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샘터에서 출간한 가족 에세이 김이경의 『다음 생엔 무조건 엄마 편』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날아든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저자의 몸부림을 꾸밈없는 날 것으로 적은 작품이다. 지병이나 사고가 아닌 스스로 생명을 끊어 어느 누구보다 갑작스러운 상실을 맞이한 저자는 상실의 슬픔뿐만 아니라 그 이유까지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런 그녀의 솔직하고 단정한 언어는 어느 순간 독자에게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녀의 슬픔 너머의 일상을 담은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슬픔 너머의 일상을 담은 김이경의 『다음 생엔 무조건 엄마 편』은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나 서서히 그리움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내용은 애도하다–추억하다–살아가다의 세 부분으로 전개된다. 첫 번째에서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장례의 혼란 그리고 그리움이, 두 번째에서는 어린 시절의 장면과 집 안의 냄새, 식탁의 기억처럼 손이 닿는 흔적들이 불려 나온다. 마지막에는 홀로 남은 아버지와의 시간이 이어지며, 슬픔 이후에도 삶은 매일의 리듬으로 계속됨을 전한다.
김이경의 『다음 생엔 무조건 엄마 편』은 감성 에세이가 아니라 슬픔 너머의 일상을 담은 가족 에세이다. 상실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저자 한 사람에게서 그치지 않고 가족 전체의 변화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 앞만 보던 가족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각자의 삶을 돌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결국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극복하는 길을 택한다. 저자는 이 과정을 숨겨 둔 동전을 꺼내듯, 엄마와의 추억을 하나씩 펼쳐 절제된 언어로 담담히 기록한다. 독자는 그 차분한 기록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절절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이 흔한 감성 에세이와 달리 특유의 무게를 지니는 또 다른 까닭은 눈물의 서사보다 상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 죽음을 똑바로 볼수록 삶이 선명해진다는 말이 이 책의 중심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녀는 절망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즉, 상실을 외면하지 않을 때 시리고 공허한 마음속 빛깔이 더욱 선명해진다는 것을 그녀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하였다. 이는 이 작품이 저자의 감정 소비가 아니라 독자의 감정 사유를 하게 한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깊은 감정을 기록하면서도 이를 거창한 철학으로 포장하지 않는 데 있다. 오히려 일상의 호흡이 스민 문장은 신파가 아닌 담백한 울림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마치 이불을 털고 창을 열어 바람을 들이듯 사소한 추억을 일상처럼 도란도란 풀어낸다. 그 흐름은 애도의 시간이 삶을 이끄는 힘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우며, 독자가 흔들리면서도 과장된 감정에 휩쓸리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삶과 죽음을 함께 바라보게 되는 차분한 울림이 오래 남아 있다.
저자는 서서히 변화하는 미묘한 감정의 결을 억지로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비추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화장을 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은 글이 감정에 파묻히지 않도록 하여 읽는 이의 마음에 오랜 파문을 남긴다. 독자는 그 파문 속에서 제 각자의 이름을 조용히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이미 그 이름 속 주인공을 잃은 이는 공감을, 아직 가진 이는 소중함을 깨우치는 계기의 순간을. 결국 사랑은 종종 늦게 도착하지만 그 늦음도 사랑의 일부임을 작가는 반복해서 말한다.
“엄마, 다음 생엔 무조건 엄마 편이 될게요.”라는 고백은 제목을 넘어 책 전체의 기조를 담고 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잃은 뒤 그녀는 이유를 찾기 위해 헤매지만 그 여정은 단순한 고통의 서술에 머물지 않는다. 과거를 더듬는 순간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깃든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감정, 감사와 미안함이 교차한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우친다. 그 깨우침은 살아 있는 아버지에게로 시선을 옮기게 하고, 상실의 고통이 차츰 풀려나가고 있음을 상징한다.
그녀의 시선이 옮겨간 아버지의 시간은 이 책의 또 다른 축이다. 남겨진 사람의 식탁, 고장 난 라디오, 빈 의자 같은 사소한 사물들이 아내를 잃은 남편의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엄마를 잃은 자녀의 마음과는 또 다른 의미를 독자에게 말하고 있다. 아버지가 상실을 극복해 가는 과정은 단순히 배우자를 상실한 것이 아니라 노년의 고독을 함께 그리고 있어 훨씬 복잡하게 다가온다. 딸보다 훨씬 고요하지만 아내의 부재를 견디는 과정이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은 함께 늙어간다는 말의 책임이 한층 더 얹혀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시간은 결국 그녀와 가족들을 다시 일상의 자리로 이끌었다. 엄마의 부재가 남긴 빈 공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도, 그녀는 남겨진 사람들과 함께 밥을 짓고 계절이 바뀌는 길을 걸으며 애도의 무게 속에서도 살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으려는 발걸음을 이어 갔다. 그 발걸음은 사랑이 사라지지 않는 방식이자 남은 이들이 서로를 지탱하는 방식이 되었고, 공허함이 아니라 그리움이 남는 길 위에서 매 순간 지금이라는 시간을 새기며 더는 미루지 않겠다는 다짐을 품게 했다.
김이경이 기록한 이야기는 한 가족의 비극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맞이할 이별의 얼굴을 비춘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살아 있는 이와 이미 떠난 이 사이의 간격은 형태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특정한 한 사람의 슬픔을 넘어, 상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사랑을 이어갈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우리 모두에게 던진다. 독자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에겐 그럴듯한 멋진 답이 아닌 하루하루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함께.
가족 에세이인 김이경의 『다음 생엔 무조건 엄마 편』은 애도와 사랑, 후회와 다짐을 다루되 과장하지 않는다. 상실의 그림자 위에 일상의 빛을 조용히 겹쳐 놓고, 삶이 다시 움직이는 소리를 들려주는 슬픔 너머의 일상이다. 이는 우리의 삶에서 통과의례처럼 다가오는 가족의 죽음을 떠올리며 현재에 더욱 집중하게 해준다. 그녀의 진솔한 목소리는 작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남는 위로로 남는다. 부모와의 관계를 돌아보고 싶은 분, 이미 상실의 아픔을 겪었지만 헤어 나오지 못하는 분에게 큰 도움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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