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번에 을유문화사에서 인간 심연의 밑바닥을 훑은 문학,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을 출간했다. 포는 탐정 문학의 기초를 세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여러 겹의 인간 심리를 벗겨 가장 안쪽의 추악함을 드러내지만 결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 추악함을 토대로 가장 인간적인 이해를 끌어내며 읽는 이에게 소름 끼치는 공포와 함께 묘한 따스함을 남긴다. 덕분에 그의 단편들은 공포와 연민, 냉철한 추리와 시적 광휘가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고전으로 자리한다.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은 총 열세 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이성의 미스터리, 곧 추리의 묘미가 살아 있는 『도둑맞은 편지』, 『모르그가 살인 사건』, 『네가 바로 범인이다』, 『황금충』이고, 다른 하나는 무의식의 심연을 파고든 심리·광기·공포의 작품들이다. 후자에 속한 이야기들은 괴이한 존재가 튀어나와 놀라게 하기보다, 인간 심연의 밑바닥을 훑은 문학이 주는 섬뜩한 공포를 전한다. 이를 두고 샤를 보들레르는 자신이 쓰고 싶었던 모든 것이 이미 포의 작품 속에 있다고 고백했다.
을유문화사에서 출간한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은 그동안 포의 작품을 대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각종 은유이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해 이슬람·유대교의 신, 문화적 양식, 다른 문학에서의 인용 등 폭넓은 지식이 필요하다. 보통 작품 전체의 해설은 있으나 이런 세세한 주석이 빠진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뒷면에 꼼꼼하게 첨부되어 있어 방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덕분에 초심자도 포의 세계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지난번에 읽은 책에서 소름 끼치는 복수극을 그린 『아몬티야도 술통』을 후기로 다뤘기에 이번에는 『리게이아』의 초현실적 열병과 『모르그가 살인 사건』의 이성적 해부를 다루면서, 포가 어떻게 인간의 양 극단을 끌어올렸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극점을 비춘다. 하나는 죽음과 집착이 빚는 몽환적 열기를, 다른 하나는 차갑게 사건을 해부하는 이성의 칼날을 보여준다. 포는 이처럼 꿈과 논리, 광기와 추리를 넘나들며 인간이라는 미로를 끝없이 탐색한다.
먼저 『리게이아』부터 살펴보자. 이 작품은 광기와 집착, 부활과 영혼을 둘러싼 초월적 이미지가 핵심이며 문체가 유려해 꿈결 같은 환각을 느끼게 한다. 리게이아는 그리스 신화 속 세이렌 세 자매 중 한 명의 이름으로, 세이렌은 바다에서 뱃사람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노래를 부르는 존재다. 이름의 어원은 맑고 울림 좋은을 뜻하는 ligys와 여성을 뜻하는 aia가 합쳐진 것으로, 죽음을 부르는 매혹적 노래와 영혼을 사로잡는 음성이 이미 제목 〈 Ligeia 〉에 겹쳐 있다.
리게이아의 줄거리는 주인공인 나의 아내인 리게이아의 죽음을 겪은 후 그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방탕한 생활을 하던 중 로위나와 재혼을 한다. 본처의 눈동자는 검은색이며 재혼한 로위나의 눈동자는 파란색으로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인지 나는 로위나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그에게 벌을 주려는 듯, 로위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앓아누워 숨이 붙었다 끊어졌다를 반복한다. 이렇게 아픈 아내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여전히 죽어서 세상에 없어진 전처만을 떠올리고 있는데 로위나가 눈을 뜬다. 검은색 눈동자로.
사실 스토리 자체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까지 주인공의 끝없는 애착과 리게이아의 삶을 향한 집요한 집착이 끔찍하게 묘사된다. 한 생명체가 삶과 죽음을 오가는 경계와 그때의 주인공 상태는 이 모든 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모호하게 만들어, 환상 문학의 선구자라는 타이틀의 의미를 독자로 하여금 실감하게 한다. 초현실적 열병처럼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흔들며 드러나는 죽음과 부활의 집착은 겉으로는 병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우리 마음 밑바닥에 오래 잠든 본능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모르그가 살인 사건의 줄거리는 밀실에서 끔찍한 이중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경찰이 출동한다. 여러 목격자들의 말을 들으니 한 명의 프랑스인과 국적을 알 수 없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단서가 없다. 사람들과 경찰이 출입구를 막고 있었던 상황이기에 범인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이때 뒤팽이 경찰서장의 허락을 얻어 사건 현장을 살펴본 후 가볍게 범인을 찾아낸다. 마치 셜록 홈스처럼.
이 작품은 뒤팽의 냉철한 추리가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며 포의 첫 탐정소설이다. 흔히 『모르그가 살인 사건』을 현대 추리 소설의 출발점으로 부르는데 사건의 정교한 범행 동기와 치밀한 단서 배치, 그리고 이를 해부하는 뒤팽의 논리 전개까지 후대 탐정물이 따르는 거의 모든 기본 요소가 이미 이 한 편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관찰과 이성적 추론을 통해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이라는 핵심 구조는 셜록 홈스에서 아가사 크리스티까지 이어지는 모든 고전 추리의 뼈대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작품에는 경찰과 뒤팽, 범인을 잡는 핵심 인물 사이에 숨 막히는 추리 대결이 펼쳐진다. 뒤팽은 경찰이 미처 보지 못한 현장의 세세한 단서와 상식을 벗어난 가능성을 차근차근 짚어가며, 단순한 관찰을 치밀한 논리로 엮어 사건의 전모를 밝혀낸다. 특히 범인의 정체가 인간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순간, 추리 과정 자체가 하나의 서스펜스로 작동하며 독자를 끝까지 긴장시킨다. 포는 이 작품에서 범죄의 공포보다 이성이 어떻게 진실에 다다르는가라는 지적 쾌감을 중심에 두어 독자들에게도 동일한 전율을 선사한다.
을유문화사에서 출간한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은 인간 심연의 밑바닥을 훑은 문학의 정수다. 앞서 살펴본 『리게이아』의 몽환과 『모르그가 살인 사건』의 냉철한 추리뿐 아니라 『아몬티야도 술통』의 소름 끼치는 복수, 『검은 고양이』와 『고자질하는 심장』의 광기와 죄의식, 저자 자신이 최고의 탐정 소설로 꼽는 『도둑맞은 편지』까지, 포는 이성의 빛과 광기의 어둠을 동시에 끌어올려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 섬뜩하고 매혹적인 세계를 여름의 끝자락에서 꼭 느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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