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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마님의 서재
  • 영혼 없는 작가
  • 다와다 요코
  • 16,200원 (10%900)
  • 2025-08-27
  • : 9,690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엘리 출판사에서 출간한 다와다 요코의 『영혼 없는 작가』는 시간적으로는 일본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으로 떠나 독일에 정착하고 미국에 거주하기까지의 여정을, 정체성적으로는 이방인으로서, 두 나라 언어를 넘나드는 비인간적인 글쓰기의 실험자로서, 그리고 번역가로서의 경험과 사유를 담고 있다. 그녀는 글쓰기와 번역, 현대 사회의 문제의 뿌리, 자신을 ‘영혼 없는 작가’라 부르는 이유를 밝힌다. 비틀린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문장은 언뜻 난해하지만, 곱씹을수록 철학적 공명을 일으켜 강한 공감을 불러낸다.


다와다 요코의 영혼 없는 작가는 총 3부로 되어 있다. 1부에서는 그녀가 겪은 유럽의 첫 이미지가, 2부 부적에서는 그녀가 생각하는 사회적 문제, 글쓰기에 관한 생각과 작가로서의 정체성, 3부 해외의 혀들 그리고 번역에서는 그녀가 생각하는 번역과 번역가의 마음가짐을 그리고 있다. 모든 글에서는 국가와 국가, 의미 언어와 소리글자, 원본 텍스트와 번역 텍스트 사이 경계에서 바라본 시각이 담겨 있으며 이런 내용이 사소한 물건부터 신체를 끌어와 말하고 있다.


다와다 요코의 영혼 없는 작가는 큰 틀에서 보자면 세 가지 축으로 말할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다름의 축, 두 번째는 글쓰기의 축, 세 번째는 번역의 축이다. 이후 그녀의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축으로 통합할 수 있으며 이 세 축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제목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각 축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언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 널리 알려진 그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냈으며 글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넓고 깊게 다루고 있는 첫 번째 다름의 축부터 살펴보자. 



다와다 요코가 발견하는 다름은 겉으로는 사소해 보인다. 그러나 언어의 억양, 단어의 성별, 발음의 중첩 같은 작은 차이 속에는 사고와 문화 전체를 뒤흔드는 균열이 숨어 있다. 그녀는 이 다름을 낯선 타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면서도 동시에 양쪽을 이해하는 이중 언어 사용자로서 더 깊숙이 들여다본다. 이런 다름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세계의 질서를 재구성하며, 다와다의 글쓰기는 바로 이 균열, 그 별것 아닌 듯한 다름에서 출발한다. 이는 작게는 한 사람의 정체성에서부터 넓게는 세계의 문제로까지 파급된다.



필립 K. 딕의 눈동자는 알고 있다(The Eyes have it)에서 딕이 같은 언어 안에서의 오해를 보여줬다면, 다와다는 서로 다른 언어가 뜻밖의 공통점으로 만들어내는 오해를 파고든다. 동일한 발음인 나스(일본 : 가지, 독일 : 축축하게 젖다)에서 오는 오해, 의미를 모르기에 소리만으로 언어를 감각적으로 피부로 느끼는 괴셰넨에서 개인이 느낀 이해 방식에 대하여 언급한다. 그러나 사전 마을 챕터로 옮겨 오면 사회적 언어가 권력의 언어로 변할 때 어떤 작용을 하는지 동화 같은 분위기로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렇게 언어 속에서 발견한 다름은 곧 두 번째 축인 그녀의 글쓰기 방식과 맞닿아 있다. 경계적 삶 속에서 언어의 혼란과 의미 없는 소리를 모국어 화자보다 더 섬세하게 감각한 그녀는 언어를 의미와 소리로 나눈다. 그녀의 글쓰기는 소리에 근거한다. 소리는 단순한 물리적 떨림이기에 비인간적인 것으로 규정되고, 영혼 없는 귀신의 것으로 불린다. 그녀가 스스로를 ‘영혼 없는 작가’라 명명하며, 이런 이유로 비인간적인 글쓰기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제목에는 또 다른 의미가 겹친다. 그녀는 글쓰기를 설명하기 위해 일곱 어머니 이야기를 끌어온다. 사람들은 흔히 태아와 아이를 하나의 생명으로 이어 보며, 그 몸속에 고유한 원본 텍스트가 주어져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텍스트를 담아두는 방을 ‘영혼’이라 부른다. 그러나 다와다는 태아와 아기를 동일한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에 생명의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원본 텍스트 또한 존재할 수 없고, 그 방으로서의 영혼도 없다. 『영혼 없는 작가』라는 제목은 바로 이 부정에서 비롯된다.



일곱 어머니의 비유는 곧 존재의 근원에 대한 그녀의 시선을 보여준다. 궁극적 근원은 '어머니 대지'라는 물리적 모성이며, 인간은 그 위에 언어라는 껍질을 입혀 존재를 기록한다. 그러나 언어로 옮겨지는 순간 존재는 소멸을 향함을 이 과정을 ‘어머니점’에서 설명한다. 마지막 일곱 번째 어머니는 ‘어머니조차없이외로이’인데 존재의 최종 근원이 외로움이며, 언어는 이 외로움에서 태어나고 언어가 떠난 자리에는 다시 외로움만 남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녀에게 글쓰기는 취미나 선택이 아니라 존재론적 필연이다. 



마지막 세 번째 축은 번역가로서의 입장이다. 이때 그녀는 일반 번역가와 달리 경계 위에 선 번역가로 자리한다. 그녀가 말하는 번역은 단순히 한 언어의 의미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행위가 아니다. '이격자' 챕터에서 보여주듯 번역은 보는 것의 해석과 듣는 것의 감각, 즉 즉각적이고 물리적인 침투까지 포함한다. 그녀는 언어를 단순한 개념 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신체 전체로 겪어내는 살아 있는 경험으로 파악한다. 그렇기에 언어는 의미보다 신체의 반응이 먼저 작동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번역자는 여전히 “의미 ↔ 의미”를 기준으로 옮기지만, 원문 화자가 실제로는 “소리 ↔ 몸의 반응”으로 경험한 경우 번역은 어긋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번역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감각까지 완벽히 번역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 지점을 그녀는 “언어의 구멍”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구멍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틈새를 헤집을 수 있는 힘은 그녀 자신이 바로 언어의 경계에 선 사람이기 때문에 생겨난다.


비인간적 글쓰기를 하는 다와다 요코의 『영혼 없는 작가』는 그녀의 정체성, 즉 경계에 선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일상의 사소한 물건과 현상에 대입해 언어적 비틀림으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은 그녀의 언어 코드를 인지하지 못하면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문장을 한 줄씩 해독하며 깨닫는 순간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 몸을 던진 듯한 압도적인 경험이 찾아온다.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에 매혹되기보다 다름·글쓰기·번역의 세 축을 따라가며 스스로 경계에 선 감각을 체험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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