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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마님의 서재
  • 모데란
  • 데이비드 R. 번치
  • 18,000원 (10%1,000)
  • 2025-02-28
  • : 2,810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모데란은 철과 플라스틱, 규율과 반복의 세계에서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묻는 작품이다. 약 40편의 단편이 느슨하게 연결된 연작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야기 사이를 잇는 것은 감정과 기억의 흔적이다. 겉으로는 기계화된 미래 사회의 풍경을 담고 있지만 결국 우리가 사는 지금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를 통제 가능한 기계로 바꾸려는 그 환상을 조용히 조롱하며 결국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남긴다. THE? or A?







#폴라북스 에서 출간한 #데이비드R번치의 #모데란은 인간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주인공이 스스로 모데란이라는 도시국가에 들어오며 시작된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 실패했기에 감정을 제거한 채 강철로 이루어진 기계 인간들의 세계에 자신을 맞춰보려 한다. 처음에는 관찰자로 머물던 그는 점차 성체화 과정을 거쳐 인간성을 하나씩 잘라내고 시스템에 동화된다. 그 변화는 한순간이 아니라 점진적인 삭제의 연속이다. 시스템은 그에게 M을 부여하며, 그는 감정과 기억, 자율성을 하나씩 포기하고 모데란의 일부가 된다. 







모데란 속에는 M이 정확히 무엇의 약자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M을 받을수록 인간성을 잘라낸다는 점에서 M이 MEN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즉 M이 많다는 것은 곧 사람다움을 많이 포기했다는 뜻이고 결국 존재하는 대상의 정의가 사람에서 기능으로 옮겨간다는 의미다. 작가는 사람이라는 개념이 잘려나갈 때 어떤 파편이 남고 무엇이 마지막까지 저항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알파벳 하나로 인간성 제거를 단계화하는 발상 자체가 이미 섬뜩했다.







이 작품의 핵심 질문은 테세우스 배의 역설과 연결된다. 이는 배의 모든 부품을 하나씩 교체한 후에도 여전히 같은 배인지 묻는 고대 철학의 문제다. 주인공은 감정, 신체, 기억까지 모두 교체된다. 이때 그는 여전히 동일한 그인가? 아니면 시스템만 남은 껍데기인가? 결국 작가는 테세우스 배의 역설의 정답을 독자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시스템에 잡아먹힌 당신은 아직 the human 인가, 아니면 a something 인가? 이 배는 어디까지가 '그'이며, 어디부터가 시스템인가?







책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성체다. 성체란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완전히 기능화된 존재를 뜻한다. 주인공은 열 번의 M을 통해 그렇게 성체가 된다. 그는 완전한 소멸 직전 스스로 그 길을 멈추고 다시 내려온다. 죽음 혹은 융합이라는 선택지 앞에서 마음을 바꾼 것이다. 이 장면은 마치 작가가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너는 아직 사람이니? 그가 남기로 한 그 순간 시스템은 완성되지 못하고 균열은 침묵 속에서 자라난다.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이 시스템이 처음부터 인류를 없애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작가는 단순히 기계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을 깎아 기계로 만드는 길을 택했다. 왜 굳이 그렇게 어렵고 먼 길을 돌아서 가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모데란은 외부의 억압이 아니라 인류 내부의 욕망에서 시작된 것을. 완벽함, 통제, 고통 없는 질서를 추구한 결과가 인간성 제거라는 모순된 결론으로 이어졌다는 것. 사람은 스스로를 없애기 위해 스스로를 설계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모데란의 세계는 결코 낯설지 않다. 플라스틱으로 덮인 땅, 증식되는 요새, 플러기 플라기 버튼 같은 귀여운 이름의 통제 장치. 특히 이 버튼의 이름은 아이 장난감 같은 어감으로 사람들의 경계를 무디게 한다. 감정을 억제하는 장치에 유치한 명칭을 붙여 통제받는 기분을 없애는 방식은 현대 사회의 기술 문명과도 연결된다. 우리는 종종 편리함과 익숙함이라는 이름으로 자율성과 감정을 시스템에 위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체제는 이미 부드러운 언어로 포장된 명령을 내린다. 핵무기에 선샤인이라는 이름을 붙이듯.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살아 있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것이 곧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는 말을 하지 않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며 시스템의 일부로서만 존재한다. 완전한 기계 인간이 되지는 않았지만 다시 온전한 사람이 되지도 못한다. 이 어정쩡한 간극이 모데란의 가장 잔인한 결말이다. 감정을 선택하지 않은 자에게 인류라는 말은 더 이상 붙지 않는다. 그는 살아 있는 껍데기로 남는다. 기능만 있고 의도도 없다. 독자는 그 침묵 속 떨림을 감지하게 된다.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








그러나 그는 융합 직전 마음을 바꾼다. 죽으러 갔다가 돌아온다는 이 장면은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모데란과 완전히 합쳐지는 것을 거부하고 아주 조용히 한발 물러선다. 이유도 설명되지 않지만 그것이야말로 감정의 증거다. 시스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계산되지 않은 감정의 개입이다. 완전한 기계가 되지 않겠다는 이 미세한 거절이야말로 인류라는 증거이며 동시에 이 소설 전체의 결론이자 출발점이 된다. 거절은 의지이며, 의지는 감정이다.







결국 모데란은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이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인간을 다시 정의하고 감정과 기억은 제거해야 할 에러로 취급된다. 하지만 작가는 끝까지 그 에러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세상에서도 감정을 기억하는 독자만이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아직 인간이라고. 이 문장은 선언이 아니라 생존자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절규이다. 사라지지 않는 감정은 결국 살아 있음의 증거다. 그리고 불안을 야기하는 확고한 흔들림이다.​






책을 덮고 나면 인간성은 한 번에 사라지지 않는다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천천히, 단계적으로, 기능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씩 잘려나간다. 두려움과 불안을 가진 고유의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사회가 원하는 보편적인 시스템 속의 인간으로 살 것인가가 작가가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당신은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는 The human 인가, 아니면 기능 하나만 남은 A something 인가? 기능 하나만 남은 A something의 목소리가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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