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내털리 호지스의 『엇박자의 마디』는 언어로 연주하는 음악 에세이다. 저자는 바이올리니스트였으나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작가로 전향한 인물이다. 이 책은 그녀가 왜 사랑하는 연주를 내려놓아야 했는지, 그리고 직업인으로서의 음악은 포기했지만 오히려 일상에서 더 가깝게 음악을 이어갔는지를 그린 작품이다. 다만 이 모든 과정을 감성에 기대지 않고 철저히 과학의 언어로 분해해 증명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글자를 따라가기보다 감각을 따라 읽을 때 더 많은 것이 드러나는 그녀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언어로 연주하는 음악 에세이 『엇박자의 마디』는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 내털리 호지스의 음악 인생 이야기이다. 집안 형편 때문에 바이올린을 그만둬야 했던 엄마의 영향으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그러나 무대공포증을 이기지 못해 결국 연주를 내려놓았고 한동안 음악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바이올린을 잡는다. 이 모든 과정을 감성이 아니라 인지과학, 음악학, 현상학이 뒤섞인 시선으로 분석하며, 자신의 삶에서 엇박자가 난 순간들을 어떻게 넘어서려 했는지를 그렸다.
내털리 호지스의 『엇박자의 마디』라는 제목을 풀어보면, ‘엇박자’는 고통의 형태이고 ‘마디’는 그 고통이 드러나는 순간이자 단위를 뜻한다. 즉 리듬이 삐끗하는 순간, 정박에서 살짝 벗어나는 균열의 지점에서 다가오는 공포를 어떻게 자기 리듬으로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양자역학과 뇌과학을 도입해 자신을 철저히 객관적으로 분석한다. 특히 긴장으로 인한 실수, 혼자 해내야 하는 즉흥연주, 사전 연습 없이 타인과 함께하는 즉흥연주에 대한 분석이 두드러진다. 그럼 이제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실수에 대한 부분이다. 그녀는 더 잘하려고 하면 반드시 실수로 이어져 연주를 망쳤다. 이를 시간 개념과 연결하는데, 다른 말로 하면 몰입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음악의 시간에 몰입하면 손과 몸, 연주 실력, 박자 감각이 조화를 이뤄 화성이 되지만, 외부가 인식되는 자아의 시간으로 넘어오는 순간 불협화음, 즉 실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긴장’이라는 말 한마디로 넘기지만, 그녀는 이를 철저히 시간 감각의 철학으로 풀어낸다.
또한 시간의 간극으로 인해 실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간의 간극은 해야 할 일을 제때 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외부를 인식하는 동시에 박자감을 놓치는 순간을 의미한다. 반드시 한 박자 뒤에 활을 켤 손이 움직여야 하지만, 긴장으로 인해 그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머릿속에 단어는 떠오르는데 입으로 바로 말이 나오지 않는 순간과 비슷하다. 이런 두 가지 이유로 결국 그녀는 활을 손에서 내려놓게 된다.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 즉흥연주를 권한다. 악보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성격상 즉흥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그녀는 즉흥연주의 대가인 피아니스트 가브리엘라 몬테로를 뇌과학과 물리학으로 분석하기 시작한다. 과연 즉흥연주가 정말 즉흥일까? 그녀는 그 답을 양자물리학의 경로 적분에서 찾는다. 즉흥연주에서 다음 음을 선택하는 것은 입자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확률, 즉 본능적으로 ‘가능한 경로를 찾는 능력과 같다고 본다.
결국 그녀는 모든 두려움을 잊고 상대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닌 둘이서 하는 즉흥 연주 공연을 한다. 이를 위하여 그녀는 춤을 배운다. 그 과정에서 파트너와 물리적 접촉을 하지 않고고 직감적으로 상대의 움직임에 맞추는 연습을 한다. 이를 저자는 동시성과 얽힘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동시성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몸과 리듬을 유지하면서도 같은 시간의 흐름 안에 들어가는 상태를 의미한다. 얽힘은 물리적으로 접촉하지 않아도, 상대의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해 예측 없이 맞물리는 조응의 순간을 말한다.
즉흥 연주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성립한다. 상대를 통제하지 않고, 자신을 의식하지 않으며, 두 사람이 하나의 리듬으로 묶이는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이를 통해 연주가 혼자 하는 기술이 아니라 둘이서 만들어내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모든 과정을 인지심리학과 물리학으로 분석해가며 결국 자신의 무대 공포증을 이기고, 무려 둘이 함께하는 즉흥 연주 공연을 완수한다. 직업으로서의 음악은 포기해야 했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음악을 일상으로 다시 들인 순간이었다.
무대 공포증을 이기지 못하는 순간은 그녀가 단순히 바이올린을 포기하는 순간이 아니라, 삶 전체의 리듬이 무너지는 첫 큰 마디였다. 그 엇박자의 마디를 경험한 그녀는 끊임없이 그 지점을 들여다본다. 몸의 리듬이 끊기고, 마음의 리듬이 비틀리고, 세계와 이어지는 템포가 단절되던 그 순간들을. 일반적으로 이런 삼단 붕괴가 일어나면 사람은 자신만의 동굴에 갇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이겨낼 원리를 찾기 위해 끝없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그녀가 되찾고 싶었던 것은 음악이 아니라, 자기 삶의 리듬이었다. 무대 위에서 계속 삐끗거리던 시간은 단지 연주의 실패가 아니라 자신이 세계와 어긋나는 감각의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두려움이 솟구치는 순간을 분석하고, 몸이 틀어지는 원인을 추적하고, 다시 맞물릴 수 있는 리듬을 찾기 위해 끝없이 반복한다. 이 과정 자체가 그녀에게는 음악이었고,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지 음악 이야기가 아니라, 삶이 어긋나는 순간을 어떻게 다시 붙잡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언어로 연주하는 음악 에세이 내털리 호지스의 『엇박자의 마디』는 물리학과 연결되어 있어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핵심 원리만 도입했기 때문에 오히려 전체 글을 따라가는 데 도움을 준다. 조금 더 쉽게 읽는 팁을 말하자면, 그녀의 글은 문장이라기보다 악기에 가깝고, 음파처럼 먼저 울린 뒤 의미가 따라온다. 그러니 단어 하나하나의 뜻에 집중하기보다 감각으로 읽으면, 그녀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훨씬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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