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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마님의 서재
  • 8월의 고쇼 그라운드
  • 마키메 마나부
  • 15,750원 (10%870)
  • 2025-08-22
  • : 1,045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나오키상을 수상한 마키메 마나부의 『8월의 고쇼 그라운드』는 문예출판사에서 출간한 일본 판타지 소설이다. 일반적인 판타지에서 현재 인물이 과거와 미래로 이동하는 설정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과거 인물들이 스스로 현재로 넘어온다. 책 속에는 두 갈래 이야기가 등장한다. 겨울 마라톤에 참여한 여고생과 한여름 야구 경기에 뛰어든 대학생. 얼핏 계절적 대비처럼 보이지만, 두 이야기는 청년과 교토라는 일본의 근간을 매개로 하나로 포개지면서 오히려 더욱 풍성한 서사를 빚어낸다.



마키메 마나부의 8월의 고쇼 그라운드 줄거리는 두 개이다. 첫 번째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내리는 날 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여고생 사오리. 후보 선수였던 그녀는 선배의 사정으로 출전하게 된다. 그녀는 달리는 동안 인도에서 함께 달리는 에도 막부 말기에 활동했던 신센구미들을 보게 된다. 두 번째는 갑자기 친구 다몬의 요청에 의해 야구 경기에 참여하게 된 구치이. 사실 그는 여자친구와 여름 방학을 보내려 했지만 직전에 차여 숨 막히는 더위를 자랑하는 교토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친구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지 못해 야구 경기에 참여한 구치이는 인원이 부족할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는 이들 덕분에 아홉 명을 맞춰 경기를 진행한다. 같은 학교 선배 샤오가 나타나기도 하고, 야구를 구경하던 샤와무라 에이지, 엔도 미요지, 야마시타 세이치까지 갑자기 합류한다. 그러다 야구를 공부하던 중국 유학생 샤오에 의해 이들의 공통점이 드러난다. 바로 2차 세계대전 때 청년이었으며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징병되어 전사했다는 것. 이들은 왜 갑자기 이곳에 나타나 함께 야구를 하게 된 것일까?



문예출판사에서 출간한 일본 판타지 소설 마키메 마나부의 『8월의 고쇼 그라운드』는 제목에서 이미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고쇼는 과거 천황이 살던 황궁과 땅이라는 의미이다. 즉, 작품 명에서 현재 발을 디디고 사는 땅 위에 일본의 천년 고도라고 하는 교토의 천황이 살던 황궁을 얹어 놓았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현대의 평범한 청춘의 장면이 과거 고쇼의 의미, 즉 역사와 권위, 오래된 기억의 무대 위에서 펼쳐짐을 의미한다. 이는 현재의 경기장이 과거의 궁궐과 포개지면서 시간과 기억이 겹쳐지는 판타지적 효과를 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단순히 에도 막부에서 곧바로 현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신센구미는 에도 말기에 정통 사무라이가 아닌 자들로 이루어진 황제 호위 조직이다. 그들이 들던 깃발에는 정성 성(誠)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는 불안정한 위치에 놓인 집단이 스스로를 진심이라는 미덕으로 정당화하려 했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신센구미의 깃발은 권력과 폭력 속에서 ‘진심’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아이러니하게 소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로 등장한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시대적 배경으로 2차 세계대전 말이 등장한다. 일본 야구의 전설이자 메이저리그에서도 눈독을 들였던 사와무라 에이지를 비롯해, 당시 대학생이던 수많은 청년들이 강제 징집으로 원래의 꿈뿐 아니라 삶 자체를 빼앗겼다. 작품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은 몇 명뿐이지만, 그들의 입을 통해 매번 이런 식으로 경기에 참여해 왔던 다른 이들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최소 인원인 아홉 명이 언제나 어떻게든 채워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두 이야기는 에도 막부 시대, 군국주의 시대, 그리고 현대로 이어지는 시간의 층위를 교토 고쇼라는 무대 위에 겹쳐 놓는다. 세 시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청년이며, 열정과 꿈을 품었지만 시대의 폭력에 의해 자유를 빼앗기고 내몰린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결국 작품은 청춘의 빛남과 시대의 폭압이 교차하는 아이러니를 고쇼라는 장소와 야구와 마라톤이라는 경기를 통해 선명히 드러낸다. 그리고 망자들이 청춘의 현장 속에서 함께 숨 쉬는 순간 독자는 단절된 시간을 넘어 이어지는 일본사의 무게를 체감하게 된다.



작품 속에는 한국인 독자에게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바로 8월 15일 종전 다음 날 열리는 오쿠리비다. 소설에서는 이 의식이 2차 세계대전 희생자들의 영혼을 저승으로 보내는 행사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원래 오쿠리비는 본래 오래된 불교·민속 행사로 일본 패전과 직접적 관련은 없다. 단지 날짜가 우연히 겹쳤을 뿐이다. 그러나 그 이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종전 직후의 영령 추모와 겹쳐지금의 의미가 되었다. 이 때문에 작품 전체의 메시지가 오쿠리비 장면에 가려지는 경향이 생긴다.



이 작품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쟁도, 사무라이도 아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가슴속에 열정의 불을 지닌 청춘들이 강제로 삶을 중단당했다는 사실이다. 천황에게 진심을 맹세하고도 일류 사무라이로 인정받지 못했던 청년들 역시 달리고 싶었고, 국가의 징집으로 생명을 빼앗긴 청년들 또한 그저 야구가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들이 원한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비슷한 또래 청춘들이 품는 소망. 즉, 달리고, 던지고, 웃고 싶다는 그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고 끝까지 타오르는 것.



나오키상을 수상한 『8월의 고쇼 그라운드』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판타지적 장치가 전혀 가볍지 않다는 점이었다. 유령처럼 나타나는 과거의 인물들은 단순히 색다른 볼거리가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 온 청춘의 상실을 눈앞에 불러온다. 소설은 교토라는 장소에 역사의 켜를 겹쳐 놓고, 달리기와 야구 같은 평범한 행위를 통해 청춘이 얼마나 보편적이고 동시에 얼마나 쉽게 끊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순간 독자는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경계가 사라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마키메 마나부의 『8월의 고쇼 그라운드』는 특정한 역사와 배경을 넘어 청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시대와 장소가 달라도 달리고 싶고, 공을 던지고 싶고, 웃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다는 것. 이 판타지 소설은 바로 그 단순하고 뜨거운 소망이야말로 가장 오래 살아남는 힘임을 일깨운다. 지금 청춘의 길을 걷고 있는 이도, 이미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며 미소 짓는 이도 모두 기억 속 판타지로 빠진다. 현실에 지쳐 마음속 소망의 불씨가 꺼진 이에게 다시 불을 붙여 주는 세계, 그것이 이 작품이 보여주는 판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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