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
박민경의 『랠리』는 관계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관계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 방향에서 보여주는 소설집에 가깝다. 가족과 연인, 이웃과 타인,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까지 작품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된다. 그리고 그 연결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삶에 흔적을 남긴다. 다정한 돌봄도, 상실도, 불안도, 원치 않는 응답도 모두 관계의 한 형태로 되돌아온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묻는다. 당신은 온전히 혼자라고 생각하는가.
박민경의 『랠리』는 아홉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에서는 아버지와 딸이 돌봄의 관계를 주고받고, 「스위트 홈」에서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병든 어머니를 돌보는 문영의 삶이 흔들린다. 「별개의 문제」에서는 피자집을 운영하는 부부가 악성 리뷰와 임신, 비 오는 밤의 사건 속으로 밀려가고, 「살아 있는 당신의 밤」에서는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연인의 흔적이 현재의 삶으로 되돌아온다. 각각의 이야기는 다른 사건을 다루지만, 모두 누군가와 이어지고 다시 반응을 받는 순간을 향해 간다.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는 단절이다. 불편한 관계보다는 생산적인 혼자가 낫다는 말은 이미 자기 계발 관련 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박민경은 『랠리』의 아홉 편의 단편에서 정반대의 말을 한다.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시대에 그녀는 삶이란 애초에 혼자 치를 수 없는 경기라고 말한다. 인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에게 공을 보내고, 또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날아온 공을 받아내며 살아간다. 이를 위해 그녀는 ‘랠리’라는 단어를 여러 방향과 언어로 반복해 보여준다.
그녀가 말하는 랠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탁구나 테니스처럼 서로 주고받는 운동에서 나온 단어인 랠리는 누군가와 무언가를 주고받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삶에서의 랠리는 스포츠 경기와 목적도 결론도 다르다. 경기에서는 점수와 승패를 향해 가지만, 인생에 랠리는 살아 있는 한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계속된다. 이때 돌아오는 응답은 반드시 다정하거나 올바른 형태만은 아니다. 돌봄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상실이나 불안, 책임, 공포의 형태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 목적은 더 나은 삶이고, 끝은 승리가 아니라 죽음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짧고 날카로워진 현대에서 제대로 된 타인과의 주고받음은 과연 가능할까. 박민경은 이에 대한 답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아홉 편의 단편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어서, 어렵게만 느껴지던 관계의 주고받음도 조금 더 가까운 문제로 다가온다. 그들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흔들리고 버티며 하루를 통과하는 사람들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소설집은 어떤 방식으로 관계의 랠리를 보여주고 있을까.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두 작품은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와 「스위트 홈」이었다. 두 작품은 모두 가족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관계를 바라보는 방향은 전혀 다르다.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가 돌봄과 애정을 통해 이어지는 가족의 랠리를 보여준다면, 「스위트 홈」은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가족이라는 연결의 무게와 공포를 보여준다. 같은 가족을 말하면서도 한쪽은 살아가게 만드는 힘을, 다른 한쪽은 버티게 만드는 무게를 드러낸다. 먼저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를 살펴보자.
「괴력문정 다마고치」에서 문정은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어린 시절 자신의 자랑이었던 검은 띠와 힘을 스스로 봉인한다.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녀는 꾸준히 무언가를 포기하며 사회에 자신을 맞춘다. 작품은 외부와 연결되기 위해 우리는 대체 무엇을 잃어야 하는가라는 씁쓸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 질문이 무겁게 내려앉을 무렵, 문정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는 특별히 잘난 사람도, 삶을 그럴듯하게 꾸려낸 사람도 아니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관계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주고받는지를 일상 속에서 보여준다.
문정과 아버지 장원의 관계는 얼핏 보면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오며 이루어지는 가족의 화해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을 눈물겨운 재회의 장면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문정의 검은 띠와 장원의 기라는 서로 다른 힘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서로를 관찰하고 견디는 일상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를 먹이고, 감시하고, 귀찮아하면서도 결국 상대의 삶이 조금 더 윤택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든다. 그래서 이 관계는 강해진다는 것이 혼자 버티는 일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돌볼 수 있게 되는 일인지 묻게 만든다.
이처럼 가족이 서로의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드는 관계로 그려지는 작품이 있는 반면, 철저히 마이너스적인 가족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바로 제목과는 지독할 만큼 동떨어진 작품, 「스위트홈」이다. 「스위트홈」에서 주원은 알코올중독자인 엄마와 일찍 성에 눈뜬 여동생과 함께 지옥 같은 집에서 살다 어느 날 몰래 집을 나와 호텔 베이커리에 취업한다. 그곳에서 담백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그녀는 언제나 집안의 어둠이 끈적이는 손이 자신의 머리채를 끌고 갈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
어느 날 동생이 찾아오면서 그녀의 가족은 다시 주원의 삶에 침입한다. 이미 집을 떠났음에도 주원은 가족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니라, 잠시 거리를 확보했을 뿐이었다. 「스위트홈」의 가족은 서로를 윤택하게 만드는 관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계속 끌어내리는 부채의 형태로 작동한다. 주원의 마지막 선택은 그래서 단순한 결정이 아니라, 더는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지막 발버둥에 가깝다. 「괴력문정 다마고치」의 가족이 서로를 회복시키는 긍정의 관계라면, 「스위트홈」의 가족은 한 사람의 삶을 끝없이 갉아먹는 부정의 관계이다.
박민경의 『랠리』 아홉 편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의 유무가 아니라 응답의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건넨 말과 행동은 언제나 예상한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돌봄은 부담이 되고, 사랑은 기억으로 남으며, 사소한 반응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흔들기도 한다. 이 어긋난 응답들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밀어내고 붙잡고, 외면하면서도 끝내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므로 『랠리』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온전히 혼자라고 생각하는가. 이 책은 그 질문 앞에서 인간이 관계 밖으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