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김가지의 『서른의 친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어른의 허기를 다룬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관계 속에 놓이는 듯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나눌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각자의 삶이 바빠지는 동안 친구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난다. 문제는 그 빈자리가 생각보다 늦게, 그리고 크게 찾아온다는 점이다. 곁에 사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마음 한쪽이 비어 있는 듯한 감각. 『서른의 친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김가지의 『서른의 친구』 속 은아는 회사에서 대리로 일한다. 사회적 자리는 조금씩 올라갔지만, 관계는 점점 납작해졌고 마음에는 허기만 남았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은 대학과 취업, 결혼이라는 통과의례 속에서 멀어졌고, 대학 친구와 회사 동료와의 관계도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은아는 외로우면서도 선뜻 누군가를 마음에 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도 은아는 그 허기 앞에 그대로 주저앉지 않는다. 아주 서툴고 조심스럽게, 다시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다.
김가지의 『서른의 친구』는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사람이 오히려 친구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를 보여준다. 외로움을 해결해 줄 사람을 찾는 마음은 관계를 더 무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혼자도 괜찮은 사람은 상대에게 부담을 덜 주고, 그래서 관계가 자연스럽게 깊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여기에는 원하는 마음이 클수록 오히려 원하는 대상에서 멀어지는 심리학의 역설이 깔려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심리학의 역설이란, 원하는 마음이 클수록 오히려 원하는 대상에서 멀어지는 현상을 뜻한다.
이런 현상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일이다. 작품 속 은아는 그래서 너무나 쉽게 독자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게 만든다. 이유도 없이 멀어진 어린 시절의 친구, 대학과 사회인 사이에서 만난 이의 이후 상황에 따른 관계의 위계 형성, 직장 내에서의 공적인 상하 관계 및 경쟁 관계에 놓인 눈치 게임 속에서 친구라는 단어는 가장 먼저 힘을 잃어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심히 앞을 향해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옆을 돌아봤을 때 느끼는 공허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그제야 우리는 친구가 단순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한 시절의 나를 함께 살아낸 존재였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한때 당연했던 관계 역시 쉽게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스스로 관계를 되돌리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뒤라는 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병원을 찾고, 누군가는 의도적인 행동을 시도하며, 또 누군가는 체념에 가까운 받아들임을 선택한다. 『서른의 친구』 속 은아의 선택도 그 갈림길 위에 놓여 있다.
은아의 행동에서 우리가 더욱 공감하게 되는 이유는 가장 먼저 체념하기 때문이다. 혼자는 무섭지만,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행위는 더 무섭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나이이기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런 시기에 그녀가 가장 쉬운 길을 버리고 무엇인가를 시도하기 위하여 조언을 구하는 장면이다. 과거와 달리 그녀의 조언자는 바로 AI였다. AI는 일반적인 내용을 안내해 주지만 그 내용은 생각보다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AI의 조언을 기계적으로 넘기지 않고 마음에 새기고 하나씩 시도하기 시작한다.
아마 이후 은아가 AI의 조언에 따라 행동하자마자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이 책은 그저 그런 자기 계발서 같은 만화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부분을 매우 사실적으로 다룬다. 첫 시도부터 은아의 기대를 무참히 어긋나게 만든다.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와는 가치관의 차이가 너무 컸고, 취미 모임조차 첫 시도만으로는 다음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처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외로움에 사무친 그녀는 다음 시도를 한다. 행동은 적극적이지만,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소극적인 자세로.
이번에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독서와 관련된 취미 모임에 참여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또 다른 복병을 만나 모임 참여를 고민한다. 그러나 이 시기 모임원들에게 혼자만의 여행을 추천받고, 그녀는 복잡한 마음을 이끈 채 그야말로 계획도 없이 나 홀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문제점, 곧 심리학에서 말하는 역설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다음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이 부분은 이론적으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은아가 체험을 통해 다음 첫걸음을 떼어낸다는 점에서 흔하면서도 식상하지 않게 마음을 흔든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이 책이 말하는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방법이 단순히 관계를 만드는 데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더 근본적인 것은 자기 안의 기준점이다. 자기 안에 설자리가 없는 상태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형성하더라도 결국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작품은 은아의 심리적 갈등을 통해 보여준다. 관계가 끝난 이유를 악인 하나로 돌리지 않으면서, 앞에서 말한 심리학의 역설은 이 지점에서 완성된다. 스무 살의 우정은 시간이 많아서 만들어지고, 서른의 우정은 혼자 설 수 있는 사람끼리 만들어진다는 듯이.
평범한 내용으로 식상해질 수 있는 이 만화가 자기 계발서식의 일반화로 전락하지 않는 이유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과장하지 않고 끝까지 현실적으로 끌고 가는 데 있다. 극적인 친구 만들기나 ‘이런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는 식의 쉬운 탈출구를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친구를 만드는 방법론적 만화라기보다, 관계를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에게 건네는 작은 제안처럼 다가온다. 마음의 허기는 하루아침에 채워지지 않지만, 적어도 다시 사람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딜 수는 있다는 제안 말이다.
김가지의 『서른의 친구』는 특별한 사건보다 익숙한 마음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그래서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서른 이후의 관계 앞에서 한 번쯤 멈칫했던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은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어른의 허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책은 그 허기를 외면하지 않고, 아주 작은 시도부터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다고 조용히 말해준다. 관계의 고통에서 물러나 고독 속에 오래 머물러본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런 일상적인 만화에서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