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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 선 2
- 피어스 브라운
- 12,150원 (10%↓
670) - 2016-10-28
: 130
황금의 태양으로 떠오르기 위한 영웅의 피의 추락담, 피어스 브라운의 <골든 선>
이 웅장하고 화려한 SF소설은 이해하는 데 엄청난 과학적 배경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낯선 SF틱한 용어가 나오더라도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전개 속도에 저항하지 못하고 끌려가게 될 것이다. 설령 SF라는 장르 자체가 낯선 독자라도 용감하게 이 책을 집어들어 펼치기만 하면 그 때부터는 그저 <골든 선>의 무자비한 스피드를 즐기면 될 테니까. 장담해도 좋다.
<골든 선>의 소사이어티는 옥타비아라는 현직 군주를 둔 철저한 계급 사회로 모든 신분은 크게 하이, 미드, 로우 컬러 계급으로 나뉜다. 소사이어티 최고 지배층인 골드와 최하위층인 육체노동 계급 레드, 전쟁만을 위해 만들어진 옵시디언 등 여러 컬러로 계층이 나뉘고, 계층 간의 이동은 절대 불가능한 사회다.
이러한 배경에서 최하급 레드 컬러에서 소사이어티 최고 지배층인 골드 컬러로 거듭난 주인공인 대로우의 존재는 혁신과 혁명의 아이콘이자, 떠오르는 새로운 태양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골든 선>은 영웅다운 면모를 갖춘 전사의 눈부신 혁명의 역사를 그리는 방향을 지워버리고, 컬러 코드 계급사회인 소사이어티의 사회구조적 문제와 그 변화의 방향을 고심하는 정치적 개인으로서의 면모와, 영웅이면서 전사로 만들어진 자신의 태생적 존재에 대한 고뇌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사실 온전한 영웅담이라기에 부족하게 주인공 대로우는 소설의 시작과 끝까지 줄곧 연약한 부분을 지닌 채 운명의 길을 걸어나간다. 영웅으로서 각성한 뒤 거대한 패업과 같은 하나의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해 고민 없이 영웅의 길을 걷는 부류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
<골든 선>은 계층 이동이 불가능한 폐쇄적 신분제 사회 속에서 투쟁하는 전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분히 정치적이며, 페미니즘적일 수 밖에 없는 소설이다.
특히 여성 캐릭터를 대상화 된 여체의 모습으로 강조해 보여주기보다는 각 컬러 신분과 자라난 가정환경에 따라 다른 특성을 가진 인격적이고 사회적 캐릭터로 느껴지게 서술된 점이 놀라웠다.
주인공 대로우의 연인인 무스탱의 캐릭터를 보면 남자 주인공을 단순 서포트하거나 성적인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서 그치거나 사랑에 빠진 줄리엣을 연기하기보다는 상위계급인 골드로서의 사회적 책임감을 가진 정치적 입장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며, 사랑보다는 논리와 명분으로 대로우를 설득하려 들고, 또 어리석고 무모한 행동으로 위기에 처한 대로우를 생각지도 못한 묘수로 돕는 현명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점이 바로 그렇다.
또한 대로우가 살아남아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달려갈 수 있는 데 가장 큰 활로를 열어준 것은 빅트라라는 여성 캐릭터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이후에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지만 <골든 선> 1권의 이야기 전개의 핵심 인물이자 무기력에 빠진 대로우를 "조막만 한 개새끼처럼 굴지 말라"는 명대사로 걷어차 준 멋진 캐릭터라 할 수 있겠다.
빅트라가 서 있는 정치적 입장이 여주인공 무스탱보다 불순하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지만, 결백의 가능성이 희박한 자는 원래 주인공의 자리보다는 매력있는 조연으로 남기 마련인 것 같다.
전작인 <레드 라이징>에 대한 정보 없이 시작한 책이라 첫 페이지의 몰입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레드 라이징>의 내용을 유추해가며 읽을 수 있는 서술이 등장하기 때문에 주인공의 과거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사실 전작의 배경지식을 탑재하지 않은 채로 방심한 상태에서 읽어나가다 보면 <골든 선>의 첫 장면에서 굉장한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골든 선>은 아우구스투스 가문의 창기병 대로우와 라이벌 가문인 벨로나의 창기병 카르누스 가문의 거대하고 잔혹한 우주 대접전의 한가운데서 시작된다.
이 전투는 대로우의 참패로 끝이 나고, 전투에서 대패한 대로우는 방패막이었던 아우구스투스 가문에서 쫓겨나 벨로나 가문으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된다. 정치적 방패막을 잃자마자 목숨의 위협을 받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또한 이 전투가 서로의 가문을 건 마지막 최후의 전투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는 게임에 불과했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전투 게임에서 833명의 목숨이 우주로 흩뿌려졌다며 자책하는 대로우의 내면 서술에서 도달해서야 독자는 소사이어티의 잔혹한 권력 다툼의 면모와, 최상위계층인 골드들의 오만한 권위의식과 권력 유지를 위한 무자비한 생명 경시의 태도를 실감하게 된다.
이에 대로우는 정의의 검을 들고 골드들을 처단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내전의 길로 인도한다. 악마끼리 싸움을 붙일 물꼬를 트는 주인공이라니 이 영웅의 이야기가 얼마나 독특한 전개를 띄게 될지 기대감으로 부푸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대로우는 골드의 권력에 의해 위기에 처하고, 또 구해지며, 대로우를 골드 컬러로 만들어준 저항단체와의 정치적 갈등으로 또 다시 신념과 긍지를 잃고 혼란한 채로 자폭테러를 감행하려한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대로우는 골드들의 소사이어티의 붕괴의 틈새를 알아챈다. 새로운 전법, 즉 '폭탄들이나 음모, 또는 혁명과도 전혀 상관 없는' 돌파구를 찾아낸 것이다.
대로우 자신이 권력의 희생양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배제를 통해 존재가 말살 당할 때 얼마나 하찮은 존재로 전락할 수 있는지 깨달은 후에야 보이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최고 권력자의 소맷단까지 도달했을 때 주어지는 힘이란 우라지게도 어마무시하다. 그리고 그 힘은 조금도 내 것이 아니다." 라는 깨달음의 대사는 독자에게도 제법 묵직한 타격을 남긴다.
함선 안 방을 장식한 조각화를 보며 "이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자신들이 역사의 일부라고 느끼기위해서는 이렇게까지 노력하면서 미래의 한 조각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는 대사 역시 대로우의 신념의 지향점을 보는 동시에 권력자들은 사회의 혁신을 절대 꿈꾸지 않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최소한으로 사회를 굴러가게 유지시키는 데나 더 힘쓴다는 어떤 진실의 조각을 엿보게 해주는 느낌을 준다.
이쯤되면 <골든 선>은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종의 SF 정치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한정짓기에는 매력이 너무나 풍부해 적합하지 않은 작품이다.
서사는 철처럼 단단하고 날카로우며, 캐릭터의 대사에서는 저마다의 인생의 지향점에 대한 고뇌와 사회에 대한 통찰에서 나온 인간적인 연민과 유머가 흘러넘친다. 그리고 이 개성 넘치는 소설은 한 목소리로 외친다.
우리의 사회는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배제시키고 말살하기 위해 탄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렇듯 대로우의 처절한 여정은 2권의 결말에서 또 한 번 엄청난 반전의 쾌감을 선사하며 마무리 되는데 3권으로 이어질 <골든 선>의 내용과 결말은 또 어떤 전개일지 궁금해 미치겠다.
게다가 번역된 문장은 원문의 스피드를 느낄 수 있을만큼 통일된 어조를 잘 살려내 읽는 내내 신이 났고, 책의 글씨 크기와 손에 잡히는 느낌, 종이의 배경색도 눈이 덜 아파서 좋았다.
내 취향으로는 표지가 베스트라고 하기엔 어렵지만 대로우의 처절한 이미지를 잘 살리는 편이라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덧붙여 서평을 위해 <골든 선> 1권 증정에서 2권까지 확대 증정해 준 황금가지 출판사의 현명하고 세심한 배려에 깊이 감사를 느낀다.
전작인 <레드 라이징>을 읽으며 <골든 선> 3권을 기다리는 연말이 될 것 같다. 추운 겨울, 피어스 브라운의 SF 소설 <골든 선>을 읽으며 후끈해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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