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원작자가 쓴 그림 동화라는 타이틀에 호기심이 생겨 읽어보게 된 제임스 서버의 마지막 꽃이다. 특히 T.S 엘리엇과 E.B 화이트의 극찬이 붙은 책이기에 기대감이 두 배로 치솟았던 책.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두 달이 지난 시점에 출간된 반복된 전쟁을 일으키는 인류의 아이러니를 러프한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단순하게 전쟁 풍자로 인한 음울한 분위기와는 달리 결말은 희망을 말하고 있어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읽기에 좋은 책이다.
제임스 서버의 그림 동화 마지막 꽃은 제12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시작한다. 전쟁이 발발한 후 문명의 붕괴가 일어났다. 세상의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건물, 자연, 예술 작품도. 인간의 위치는 벌레만도 못하게 되었고 개들은 타락한 주인을 버렸다. 순종하던 토끼들은 사람들에게 달려들었으며 책과 그림과 음악이 사라진 지상에서의 사람은 그저 빈둥거리기만 하였다. 이런 과정을 겪은 인간들은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조차 잊어버렸고 마음속에 사랑도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송이 꽃을 발견한 소녀로 인하여 희망이 생기는데...
제임스 서버의 그림 동화 마지막 꽃은 비록 형식은 우화적이고 단순하지만, 폐허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인간 문명과 그것의 반복적 자멸을 그렸다는 점에서 이후 본격적인 전후 폐허 문학의 한 갈래로 볼 수 있다. 전쟁의 고통을 겪고 모든 것을 잃어 인간성 자체를 들이밀 물리적, 정신적 공간이 사라짐을 겪었지만, 망각의 동물답게 모든 것을 잊고 이 과정을 무한 루프로 반복한다는 것에서 리얼리티 폐허 문학보다 더 강렬함을 그리고 있다.
작품 속에서 마지막 꽃은 생명의 선이 얇아질 대로 얇아진 상태에서 소녀에게 발견된다. 그러나 사랑과 희망, 낭만이 모두 사라진 인간들은 소녀의 도움 요청에 모두 무감하게 반응한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둘이서 마지막 꽃을 가꾸고 돌보면서 한 송이를 두 송이로, 두 송이를 꽃밭으로 만들었으며 이후 숲으로 커지게 된다. 그런 후에야 이들은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고, 마음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겨 모든 것을 전쟁 이전으로 서서히 돌린다.
이 책은 전쟁으로 인한 문명의 붕괴 과정을 비록 우화 형식이지만 놀라울 만큼 리얼하게 그려내어 오히려 더 섬뜩한 인상을 남긴다. 전쟁은 외부적인 건물과 자연부터 파괴시키지만 결국에는 인간의 영혼이 담긴 예술뿐만 아니라 스스로 우위라고 여기던 우리의 존재까지 자연에게 공격을 받는 계급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작중에는 그 대상이 개와 토끼이지만 조금만 상상의 나래를 펴면 그 대상의 종류와 행위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커진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모든 것이 파괴되고 마음속에 남은 희망, 사랑까지 사라진 그들은 동물과 다름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 이런 그들에게 다 시든 마지막 꽃이 나타난다. 이 마지막 꽃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인류에게 주어지는 생명선이 겨우 이어져 있는 실낱같은 희망을 의미한다. 모두들 무관심하지만 한 커플의 노력으로 이 희망은 점점 싱싱해지고, 성장하고, 번성하여 온 지구로 퍼지게 된다. 그 결과 인간들은 다시 문명을 재건하게 된다.
이렇게 문명이 재건되면서 사람들은 공동체를 만들고 예술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여기에 서서히 욕망이 깃들기 시작한다. 단순한 개인의 욕망뿐만 아니라 통치자의 그것, 종교인들의 욕심까지. 그 결과 세상은 다시 전쟁터로 바뀐다. 이런 상황의 무한 루프. 이것이 바로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저자는 비꼬고 있다. 이 책은 2차 세계 대전이 발생한 후 두 달 후 출간되었다. 그러나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일반적인 책과 달리 저자는 마지막 꽃 또한 무한 반복이 됨을 그리고 있다.
이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우화라기보다 매우 현실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작중에서 말하는 해방을 외치는 자들은 미국 남북 전쟁, 신의 이름으로 불만에 불을 지피는 자들은 십자군 전쟁을 의미한다. 그 외에도 진보를 말하며 화약을 드는 자들로 나폴레옹 전쟁을, 문명을 전한다며 무너뜨리는 자들로 각종 식민지 쟁탈전, 체제를 지키겠다며 인간을 버리는 자들로 제1차 세계대전, 평화를 위해 선제공격을 선택한 자들의 제2차 세계대전까지.
그야말로 인간의 본성은 어떤 사상이나 이상으로 시작하건 인간은 곧 파괴로 흘러들고 폐허 위에 새로운 문명을 쌓지만 또다시 무너뜨리는 존재이다. 늘 그럴듯한 말을 입에 물고 신의 이름으로, 자유의 이름으로, 문명의 이름으로 시작한 전쟁은 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과는 달리 언제나 무너진 거리와 그 위에 피어난 마지막 꽃 한 송이만 남길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의문을 가지게 된다. 저자는 이 전체가 반복된다고 하지만 과연 시들었지만 다시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는 마지막 꽃이 우리에게 언제까지 주어질 것인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원작자이기에 더욱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내용을 전한다. 물론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따라 세계대전의 문제점을 비꼬면서도 피해자인 지구 위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하여 쓴 글이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일반 무기뿐만 아니라 생화학 무기까지 더욱 날이 벼려진 지금 우리에겐 더 이상 마지막 꽃이 남아 있을까? 지금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보며 먼 과거에 쓰인 이 책의 경고를 다시금 떠올려야 할 때이다.
제임스 서버의 그림 동화 마지막 꽃은 하나뿐인 딸에게 그녀가 살아갈 세상이 더 좋아지리라는 애틋한 바람을 담아 쓴 책이다. 예쁘거나 아름다운 그림이 아닌 러프한 연필 선으로만 그려져 더욱 심리적으로 절실하게 다가온다. 현실적으로 벼랑 끝에 서 있는 작금의 시대를 사는 눈으로 볼 때 최대한 많은 이들이 읽어야 할 고전 그림책이 아닐까 한다. 이미 고향인 별로 돌아간 작가의 평화에 대한 호소를 직접 피부로 느껴보길 권유한다.
#마지막꽃
#제임스서버
#주니어RHK
#월터의상상은현실이된다원작자
#그림동화
#그림책
#고전그림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