 우승 한 번 못하고 떠나서 죄송하다. 나중에 돌아오면 한국시리즈에 서 보답하겠다” -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둔 류현진의 고별사 중에서
비록 초대 올림픽 야구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김경문 감독이지만 유독 KBO 리그에선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신생팀 NC 초대 감독으로 부임, 강력한 외국인 홈런타자 테임즈 때문에 이번엔 우승할 것으로 보였지만 그렇지 못했다. 심지어 자진사퇴까지를 표하며 그라운드를 떠나는 선택을 했다. 한국시리즈 4회 진출 모두 준우승에 그친 감독으로 남았다.
'와신상담, 절치부심'을 실행에 옮긴 60대 야구 지도자는 2022년 미국 LA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지도자 연수를 받으며 때를 기다렸다. 어느 구단에서도 그를 호출하지 않았다. 세대교체의 여파로 2019년부터 5년간 KBO 리그엔 60대 감독이 없었다. 결말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겠지만 한화에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새로운 구장의 완성과 함께 '한화의 시대'를 염원하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염원이 작용한 게 아닐까 싶다.
가을 야구를 통해 김경문 감독의 능력에 대해 한화팬들의 많은 질책과 비판이 뒤따랐다. 나 또한 엘지에 우승을 헌납한 경기, 마무리로 나선 김서현 투수가 연속적으로 2홈런을 맞아 다 이긴 경기를 내준 장면이 압권이었다. 더구나 이날 동시에 치어진 경기에서 엘지는 졌으니 말이다. 투수 교체를 실기한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감독의 책임이다. 가을야구에서도 이런 교체 미스는 또 있었다. '믿음의 야구'가 이거라면 지금껏 김경문 감독은 요행수를 바라는 지도자였던가란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아무튼 '전면 드래프트' 제도의 도입으로 유망한 미래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한화의 운명을 바꾸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난 이 부분이 강팀을 만드는 '실질적인 리빌딩'이라고 생각한다. 야구경기는 선수들이 한다. 감독은 이를 조율하는 지휘자일 뿐이다. 한마디로 한화에 행운이 찾아온 셈이다. 마침내 어두운 암흑기를 마치고 우승이라는 꿈을 부풀게 한다.

‘운’이라는 건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을 때 이뤄진다. 김경문 감독은 1군 엔트리에 있는 선수들을 모두 활용하는 ‘토털 야구’로 팀 전체의 일체감을 크게 높였다. “뒤에 나오는 선수들이 강해야 진짜 강팀”이라는 김경문 감독 지론대로 한화는 백업 선수들이 강해졌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제 밥상은 차려졌다. 폰세 투수가 메이저리그로 떠난 2026 시즌은 김경문 감독의 진정한 리더십 시험 무대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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