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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마님의 서재
  •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
  • 김나현
  • 16,200원 (10%900)
  • 2025-10-15
  • : 545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김나현의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는 타인이 쓴 대본 위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우리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정말 자신 있게 자신의 삶에서 완벽하게 스스로 시나리오 작가, 감독, 주인공을 모두 소화하고 있을까? 얕게 생각한다면 여기에 'Yes'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책을 읽은 후에는 아무도 여기에 'Yes'라는 대답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표지의 귀여움과는 달리 마지막 반전에서 뒤통수를 맞으면서 독자는 자신의 인생을 리와인드 하게 된다.


타인이 쓴 대본 위의 삶을 그린 김나현의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 줄거리는 여배우가 되어 첫 주연을 맡은 나을에게 학폭 증언 사례가 터지면서 시작한다. 학창 시절 나을은 아버지가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심한 괴롭힘을 당한다. 이런 그녀 앞에 시우라는 예쁜 아이가 전학을 오게 되고 서로 친하게 지낸다. 둘의 엄마인 소영과 하영 또한 학창 시절부터 친구이다. 그러나 나을의 잘못에 대한 벌을 시우가 받으며 시우는 눈앞에서 사라진다. 각자의 삶에 크나큰 비밀을 품고 있는 그녀들의 얽힌 인생은 결말에서 크나큰 반전을 이룬다.



타인이 쓴 대본 위의 삶을 그린 김나현의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는 우리에게 살아간다는 건 연기하는 일이고, 연기하는 동안 우리는 그 대본의 일부가 된다고 말한다. 이를 말하기 위하여 전면에 나을을 내세운 뒤, 그녀의 엄마 소영과 친구 하영, 그리고 하영의 딸 시우의 독백으로 이어진다. 이 독백의 묘미는 모두 다른 나이 대의 위치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소설은 네 명의 인물을 등장시키지만, 결국 하나의 인격이 시대와 이름을 바꿔가며 스스로를 연기하는 이야기처럼 읽힌다.



그럼 먼저 등장인물들의 역할부터 살펴보자. 모든 사건의 기원인 하영과 소영은 학창 시절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났지만 서로에게 의지하고 집착하는 관계가 된다. 처음엔 완벽하게 두 명의 인물로 느껴지지만 페이지가 넘어가고 각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이들은 외형만 다를 뿐, 한 인간의 내면에서 충돌하는 통제하려는 나와 보호받고 싶은 나로서의 두 욕망의 충돌로 읽힌다. 소영은 자기 불안을 다스리려는 방식으로 타인을 통제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채 살아간다.



하영의 경우는 더욱 복잡하다. 극단적인 두려움으로 몰린 상태에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소영에게 의지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딸을 살리기 위한 강한 엄마가 되기 위하여 타인이 쓴 대본 위의 삶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려고 작정한다. 작품 속 주인공이 손가락을 하나 잘라낸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완벽한 그녀가 되기 위하여 자신도 동일한 행동을 할 정도로. 이런 그녀의 행위는 사랑을 통해 자신의 것을 지키면서 구원을 얻기 위한 욕망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비현실적인 부분인 고등학교 3학년 때 똑같이 임신하여 같은 나이의 딸을 낳는 설정은 단순히 개연성이 없다고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비개연성의 파편들이 오히려 하나의 인물이라는 해석으로 수렴된다. 이는 표지에서도 느낄 수 있다. 서로의 얼굴이 겹쳐 통과되어 하나가 되는 장면에서. 결국 소영과 하영은 자아의 욕망이 서로를 미러링 하며 부딪히는 내면의 전투가 아닐까? 그렇기에 서로를 소름 끼쳐 하면서도 결코 떨어질 수 없으며 상대의 소름 끼치는 실체를 알아도 같이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다음으로 나을과 시우는 모성 세대가 남긴 내면의 분열을 각자의 방식으로 반복하고 정화하는 인물이다. 이 둘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 겪는 경험은 그녀들의 어머니인 소영과 하영을 저절로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시우의 경우는 시나리오 속의 여주인공의 삶을 훔친 엄마 하영의 분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타인의 시선 속 나’로 살아간다. 그러나 나을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삶에서 시련이 닥쳐오면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타인의 시선, 시간의 통증을 견디며 자기 리듬으로 살아가는 자아로 남는다.



사실 작품에서 가장 많은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가진 이는 나을이다. 그녀의 위치였던 학폭 사건의 희생자도, 스타의 자리도, 사랑마저도 모두 시우에게 넘어갔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을은 끝내 타인의 서사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는다. 남의 시선이, 남의 말이, 남의 행동이 규정한 각본 위에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대에 남아 있는 자체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한다. 아마 대부분 이런 상황에 닥치면 "그래서 어쩌라고?"이지만 나을이 보여준 것은 "그럼에도 산다"였다.



이것이 바로 이전 세대가 서로를 통제하고 복제하며 누가 더 주인공인가를 다퉜다면 나을은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선언한 셈이다. 그리고 이 선언이 바로 타인의 시나리오에서의 삶을 벗어난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게 너에게 일어날 일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녀는 자신의 불행에도 이런 초연함을 가지고 묵묵히 자신의 시간을 견뎌낸다. 플라톤적 수용의 경지를 넘어, 존재의 시간성을 인정하며. 역설적으로, 그녀가 타인의 각본을 인정한 순간 비로소 자기 각본이 생겨버린 순간인 셈이었다.


결국 소영은 통제와 복제, 자기 파괴로, 하영은 믿음과 몰입, 자기 상실로, 시우는 욕망과 회복, 자기 초월로, 나을은 수용과 지속, 자기 확립으로. 결국 이 넷을 한 인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허구의 과장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이름을 바꿔가며, 타인의 시나리오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사랑하고, 통제하고, 무너지고, 견디며 같은 욕망을 반복한다. 소영이 하영이고, 하영이 시우이며, 시우가 나을인 것은 이들이 닮아서가 아니라, 인간이 원래 그런 순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나현의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의 남의 시나리오에 따른 삶에 구속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타인이 건네는 격려 한 마디에 사로잡힘마저도 엄밀히 말하면 타인의 시나리오로 둔갑하게 됨을 책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처음의 질문을 다시 한번 물어보려고 한다. 당신은 온전히 자신만의 시나리오로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여기에 정확하게 답을 할 수 없는 이라면 타인이 쓴 대본 위의 삶을 그린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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