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자신의 삶을 가꾸며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얻고,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가는 과정입니다. 고사성어에서 그런 의미를 찾으려면 여간 시간과 정성이 드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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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박은철은 35년 차 한문 교사이자 만화를 그리는 교장이다. 현재 대안학교 광성드림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문 전공자이지만 문학, 역사, 철학, 시·서·화, 자연과학, 음악, 미술, 체육 등 다방면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총 아홉 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마흔 개 고사성어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예술과 인생, 고대 판타지, 인내와 기다림, 공생의 길, 나쁜 정치·좋은 정치, 사고의 틀, 인재, 마음, 깊은 생각·옳은 행동 등에 관련된 고사성어들이다.
화룡점정畵龍點睛
중국 남북조 시대에 있었던 고사를 소개하려 한다.
양梁나라에 불교 인물화와 산수화 그림의 대가인 징승요가 살았는데, 그는 중국 화단畵壇의 4대 조상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는 강소성의 한 신축 사찰 주지 스님으로부터 용 그림을 의뢰받아 벽에 네 마리의 용을 그렸다. 마치 살아서 꿈틀대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하지만 그는 용의 눈에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이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눈동자를 그려넣는 순간 용이 하늘로 올라가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사람들은 비웃기 시작했다.
이런 반응에 화가 난 화가는 용 한 마리에 눈동자를 그려넣었다. 정말로 이 용은 하늘로 승천하고 말았다. 깜짝 놀란 구경꾼들이 벽을 살펴보니 나머지 세 마리 용은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 바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다소 과장된 이야기이지만 이 말은 중요한 부분을 완성하거나 마지막 손질을 끝낸다는 의미로 쓰인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열자列子> 탕문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살펴보자.
중국 북서부 감숙성의 북산北山에 90세 노인인 우공愚公이 살앗는데, 그는 자신의 집 사이에 태행산과 왕옥산이 가로막고 있는 상황으로 인해 한참 돌아서 가야만 길을 갈 수 있는 불편을 겪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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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우공이산’ 삽화)
이에 가족회의를 거쳐 가로막고 있는 두 산을 깎아 평평하게 만들기로 결정,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아들과 손자, 그리고 짐을 지는 사람 등 세 사람을 데리고 산의 흙을 파서 삼태기에 담아 멀리 떨어져 있는 발해의 공터에 버렸다. 이렇게 한 번 버리고 돌아오면 한 계절 바뀌었다.
이런 행위에 대해 누가 봐도 제정신이냐고 비난할 듯하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 내려치기’ 격이란 것이다. 그런데, 우공 가족의 이런 노력을 지원하겠다는 이가 나타났다. 이웃에 사는 과부댁의 어린 아들이었다.
한편, 우공의 어마어마한 작업을 지켜보던 지수智叟(‘지혜로운 노인’이란 뜻)라는 인물이 이를 비웃는 말을 하자, 우공은 이에 대해 ‘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느냐?’는 식의 가르침을 일갈한다. 우공은 미래지향적 사고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지수)“자네는 어찌 긜도 어리석은가. 그 나이에 무슨 힘이 남아 있다고 이 거대한 산을 깎는단 말인가. 괜히 식구들 고생만 시키는 꼴이니 이제 그만두시게.”
(우공)“자네의 그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네. 식견이 어째 과부의 저 어린아이만도 못한가. 내 자손들은 자자손손 대를 이어 불어나겠지만 산은 더 이상 불어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언젠가는 평평해질 것 아닌가?”
그렇다. 아무리 큰 일이라도 시작을 해야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란 속담도 있지 않은가. 우공의 작업은 ‘어리석은 행동’을 부각시키는 게 아니라 장시간이 걸릴지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결국엔 뜻을 이뤃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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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비슷한 뜻의 사자성어)
학철부어涸轍鮒魚
목마른 사람에겐 지금 바로 물을 줘야 옳다. 하지만 이런저런 조건을 붙여 줄지말지 한다면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애가 타서 오히려 화가날 것이다. 학철부어란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의 붕어’란 뜻인데, 매우 위급한 처지에 놓인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느 날, 장자莊子는 양식이 딱 떨어져 평소 친분이 있는 지방관리 감하후를 찾아가 양식을 꾸어달라고 부탁했다. 이 부탁을 받은 관리는 빌려주면 갚지도 못할 사람같아서 거절하고 싶지만 친분 때문에 딱 잘라 거절하는 대신 애매한 제안을 했다.
“앞으로 내 영지領地에서 세금을 거둘텐데, 세금이 걷히면 그때 300금을 빌려주겠네, 어떤가?”
이에 화가 난 장자는 관리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이런 이야기를 펼쳤다. 즉 장자가 길을 걷던 중 누군가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에서 붕어였다. 자신은 높은 파도에 튕겨나온 해신海神의 신하인데, 물 한 바가지만 부어달라는 부탁이었다. 이에 장자는 “며칠만 기다리게. 내가 곧 오나라와 월나라 왕에게 유세를 하러 가는데 일이 잘되면 그때 서강西江의 물길을 거꾸로 돌려서 구해주겠네.”라고 대답했다고 관리에게 말했다.
장자가 붕어에게 한 말은 소위 ‘말대가리에 뿔나면 주겠다’는 것과 같다. 이처럼 장자는 붕어 우화愚話를 통해 은근히 지방관리의 비열한 태도를 비꼬았던 것이다. 결국 관리는 장자에게 사과하고 그 자리에서 양식을 빌려주었다는 이야기이다.
가정맹어호茄政猛於虎
이 이야기는 <예기禮記>, ‘단궁하편檀弓下篇’에 나온다. 호환虎患이란 옛 사람들이 가장 무섭다고 여긴 호랑이에게 화를 입는 것을 말한다. 다른 동물과 달리 유독 호랑이는 사람들을 자주 습격했기 때문이다.
공자 일행이 태산 근처 깊은 산속을 지나치는데, 한 여인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연유를 알아보니 소복을 입은 여인은 이미 시아버지와 남편 모두 호랑이에게 잡아 먹혔는데, 이번엔 아들마저 호랑이에게 희생당했다는 얘기를 했다.
이에 공자가 ‘왜 이렇게 위험한 산골을 떠나질 않느냐?’고 질문하자, 이 여인은 한숨과 함께 그래도 이곳은 혹독하게 세금을 물리거나 재물을 빼앗는 벼슬아치들이 없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즉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교훈을 전한 셈이다.
연목구어緣木求魚
중국 전국시대의 제齊나라 선왕宣王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당시 동쪽에 위치한 제나라는 서족의 진秦나라, 남쪽의 초楚나라와 함께 여러 제후국들 중 강대국에 속했다. 기원전 319년 왕위에 오른 선왕은 초기엔 제자백가를 등용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점점 자신이 이룬 업적에 자만하며 국정을 아예 총애하는 신하에게 맡겨버린 후, 술과 여자에 빠져 지냈던 적도 있었다.
전국시대에 천하를 주유하며 여러 제후국에 왕도王道정치를 설파하던 맹자는 제나라의 인재양성기관인 직하궁 학생들을 가르치며 7년간 제나라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이때 선왕에게도 왕도정치에 대해 설명했다. 당시 주고받은 대화속에 ‘연목구어緣木求魚’란 말이 나온다.
“왕께서는 지금 영토를 넓히고 강대국 진秦나라와 초楚나라의 복종을 받아내어 천하를 다스리며 오랑캐들을 제압하길 원하십니다. 이는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찾는다면 물고기만 구하지 못할 뿐이지만 패도정치를 하다 실패하는 날에는 나라가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중략) 그러나 왕께서 어진 정치를 베풀어 천하의 모든 선비들이 왕 밑에서 벼슬하고 싶도록 만들어보십시오. 세상의 모든 농부들이 왕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모든 상인들이 왕의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싶게 만들어보십시오. 세상 사람 모두가 왕의 길을 걷고 싶게 된다면 누가 감히 왕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연목구어’란 고사성어를 통해 우리들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일에 매달리지 말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각주구검刻舟求劍
여불위 휘하의 수많은 식객들이 총동원되어 고대부터 당시까지 정치경제사상문화역사 등을 총망라한 책이 화려하게 출간되었다. 책의 이름은 여불위의 성을 따 <여씨춘추呂氏春秋>라 명명되었다. 여기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떤 초楚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고 있었는데,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실수로 강물에 빠트리고 말았다. 너무 수심이 깊어서 칼을 건질 수 없자 그는 갑자기 배에 칼자국을 내면서 말했다.
“이 지점이 내 칼을 빠트린 곳이다.”
배가 강기슭에 도달하자 칼자국이 새겨진 곳을 들어가 칼을 찾으려 했다. 이에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비웃었다. 이 우스운 이야기엔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여불위의 강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야기 뒷부분에 실린 내용이다.
“지나간 옛법만 가지고 나라를 다스린다면 초나라 칼잡이와 다를 것이 없다. 시대는 변했는데 법은 그대로라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배에 칼자국을 새겨 칼을 찾는다’는 뜻의 각주구검刻舟求劍은 칼자국을 낸 위치의 강물과 그 배는 계속 흐르고 있음을 간과한 어리석은 행동이다. 이는 ‘시대의 변화에 올바로 대처하지 못하는 고지식하고 용통성 없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고사성어가 제공하는 교훈
책은 40가지의 고사성어를 소개하고 있다. 재미있으면서도 그 결말은 우리들에게 교훈을 준다. 만화를 그리는 한문 교사가 쓴 책이라 남녀노소 구분없이 읽기에 편하다. 옛 것을 고리타분한 것으로만 비하하지 말고 그 속에서 반짝이는 보물을 캐길 주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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